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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進士) 박제생(朴悌生)이 돌아가신 장인 신공(申公)을 위하여 묘갈명(墓碣銘)을 부탁해 내가 그것을 지었다. 그 선조의 세계(世系)와 자손의 사속(嗣續)을 매우 상세히 기록했는데, 신공이 죽은 지가 이미 오래된지라 그 글에 잘못된 것이 많았다. 글을 다 짓고 나서 깨끗이 써서 박 진사의 처소로 보냈다. 그날 밤 꿈에 손님들이 나타났는데 모두가 해골의 형상으로 문전 가득 몰려와 지게문을 밀치고 들어와서 나에게 감사하기를 매우 정성스럽게 하였다. 꿈을 깨자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리털이 쭈볏 솟았다.
또한 전에 죽은 사위 최아(崔衙)를 위해 비석을 세우면서 내가 음기(陰記)를 짓고 석공으로 하여금 새기게 하였는데, 석공이 종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 속에 한 젊은 유생이 나타났는데, 정신이 맑고 모습은 준수해 보였다. 그가 다가와서 묻기를 '너는 어떤 사람이냐?' 하길래, 내가
'아무 땅 사람이며 이름은 아무개입니다.'라고 했다. 또, '이 돌의 품질은 어떠한가?'하고 물어서, 내가 '매우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루에 몇 자나 새기는가?'라고 하기에 '수십 자는 새깁니다'라고 했다. '네가 새긴 글자가 매우 좋으니 모름지기 신속히 할 것이며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라고 했다." 그리고 또 그 다음 날에도 똑같은 꿈을 꾸었으며 그 모습도 똑같았다고 했다. 종이 그 모습이 어떠했냐고 묻자, '이러이러하다'고 대답했는데, 죽은 사위의 모습과 여실해 집안사람들이 듣고는 슬피 울었다.
아아! 죽은 사람을 위해 묘소에 표석을 세우는 것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평생의 사적을 기록해 썩지 않게 전함이 어찌 유독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 대한 예로써만 하는 일이겠는가? 비록 망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황천에서 감동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옛 사람은 예문(禮文)을 찬술함에 있어 축문과 재문이 있었고, 술사(術士)들에게는 부적과 주문 등의 글이 있었다. 이는 헛된 문식이 아니라 능히 귀신의 이치를 아는 자가 만든 바이다.
*음기(陰記)---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