예로부터 잔치가 벌어지는 곳엔 먹을 것이 빠지질 않았다. 오는 5월 31일부터 ´2002 월드컵´이란 세계적인 잔치가 우리나라 10개 도시에서 열린다.
각 도시에서 펼쳐지는 월드컵 경기 못지않게 그 지역의 먹거리는 외국인뿐 아니라 국내 관광객에게도 중요한 관심거리다. 월드컵 개막일 전까지 월드컵 경기장이 세워진 10개 도시의 먹거리를 집중 취재해 소개한다.
제주 서귀포는 ´섬´이란 지리적 여건으로 뭍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음식이 월드컵 매니어들을 유혹하는 곳이다. 특히 사시사철 푸른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활어와 조개류로 만든 각종 음식은 제주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제주 향토음식보존연구회 김지순 회장은 "제주의 음식은 육지와 소통이 안돼 스스로 발전한 독창성과 양념을 쓰지 않아 재료 자체의 신선한 맛이 살아있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 갈치국과 갈치회=육지에서는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 갈치를 제주도에서는 국과 회로 요리한다. 갈치를 구이 크기로 토막토막 적당하게 썰어 호박이나 배추를 넣어 끊인 뒤 매콤한 풋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비린내가 날 것 같지만 뜨거울 때 먹으면 신기하리 만치 비린내가 없다. 9~10월부터 잡히는 제주도 갈치는 겨울이면 맛이 최고에 이른다. 이때 잡은 갈치를 회로 떠 먹으면 쫄깃쫄깃하게 씹히며 남는 고소한 뒷맛이 좋다.
어른 손바닥 만한 갈치 토막으로 요리한 조림과 구이의 하얀 속살은 육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밥 한그릇 뚝딱이다.
◇ 해물 뚝배기=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새우.바지락 등 해물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것이지만 전복의 사촌동생쯤 되는 오분자기가 들어간 것이 제주도 해물 뚝배기의 특징이다.
뚝배기 속에 몇 개밖에 없는 오분자기를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복처럼 오독오독 씹히는 오분자기의 맛도 육지에선 접하기 어렵다.
이곳의 해물 뚝배기는 잘 익은 깍두기와 멸치젓을 곁들여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오분자기가 해물뚝배기가 제주도의 전통음식으로 자리를 잡자 표고버섯 등 각종 야채를 넣어 지은 오분자기 솥밥도 등장했다.
◇ 자리물회와 한치물회=여름철이면 싱싱한 횟감을 채 썰어 양념이 된 육수에 말아먹는데 별미음식이 물회. 제주도에선 자리와 한치가 대표적인 물회 횟감이다. 어린 아이 손바닥만한 자리를 뼈째로 숭숭 썰어 거칠게 만든다.
한치는 무채처럼 썰어 쫄깃한 살맛을 즐긴다. 양념 육수에는 특이하게 된장이 들어가며, 여기에 들깻잎.풋고추.오이.파 등 야채와 각종 양념으로 맛을 낸다.
◇ 흑돼지구이=제주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음식. 예전엔 똥으로 기른던 제주토종 흑돼지를 요즘은 자연에 방목해 기른다고 한다.
살코기만 보면 흑돼지인 줄 알 수 없지만 껍질 속에 꺼먼 털이 송송 박혀 있다. 주로 껍질이 달린 삼겹살을 숯불이나 불판에 구워 멸치젓에 찍어 먹는다. 두툼한 고기가 노릇노릇 익을수록 맛있다.
◇ 몸국=몸은 모자반이라 불리는 해초류. 평소엔 된장에 무쳐 먹거나 신김치에 버무려 먹는 식재료다. 그러나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땐 돼지를 잡아 고기나 내장을 삶은 국물에 몸을 넣어 끓여 먹기도 한다.
신김치나 시래기 등을 썰어 넣으면 고기국물의 느끼함 대신 새콤하고 구수하게 씹히는 채소와 해초의 맛이 어우러져 몸국 특유의 매지근한 맛이 난다. 육고기.야채.해산물이 조화를 이뤄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거부감이 없다.
◇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좁쌀로 만든 대표적인 제주도 토속주다. 오메기술은 잘 발표된 좁쌀 막걸리 윗부분의 맑고 노란 청주부분이다. 알콜 농도 17~18도 정도가 되는데 새콤한 듯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특징.
고소리술은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기구인 ´고리´의 제주 사투리 ´고소리´에서 나온 이름처럼 좁쌀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인데 알콜 도수가 30% 이상인 독한 술이다. 한편 제주도에선 대량 생산되는 희석식소주로 ´한라산´브랜드가 인기다.
<< 가볼만한 맛집들 >>
▶진주식당=오분자기가 들어간 해물뚝배기 하나로 서귀포시를 대표하는 음식점으로 자리잡은 곳. 해물뚝배기에 5~6개의 오분자기와 바지락.새우.성게알 등이 들어 있다.
오분자기의 씹는 맛도 좋지만 성게알의 쌉쌀함도 일미다. 자리젓.갈치젓.갈치속젓 등 3가지가 밑반찬으로 나와 제주 젓갈의 맛을 볼 수 있다.
해물뚝배기는 8천원, 오분자기가 많이 들어간 ´특´은 1만3천원. 064-762-5158.
▶송화촌=2인분에 5만원이라는 갈치정식을 시키면 갈치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 날 것을 먹는 갈치회, 간이 밴 갈치조림, 푹 삶아진 갈치국, 향긋한 갈치구이가 순서대로 나온다. 네가지 갈치요리의 살맛 차이도 가름할 수 있다.
덤으로 나오는 소라구이는 맛보다 냄새가 좋다. 양이 많아 어른 두사람도 다 먹기 버겁다. 세명이 공기밥 하나를 추가해 먹으면 적당할 듯.
갈치조림만은 2만원. 064-733-7102.
▶축산 삼다가=제주 시내에 숨겨진 흑돼지구이집. 얼지 않은 생고기를 투박하게 썰어 낸다. 숯불 위에 석쇠를 얹고 굵은 소금을 뿌려 굽는 생구이(6천원/1백50g)가 먹을 만하다.
겉절이김치.물김치 등 밑반찬을 나무랄 것이 없다. 파무침 대신 나온 양파겨자장도 독특하다. 자리가 협소하고 다소 지저분한 데다 의자있는 식탁이 없어 외국인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둘째.넷째 일요일은 쉬므로 헛걸음 않도록 주의. 식사용 된장찌개(공기밥을 포함해 1천5백원)도 훌륭하다. 064-747-4710.
▶공천포식당=니스를 칠한 나무로 만든 식탁과 의자가 있는 허름한 식당. 집 앞이 바로 포구라 매일 아침 장을 봐 물회를 만든다고. 메뉴는 한겨울에도 오징어(한치)물회.자리물회.소라물회 등 물회만을 고집한다.
깻잎 등 각종 야채와 양념으로 만든 육수가 새콤.매콤.달콤해 육지 사람들 입맛에 맞는다. 홍삼이 잡히는 1월말부터 두달 정도는 해삼물회도 판매할 예정이란다.
오징어물회만 5천원이고 나머지는 6천원이다. 064-767-2425.
▶대유랜드(우보원)=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꿩요리전문점이다. 얇게 저민 꿩가슴살을 뜨거운 육수에 살짝 데쳐먹는 꿩샤브샤브(1만2천원/1인분)가 인기다.
꿩뼈를 24시간 우려낸 육수에 미나리.생배추.표고버섯.쪽파.당근 등을 함께 데쳐 먹는다. 쫀득하며 부드러운 꿩고기가 입안에서 부담이 없다. 고기를 다 먹으면 꿩만두(9천원/7개)나 메밀국수(무료)넣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 얼큰한 음식이 좋으면 전골(1만2천원/1인분)이 적당하다. 064-738-0500.
▶주상절리대의 이색 맛체험=바닷가 관광지에는 해녀들이 소라.해삼 등을 즉석에서 회를 쳐 판다. 이 가운데 중문단지에 있는 주상절리대에서는 소라껍질을 소주잔으로 삼아 ´한잔 쭈욱´하는 관광객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해녀들이 소주잔으로 쓸 수 있도록 껍질을 깨지 않고 속살을 빼낸 소라껍질을 손님들에게 주기 때문. 바닷물에 씻은 소라잔에 소주를 담아 마시면 코끝에 와닿는 진한 바다 내음과 귓전에 들리는 파도소리가 어울어져 소라회 맛이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