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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나의 애장시, 산문으로 말하다
문학은 곧 사람이다.
임화선
문학은 인간의 삶과는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는 모든 문학 양식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양식이다. 詩가 오래전부터 그 자체가 곧 문학예술의 전 영역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지기도 하였다.
문학의 여러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문학은 언어 예술로서의 특징을 본질로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Poetica』에서 詩란 단순히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서정시의 개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영미 비평가 에이브럼즈(M.H.Abrams)는 문학을 예술의 형식으로 정의하는 방법을 우주, 독자, 작가, 작품이라는 네 가지의 좌표로 나누어 제시한 바 있다. 『거울과 램프』에서 모방론, 효용론, 표현론, 존재론으로 명명하였다.
Ⅰ. 문학을 꿈꾸다
아직은 나의 애장시라고 말할 수 있는 詩는 없는 것 같다. 詩 창작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문학소녀이다. 내가 태어난 산골 마을은 감나무가 온 마을을 뒤덮고 있다. 감꽃은 감꽃마을의 오래된 무늬다. 무명베 같은 감꽃이 입을 쫑긋하게 벌리면 청시(靑柿)가 얼굴을 내민다. 그런 풍경 속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내다 시를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풋감을 소재로 한「청시」를 쓰게 된다.
감꽃 길에
감꽃 꽃말이 밟인다
꼬마 청시(靑柿)가 눈에 밟힌다
시간이 쌓인다
대청마루에는 다듬이질 소리
풋풋한 풋감이 으깨지는 소리
하얀 옥양목의 질감에 묻어 나오는
감물을 찍는다 다듬질한다
청시의
청시가 열리는 숨은 계절의 길목에서
초여름의 청록
짙은
감꽃 길에는
꼭지 달린 청시가 감잎에 숨는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되새김질도 한다
계절은 얼마나 더 깊고 팽팽하게 멀어지는지
풋감은 떫다 탱탱한 감가지에 주렁주렁한 청시
얼굴의 주름이 굵게 선을 긋는다
싱그러워 다시 만나는,
떫은 청시가 더 떫다
-「청시(靑柿)」전문
이는『문학도시』2014년 8월호(통권 137호)에 게재된 詩이다.
우리 집에서 보던, 동네 골목길에서 만난 청시 와는 전혀 다른 청시를 만난다. 문학관은 주인은 있지만 주인이 없었다. 「청시」를 쓰고 난 후에 청시가 열리는 계절 유월에 맞춰 <김달진 문학관>을 찾았다. 주인이 없는 생가에서 그 흔적을 찾아본다.
유월의 꿈이 빛나는 작은 뜰을
이제 미풍이 지나간 뒤
감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살찐 암록색(暗綠色) 잎새 속으로
보이는 열매는 아직 푸르다
-「청시(靑柿)」전문/김달진
“수사가 제거된 시적 진술을 통해 은폐된 자연의 도를 깊게 통찰할 수 있다.”
Ⅱ. 문학의 산실
반시감으로 이름난 고장에서 태어났다. 이백여 평 남짓한 고향 집에는 감나무가 아홉 그루 있다. 대추나무 한그루는 집 앞 가장자리에 서 있고 골목 입구에는 가죽나무가 지키고 있다. 담쟁이덩굴 담장 사이의 우물곁에는 토란대가 자란다. 또 다른 한쪽 담벼락에는 해마다 머위들이 돋아난다. 양계장에는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알을 낳는다. 사랑채에는 한 밥을 받은 누에들이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마치 소낙비가 내리는 듯하다. 순식간에 잎을 갉아 먹고 녹색 줄기만 남은 잠박(蠶箔)에 검지손가락 만한 흰 누에를 만지다 보면 촉감이 촉촉하게 느껴진다.
대구 계성중학교는 소설가 김동리,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거쳐 간 학교이다. 시골 학교에서는 계성중학교를 합격한 사촌오빠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15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도착한 집, 대문 문지방을 넘고 집 마당 몇 바퀴를 돌면서 사물놀이의 악기가 어우러진다. 징과 꽹과리, 북, 장구 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계성중. 고교를 졸업하고 대구 교대에 다니던 사촌오빠가 여름방학 때 대청마루에 갖다 놓은 한 질의 전집이 문학의 동력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한 질의 전집은 『자고 가는 저 구름아』 저자 박종화가 쓴 소설이다. 그 장편소설 전집에서 일찍이 선조 때의 인물 송강 정철이 쓴 「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谷)」을 만나게 된다.
「사미인곡」은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한 여인이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기탁하여 자신의 충정과 연군의 정을 그린, 작품 전체가 한 여성의 독백으로 되어 있다. 여성적인 행위. 정조(情調). 어투. 어감 등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 맞는 소재를 빌려 작자의 의도를 치밀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편의 문학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사미인곡」에 사용된 시어나 정경의 묘사 또한 비범한 것으로 높이 칭송되고 있다.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旬五志)』에서 「사미인곡」을 가리켜 “가히 제갈공명의『출사표(出師表)』에 비길 만하다(可麗孔明出師表爲伯仲着止).”라고 하였다. 서포 김만중(金萬重)도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사미인곡」은 우리의 고전 시가 가운데 단연 백미(白眉) 편으로 손꼽힌다.
송강가사가 내 문학의 원천이 될것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턱에는 보리 꺼끄러기 같은 꺼칠한 것이 나 있다
부산하던 아버지의 수염이 까맣게 익어갈 때 아버지의 수염
은 아버지의 턱을 떨치고 달아났다 아버지의 코밑수염이
까맣게 자라도록 나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내
가 기억하는 것은 아버지의 말년에는 날마다 새벽같이 면도
를 하시고는 들에 나가셨다가 어스름 초저녁달이 떠올라서야
집으로 돌아오시던 것이 고작이다 콧수염보다 더 깊게 자라
나는 아버지의 세월 옆구리에 아버지에게는 내가 유일한 맏
딸이었다 나무와 집 온갖 지저귀는 새들과 그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나무와 둥지는 아버지의 바지런함 덕이다 실개천을
따라 졸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는
자식 같은 것이다 시냇물 같은 것이다 아버지의 염원처럼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수염이 자란다 내안에서도 아버지의
염원처럼 아버지의 수염이 자란다 내가 자란다 옥수수 수염
이 자란다 아버지의 유일한 수염이 마르고 닳도록 아버지의,
- 아버지의 수염 전문
「아버지의 수염」은 2011년 『동서문예』제17집에 게재된 詩이다.
아버지는 혼란기의 세상에서 녹록지 않은 세월을 겪는다. 청도 운문 지서에 근무할 당시 ‘운문산’에서 빨갱이(빨치산)들이 쏜 총에 맞아 아버지를 앞서가고 있던, 뒤따라오던 동료가 죽고 아버지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한 아버지의 고종사촌 형(배태준)의 전화 한 통화로 경주로 전근을 하게 된다. 하지만 60년대 초 정권이 바뀌면서 아버지는 직장을 잃는다.
짐을 꾸린 사람들은 서해로 가고 있다
왜 동해로 가고 있을까 나는
철책선 없는 경계선은 바다이다
초소가 있다 어촌마을 언덕배기에는
집을 비운다 어머니가 고향에 다니러 간다고
왜 따라나서지 않았을까 나는
출퇴근길 아버지는
집까지 나를 안고 언덕을 오르내린다
나는 초소에서 잠이 들고
골덴돕바 작은 삼각형 꽃무늬 꿈속에서
어머니와 고모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눈을 뜬다
곶감을 가지고 두 분이 오신다
아버지의 필체는 아버지의 훤칠한 키를 닮았다
파도는 하늘에 맞닿아 있다 내 눈에는
어선 한 척이 지나다 가져다 준 서너 마리 갈치
해녀들이 따다준 전복 해삼도
입 짧은 밥상
갈치 한 토막이 늘 놓여 있다
어선 덕이다
밍크고래가 떼 지어 몰려다니는 동해바다
아버지는 여태껏 살을 태우고
나는 불을 지피고 있다
-「동해에서 불을 지피다」전문
이는 2002년 제2호/해동문인협회 . 영포지회『여명(黎明)』에 게재된 詩이다.
아버지가 세로로 쓴, 한자로 된 필체는 아버지의 훤칠한 키와 닮아있다. 어머니가 고향에 다니러 간다고 나섰을 때 31번 비포장도로에는 덜컹거리는 버스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달려온다. 나는 왜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그때, 아버지는 동해바다 언덕배기 경주, 감포의 지경초소에서 나를 안고 오르내리며 출퇴근을 한다. 초소에서 잠이든 나는 골덴돕바 꽃무늬 삼각형 꿈속에서 고모님과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을뜬다. 두 분은 곶감을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는 전근이 잦은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간 곳이 마흔세 번의 이사 횟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이사 간 곳의 정황을 간간이 들려주기도 한다.
집어등을 켠 오징어잡이 배가
수평선을 지킨다
공곶이의 불빛 속으로
수없이 많은 수선화가 줄지어 가고 있다
저 먼 불빛 아닌 꽃창포는
땅기운애 등잔불을 켜기 위한 잎파랑 몸짓이다
둔덕에 핀 엉겅퀴의 아우라
등대는 바다를 지킨다
저 먼 불빛은
말없이 나를 지켜주는 어머니이다
「저 먼 불빛」전문
이는 2015년『영남여성문학회』가 주간인「모시올」제33집에 게재된 詩이다.
「저 먼 불빛」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언제나 말없이 지켜보며 나의 후광을 비춰주는 아우라이다.
어머니는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간 마지막 세대인 듯하다. 본관이 김해이다. 책 속에서만 보던 풍경,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간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 마을에는 당시에 가마를 메고 간 사람들이 살고있는 집이 두 집 있었다. 한 집은 동네일을 맡아보는 집이다. 또 다른 집은 김해김씨의 대소사를 맡아보는 집이다. 남자는 하인, 여자는 하님이라고 불렀다는 그들은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고 한다.
당대에 산 너머에 살고 있던 그 동네의 부잣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을 간 어머니는 혼수품으로 받은 한복이 다섯 벌 한가지였다고 한다. 사진이 없어 한복의 색깔을 물어보았다. 노랑 저고리에 남색 치마, 양단 호박단 등 물들인 무명 치마저고리까지 다섯 벌에다가 짝수를 피하기 위해서 저고리 한 감을 더 넣었다고 한다.
경주 계림초등학교 입학, 월성초등학교로 전학, 2학년 초 고향으로 전학을 한다. 월성초등학교로 전학을 할 당시는 아버지 직장이 좌천되는 시기였고 고향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직장을 사직하는 시기였다.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을 통째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다른 한 편으로는 풍부한 문학의 소재를 찾을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 이때 고향에서 시골아이들과 부모님, 동생들 단 한 분 밖에 안 계신 고모님, 백부와 백모님, 사촌 형제들의 정을 물씬 느끼며 농촌 생활을 통해서 내 詩의 밑거름인 풍부한 소재들을 만나게 된다.
아직 내 詩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기에는 이르지만, 이를테면 초기 詩는 꽃을 소재로 한 詩를 많이 쓴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시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미리 시인이 될것이라는 것을 예언이라도 한 것인지. 아버지는 손수 내 이름자를 지었다. 이름자를 재해석해보면 꽃 화(花), 먼저 선(先), 꽃이 먼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내 곁을 지켜보며 보이지 않는 힘과 어떤 용기를 주었다. 맏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학을 꿈꾸는 소녀는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나면 손에는 책을 놓지 않았다. 경제, 과학 이러한 전문서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손창섭 대표작전집(孫昌涉 代表作全集)』은 월부로 사서 읽었다. ‘동양 라디오 50만 원 현상’ 당선작품 대문 출판사에서 1969년 (1.10(중)/284쪽) 출판된 박계형(朴啓馨)의 단편소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도 직접 구해서 단숨에 읽은 기억이 있다.
Ⅲ. 구술로 받아 적는 삼베 짜는 이야기
삼나무를 베어 와서 가지고 잎을 따고 나서 동을 만든다 삼단을 묶어서 돌 위에 얹어 돌로 달궈가지고 돌 위에 물로 붓고 달은 돌이 피피거려서 김이 삼단처럼 올라오면 삼이 익는다 익은 삼을 톱으로 톱는다 껍데기를 베끼면 겨릅대마골(麻骨)이 하얗게 나온다 삼을 치자 물을 넣고 쪼개고 삶아서 손톱으로 째가지고 한대(바깥)에 늘어놓는다 삼이 노랗게 바래진다 삼을 걷어가지고 그때 물에 담가가지고 전기다리(징개)를 놓고 삼을 걸어 고정하고 다시 발로 젓을 잡아당겨가며 이(이빨)로 가르마를 타고 삼 줄기 끝부분을 얇게 만든다 삼 줄기 끝 부분끼리 허벅지에 대고 살살 비벼서 새끼 꼬듯이 젓을 만들어 삼광주리에다가 니리(내려) 담는다 광주리의 젓을 땅에 붓고 한 손으로 물레를 저으면서 한손으로는 가락에 올린다 가락에 올린 젓을 빼가지고 큰 돌꼇에 올린다 돌꼇에 올린 젓을 빼가지고 삼 솥에 다시 쪄서 똥(삼나무 껍데기)을 뺀다 똥을 지어가지고 뭉턱, 뭉턱 황금같이 누런 젓을 물에 씻어 말라가지고 돌꼇에 다시 올려 가지고 새로 니리 담으면 잉아 실이 된다 베틀에 올려 잉아 실을 걸고 날실 끝을 말코에 매면 베 짜기 준비가 모두 끝난다 뱃대에다가 실을 걸어놓고 날실을 새로 날고 등겨불로 피워 가지고 말린다 실이 다 마르면 새로 날실을 쌀로 고운 풀로 젓을깨로 발라 풀을 먹여 마른 실을 베틀에 올려 도투마리에다가 감는다 도투마리를 깻대(뱁댕이)로 밀어서 훌쩍 밀어 넣으면 도투마리가 구부러진다 도투마리가 구부러져야 실이 풀린다 실이 풀리면 부티허리로 탁 잡아당기면 도투마리가 바로 서고 베가 짜진다 베틀 위에는 날실을 걸어다가 북안에는 씨실꾸리를 넣는다 그녀는 베틀의 앉을깨미에 앉아가지고 부티허리를 걸고 베틀신(끌신)을 신고 발을 앞뒤로 밀고 당기면 날실의 입이 딱 벌어져서 북을 쏙 넣는다 북을 넣어 가지고 밀고 댕기면 날실이 딱 입이 벌어져가지고 북을 쏙 넣는다 북을 넣어가지고 북을 이쪽으로 빼면 잉아 실이 나오고 북 바디가 탁 치면 또 베가 짜진다 발로가지고 밀고 댕기면 날실이 딱 입이 벌어져가지고 북을 탁 넣으며 북 바디로 탁 치면 또 베가 된다 베틀에 올린 날실을 북집의 씨실로 베로 짠다 다 짠 베는 부티로 감는다 황금 같은 누런 삼베가 일등 삼베다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삼베가 입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모른다 베를 짜면 한 필이 된다 베 한필이 마흔 자
하루에 스무자(한마루)나 스물 두자의 베를 짜야 일등처자가 된다
열자나 열다섯 자는 보통 처자다
베를 하나도 못 짜고 두루마기를 못 지으면 사람 축에도 안 보낸다 옛날 그 시대, 나의 어머니는 하루에 족히 스무 자의 베를 짰다 두루마기도 잘 지었다
그녀는 일등처자다
-「그녀는 일등처자다」 전문
미발표된 작품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료를 입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몇 년 전 수화기를 통해서 듣고 바로 받아 쓴 글이다.
Ⅳ. 시인의 길로 들어서다
2001년 10월 22일 부산일보사와 부산여류문화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31회 <영남여성백일장> 에서 입선한다. 2001년 계간 가을(통권 제35호)호에 정광수 시인. 평론가가 발행하는 『해동문학』(서울)으로 김창식 시조시인.수필가(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의 추천으로 ‘신인 발굴 추천작품’ 시(詩)로 등단한다.
- 김창식(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김상훈 시조시인(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부산일보 사장(1997~2006년),
정광수(1939년생.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해동문학 주간
등단 작품 시(詩)는「바다」.「어머니」.「감척을 기다리는 어선」.「거울 앞에서」.「장마」다섯 편이다.
Ⅴ. 문학과 경제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 국제 통화기금)는 경제를 눈뜨게 하고 문학과 학문의 영역을 넓혀간다. IMF를 뼈저리게 겪어야 했던 참담한 경험은 살아가는데 또한 삶의 질을 바꾸게도 한다. 우선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이제 내려놓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세상이 어수선하고 힘들 때 누군가 일으켜 세워줄 수 있고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부터 인간은 진실해지는 것 같다.
다행하게도 내 주위에는 나를 아낌없이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IMF라는 끔찍한 사건도 치유될 수 있었다.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다. 삶에는 반전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희망의 끈으로 이어진 어떤 용기가 생겨났을 때이다.
국가적인 외환위기 앞에서 개인 사업자는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집과 자동차, 돈 모든 것을 잃었다. 남은 것은 사람이다. 빈털터리로 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IMF와 한꺼번에 겹친 두 아이의 대학원 학비와 유학비까지, 십수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서야 파산을 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것을 지탱해준 것은 문학의 힘인 것 같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연구 논문 주제를 「정지용 시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계획서를 작성하였다. 작가의 시 세계와 정지용 시의 특정 분야 즉 모더니즘 시, 종교시, 동양 정신의 산수 시를 소제목으로 하였다. 논문 주제 「정지용 시 연구」를 연구과제로 한 것은 지용 제에 참가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료수집도 하게 되었다.
Ⅵ. 사람을 만나다
문학 속에는 많은 사람이 나온다. 직간접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도 없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특별히 만나는 사람도 있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논고를 게재하면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정지용 사전』이 발간되기까지 선생의 장남 구관씨의 정성은 지용이 시인으로 되살아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납. 월북 문인 해금 이전부터 지용 연구의 선편을 잡은 유종호, 김학동, 문덕수, 김윤식, 김용직, 양왕용, 오탁번, 김재홍 등의 선학들이 이룬 연구업적들은 나침반과 같은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 양왕용(1943년 11월 25일. 시인 .국문학자 .국문학 박사) , 남해군 창선면 출생, 김춘수 시인의 수하에서 경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부산여고 교사. 부산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정지용 시연구(삼지원,1988)
이승원 주해본『원본정지용시집』(2003, 깊은샘)은 시어 해석의 마지막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이 인용문은 2003년 최동호 편저 고려대학교 출판부『정지용 사전』머리말에 있는 것을 옮긴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빚어내는 노작(勞作)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성을 지닌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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