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말이 있다. 신앙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집트의 속박에서 막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희망과 기대에 가득 찬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로 삼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동의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그들은 선언했다(8절). 하지만 채 6주도 지나지 않아 대제사장 아론이 이끄는 모세의 동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비열한 우상 숭배에 빠졌다.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6). 모세는 시내산에서 내려오다 그 광경을 보고 격분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렸다(출 32:19).
그들의 문제는 진실성이나 의지의 부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지적한 딜레마에 빠졌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 7:15). 이스라엘 백성은 정직해야 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제힘으로 해낼 수 없다고 인정했다면 그들은 거의 끝없이 이어졌던 실패와 고통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예로 지냈고, 자유와 자발적인 결정에 익숙지 않고, 수백 년간 비열한 우상 숭배에 둘려 있던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스스로 해낼 수 없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의 상황과 정확히 같다. 문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사랑과 순종을 원하시느냐가 아니다. 바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느냐이다.
핵심
하나님 앞에 성실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낙담하면서 자신은 결코 참된 기독교인의 비결을 터득할 수 없으리라 결론짓는 사람이 많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연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실 하나님은 자신이 강하다고 믿는 사람을 구원하실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기록했다. 선지자가 말했듯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과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의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성공적인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은 예수의 능력에 의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에게 위대한 일을 이루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자기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자기에게 삶을 맡기라고 요구하신다.
이 개념은 빌립보서에서도 반복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죄인들의 삶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께서는 그 일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똑같은 신자들에게 바울은 자신의 열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승낙받기를 바라신다고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설명한다. 그분이 그들 안에서 자신의 삶을 직접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삶을 하나님께 내맡긴 죄인은 예수의 의를 받는다.
삶 속에 성령이 거하시면 그분이 믿는 자 안에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가져다주신다. 예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의 마음 안에서 삶을 시작하신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는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해 복음의 비밀이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고 설명했다.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와 같다고 하신 예수의 설명도 그와 똑같은 개념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삶
하나님의 자녀에게 매일의 삶은 자신을 그분께 내맡길 기회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분의 요새가 된다. 배역한 세상에서 그분은 그 요새를 굳게 붙드시며 자기의 권세 외에 어떤 권세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하늘의 능력으로 채워진 영혼은 사탄의 공격에 난공불락이 된다.”1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참된 순종은 모두 마음에서 우러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신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허락한다면 그분은 우리 마음과 정신을 자기 것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사상과 목적을 자신의 뜻과 일치하도록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분께 순종한다는 것은 안에서 느껴지는 열망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정결하고 거룩해진 마음은 그분을 섬기는 데서 최고의 기쁨을 느낀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특권처럼 여겨질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끊임없이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알아 가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가운데 죄는 역겹게 보일 것이다.”2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를 때는 와서 죽으라고 명하시는 것이다.”라고 진술했다.3 옛 삶에 대해 죽어야 예수께서 우리를 자기 형상대로 만드실 수 있다. 더 온전히 그분께 굴복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실망스런 일도 생길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영생에 합당하지 않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솔직함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가장 연약한 삶 속에서도 칭의와 성화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 주실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예수께 자신을 내려놓으면 우리는 그 위대한 날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구속받은 자들은 그날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사 25:9).
“아멘, 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1 엘렌 G. 화잇, 『시대의 소망』, 324
2 앞의 책, 668
3 Dei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Touchstone; First Edition, 1995), 99
발문
죄인들의 삶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께서는 그 일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하겠다고 약속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