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에 만난 의사들 가운데 두 사람이 우리나라 의료계에 나타난 성현군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분은 널리 그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의사로서 김일성의 맹장수술을 훌륭하게 집도하였다는 장기려이고 또 한 의사는 남이 모르게 의료 사업에 전력하여 차병원이라는 세계적 수준의 큰 병원을 세우고도 끝까지 유명해지기를 거부한 산부인과 전문의 차경섭이다. 두 사람이 다 평안북도 용천 출신이고 장기려가 몇 년 선배이기는 하지만 일제시대의 비슷한 때 한 사람은 경성의전을 또 한 사람은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여 각기 의사 자격을 얻었다. 현암 차경섭의 아버지는 목사인 동시에 독립운동가였고 애국애족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 기독교의 희생 정신을 품고 한평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현암은 자기가 하는 일을 남들이 알아 주기를 바라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과 대화하며 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는 학창시절에 친구였던 장운섭의 여동생 장보섭과 결혼하여 슬하에 딸 광혜, 광은과 아들 광렬을 얻어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대구 동산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차경섭은 영변에서 개업하고 있었지만 해방이 되고 공산당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1946년 월남하였다. 6.25 전쟁 중에는 미군통역으로 근무하였고 전쟁이 끝난 이듬해에는 시카고로 가서 수련의 과정을 다시 끝내고 돌아와 이화여대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로 취임하여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산부인과에 의사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현암은 일개 의과대학과 대학병원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 인물이었다. 1980년에는 차병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병원의 명성은 국내에서만 아니고 외국까지 널리 알려져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차 병원에 와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 시장에 군림하는 기업인이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듯이 의료사업을 가지고 국위를 선양한 차병원이 있다는 사실을 국민은 알아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1996년 차경섭은 포천중문의과대학교를 설립하였는데 현암의 뜻은 의사가 되고 싶은 유능한 젊은이들 가운데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재들에게는 무료로 의학 교육을 실시하여 의사를 양성 할뿐 아니라 기숙사를 마련해 숙식까지 제공하는 매우 특이한 의과대학을 발족시킨 것이었다. 나는 가끔 초빙되어 그 학생들에게 문화사를 가르친 일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어김없이 현암의 부인 장보섭을 만나게 되었다. ‘사모님’이 기숙사에 학생들을 위하여 밥도 지어주고 청소도 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그 잘생긴 부인이 누군지 잘 몰랐지만 알고 보니 차광은, 차광렬의 친어머니였다. 그런 사실을 알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포천중문의과대학은 마침내 차의과학대학으로 개칭되었고 현암은 이사장으로 남아서 후학양성에 힘썼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야 한다. 훌륭한 아버지가 시작한 일이 아들에게 가서 흔들리는 집안이 많다. 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가! 아버지의 성공 때문에 그 아들, 딸이 교만하게 되어 일을 망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병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설립자 외아들인 차광렬은 차병원의 강남 시대를 여는 일에 있어 엄청난 공을 세웠다. 그때부터 설립자 현암은 아들의 하는 일에 도움을 주면서 병원장으로 병원 일에만 전념하고 그 아들은 강남 시대의 주역이 되어 온갖 계획을 다 세우고 실현하면서 명실공히 차병원이 전국적으로뿐만 아니라 세계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에 이르렀다. 분당 차병원, 구미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여성병원, 건강과 의료를 겸한 차움을 청담동에 세우고 젊음과 건강을 지키고 싶은 수 많은 젊은이들이 전국에서 차움을 찾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당수가 방문 한다고 들었다. 이뿐 아니라 LA 헐리우드 차병원과 난임치료센터, 동경에 있는 줄기치료 클리닉도 유명하고 전 세계적으로 50여개의 의료센터를 운영하여 5억불의 매출을 올린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 그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 것은 의료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차광렬이었다. 아버지보다 훌륭한 아들이 생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차병원 경우에는 그런 말이 나돌아도 무방할 것 같다. 차경섭은 병원 한 구석에 방을 하나 가지고 경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2017년 4월 조용히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우리 나이로 하자면 향년 99세, 외유내강한 그의 성격 그대로 차경섭의 삶은 요란하지 않게 끝이 났지만 그가 이룩한 엄청난 큰 일들은 오늘도 전 세계 의료계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치부 되고 있다. 그를 만날 때마다 현암이 나에게 보여 준 그 다정한 미소를 오늘도 생생이 기억하면서 짧은 글을 여기서 마감할까 한다. 인생이란 매우 놀랍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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