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
본문 ; 사도행전 1:9-11
부활하신 예수님은 약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달력에 보면 예수님의 성탄절과 부활절은 확실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승천일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찬송가에도 탄생, 십자가, 부활, 재림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승천에 대한 내용은 161장 1절에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승천 하셨네.’ 그리고 181장 1절 ‘부활승천하신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오시리’ 외에는 없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고백, 예수님에 대한 가중 중요한 사실들을 담고 있는 사도신경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은 모델교회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신약성경의 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과 같은 전도 팀에 있었으며, 의사이자 역사가였습니다. 그는 모델교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리한 눈으로 보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델교회의 역사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구나.’라는 관점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여기에는 유다지역에서 시작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이 불과 30년 만에 당시 최강대국인 로마제국의 심장부까지 파고 들어가 교회를 세우는 엄청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행전이 예수님의 승천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 모델교회의 역사가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기반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자신을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준비시키신 후 승천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중심에서 없애 버릴 수 없는 기둥하나가 바로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를 믿는 우리는 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아버지께서 그 분을 높이셨습니다.
승천사건은 비밀리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대낮에 제자들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고전 15:6에 근거하여 추론할 수 있는 숫자는 500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을 좇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린 사람의 숫자가 120여명이니 120명에서 500명 사이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낮은 자로 오셨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분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을 입고 복종하는 자리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높이셨습니다.
빌 2:8-9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천국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천사와 성도들의 찬양을 받고 계십니다.
계시록 5:11-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그런데 이처럼 찬양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맞으면 아프고, 찌르면 피를 흘리는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 때에도 몸을 갖고 계셨습니다. 다른 것은 이번에는 썩어질 몸, 부패하는 몸, 쇠하는 몸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몸에는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천국에 계시는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인 동시에 영원한 인간으로 계십니다. 그렇기에 그 분의 상처가 아직도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천군 천사들이 그 분을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세상의 임금들과 권세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려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셨고, 우리는 천군천사들과 함께 그 예수님을 향해 영원한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목적이요 기쁨입니다.
두 번째 지상에 남아있는 우리에게 성령의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왜냐하면 내가 가야지만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셔서 너희로 하여금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지금이 제자들이 같이 갈 수 없는 하늘로 오르십니다. 대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시대가 지나가고 성령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도 있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본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영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믿었습니다. 즉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로마의 권세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는 때가 지금 아닙니까?’라고 제자들이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을 하십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에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인간의 제한이 그분에게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두 장소에 동시에 계실 수 없었고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제한된 지역에서만 활동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에도 제자들은 그 시절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이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오시는 성령님은 모든 장소에, 모든 시간에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부인하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말하는 금수저 출신이라든지, 인맥, 학맥 등 모든 조건이 좋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팔레스타인은 로마에 비협조적인 변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눈으로 본다면 제자들은 모두 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덤벙거리고 모순투성이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30년 만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가는 예리한 역사가의 시작으로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모델교회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그 분이 직접 사역하시던 시대가 지나고 성령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이 예수님의 승천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즉 교회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시대가 열렸고, 성령의 시대가 열리면서 교회의 시대가 열렸고, 이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 오신 성령님도 영의 세계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시기에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예수님도 성령님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을까요? 세상이 볼 수 있는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하나님의 증거는 어디에서 나타날 수 있을까요?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교회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회개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루에 5천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믿음을 갖게 된 그들이 그냥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모입니다. 그렇게 모여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함께 떡을 떼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세상이 모르는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이 모르는 언어로 서로 사랑하며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놀라운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이 그 공동체를 칭찬하기 시작합니다. 공동체를 자세히 주목하면서 그들에게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그 무엇을 보기 시작합니다.
예) 중세 흑사병이 돌 때 기독인들의 모습
예수님의 시대가 지나가자 성령님의 시대가 열렸고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계속 읽으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공동체가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고, 선한 사역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잘 알고 있듯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지체로, 하나님의 공동체로 선 교회가 성령의 힘을 받아서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대신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에 보이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이 어떤 일들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을 돌보셨습니다. 또한 가시는 곳마다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 가정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세상의 진정한 소망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1절 전반부 내용이 얘기하듯이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계속하는 말이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그러니 넋 놓고 있지 말고 승천하신 예수님 대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시대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교회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성경대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 그리고 다시 오실 때까지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가장 높은 이름으로 찬양 받으실 주님을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불만족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도행전 1장 바로 앞장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고기 잡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라면, 내가 주님의 지체라면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라는 거룩한 불만족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