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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의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고린도에서 있었던 일들입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아텐의 사역을 마치고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에게 바울이 남겨놓고 왔던 마게도냐 지방에 남겨놓고 왔던 디모데와 실라가 도착을 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옴에 본래 약속은 아테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일이 지체되면서 바울은 기다렸지만 그들이 내려오지 않았어요. 웬일인지 이 기간에 바울은 이 두 사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이죠. 실라와 디모데는 특별히 실라는 빌립보 디모데는 데살로니까 교회를 돌보면서 일을 하다가 드디어 고린도에서 바울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그들을 기다린 이유는 힘이 되는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도 어떤 사람은 힘을 빼앗는 사람이 있어요. 기가 빨린다고 그러죠. 만나면 힘이 자꾸 빠지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디모데와 신라와 같이 함께 있기만 해도 힘이 나는 사람, 위로가 되는 사람, 격려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런 축복 이걸 인복이라고 그래요. 이런 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21년 목회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죠. 우리 교회에서 또 내외적으로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말 힘이 되는 사람이 있어요. 특별히 해주는 건 없는데 옆에 있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같이 약간의 대화만 나눠도 힘이 되고 은혜가 되고 용기를 얻게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와 신라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들이 내려오자 바울이 다시 힘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5절에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하니 언제 그들이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옴에 그런 일이 발생했어요. 디모데는 데살로니카 교회에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어요. 데살로니카 교회의 소식 어떤 소식이냐? 신앙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잠깐 복음을 전하고 세워놓고 온 교회 부모가 자식을 갓 낳아놓고 떠는 것처럼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이 데살로니카 교회가 잘 자라날까 성도들이 신앙생활 잘할까 걱정하고 늘 마음 쓰고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온 소식 너무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목회자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우리 교회 신앙생활하다 한국에 갔는데 한국의 어떤 교회에 정착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면서 교회에 기둥같이 쓰임 받고 있다. 그러면 보람을 느끼게 되고 기쁨이 되고 힘이 나게 되는 것.
바울의 마음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아테네에서 힘들었고 지금 고린도에 와서도 여전히 영적 침체를 경험하고 있었는데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 데살로니카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너무너무 잘하고 있다. 그 소식 하나로 바울이 힘을 얻고 말씀을 힘있게 유대인들에게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잠언 25장 25절에는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좋은 소식 좋은 기별을 들으면 사람의 내면에 힘이 생기게 되는데,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이, 디모데가 가져온 그 소식이 바울의 마음을 소성케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펜을 들어서 편지 한 장을 씁니다. 그 편지가 사도바울이 쓴 최초의 서신 데살로니까 전서가 되는 거예요. 이때 작품이 나오는 겁니다. 힘들었을 때 어디선가 좋은 소식이 왔을 때 마음에 영감이 생기고 그때 움직이면 이런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데살로니가전서 1장 8절에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권고할 필요가 없을 만큼 너무 잘하고 있다는 그 소식을 바울이 듣고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디모데가 그 편지를 가지고 갔다가 돌아와서 또 소식을 전해줍니다. 너무 잘하는데 너무 열심히 하다가 약간 더 지나쳤다는 거예요. 대개 열심이 없는 사람은 지나치지도 않아요. 근데 열심히 하다 보면 약간 도를 넘는 수가 있어요. 지금 데살로니카 교회가 그랬어요. 한국 사람들이 우리가 그런 막 열정적인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해도 한국 사람만큼 열정적으로 하는 데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그건 좋은데 그러다 보니까 지나칠 때가 있어요. 과도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다든가 특별히 많이 빠지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 이단에 빠진다든가 이런 경우가 지나칠 경우에 그렇습니다.
데살로니카 교회가 지나친 종말론에 빠진 거예요. 초대교회는 종말론 임박한 종말론 우리 생애에 주님이 오신다 그걸 믿는 시대였어요. 지금도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지나치고 왜곡되면 어차피 주님 오실 건데 뭐 열심히 살 필요가 있냐 지금 여기 현재의 삶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마음대로 살게 되고 어차피 뭐 세상 망하는데 곧 주님 오실 건데 뭐 열심히 살 필요 있냐 미래를 계획할 필요 있냐 하다 보니까 게을러지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이건 잘못된 종말론입니다. 주님이 오늘이라도 오실 것 같다 그렇게 믿는 진정한 종말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초대교회 신앙인데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오실 주님 그 주님을 만날 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지금 여기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삐딱 노선을 타는 사람들이 데살로니카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를 또 쓰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장 10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하면서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서 뭐 곧 세상이 망할 건데 주님이 오실 건데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느냐 그러다 보니까 일을 안 하다 보니까 자기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사람 신세 지고 저 사람 신세지면서 공동체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오늘 바울이 두 번째 편지를 쓰는데 그게 데살로니카 후서 말씀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균형이 중요합니다. 열심히 하는 거에 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 지향적인 것도 좋지만 늘 미래만 생각하면 안 돼요.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여서 우리의 미래가 되고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당장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실라는 빌립보 교회 소식을 가지고 왔어요.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늘 호의적인 마음을 가진 교회입니다. 마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후원을 해서 선교비를 보내는 교회 그 중심에 루디아라고 하는 자주 옷감 장소가 있었습니다.
사업을 해도 세상에서 성공을 해도 이렇게 성공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보니까 미국의 단점도 있어요. 거기서 사는 그러나 거기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좋은 점들은 미국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성공한 크리스찬들이 그 사회는 도네이션 문화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돈을 벌었어도 하나님 나라와 선한 일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그 쓰는 것이 훈련이 된 사람들이 그래서 이번에도 kwmc 세계 디아스포라 한인 선교대회가 있었고 저희는 또 부부 학교라고 선교사님들 30가정을 초청해서 하는 그런 대회들을 일주일 동안 치렀는데 그런 특별히 kwmc라든가 세계 한인 선교사 대회라든가 이런 것은 세계 선교 역사에 기록될 만한 아주 굉장히 중요한 행사들이에요.
근데 이런 일들이 어떻게 치러지느냐 각 교회가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성공한 크리스찬들이 무명으로 도네이션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빌립보교회의 루디아 같은 사람들이 그런 분들이 미래 세대에 나타나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지고 이 세상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바울이 말씀과 성령에 사로잡혀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온 다음에 말씀을 전하는데 바울이 어떤 형태로 전했느냐 말씀과 성령에 사로잡혀서 일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본문을 보면 맞소라 본문에는 말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공인 본문이라는 데를 보면 성령에 사로잡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말씀과 성령에 사로잡힌 상태 이것은 아테네와 매우 다른 모습이에요. 아테네에서 사도바울은 인간의 지혜로운 말,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그랬어요. 바울도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를 뛰어넘었어요. 탁월한 설교 아래오하고 설교를 했어요. 그러나 영적인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아서 그것이 바울의 마음을 힘들게 했어요. 침체하게 만들었어요.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결심한 겁니다. 어떤 결심 내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지혜와 지식에 있지 않아요. 물론 그것이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러나 결정적인 요인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고 인생이 변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자가 나음을 얻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아주 심플한 원리가 있어요. 말씀과 성령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을 붙들고 나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그 결심을 한 거예요. 나는 다시는 인간의 지혜와 지식, 지혜로운 말 이걸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성령에 붙들려서 이 성령을 통해서 나타나는 권능으로 주의 복음을 전하겠다 작정을 했어요.
나중에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지금 이제 세우는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쓸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발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한은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죄에 있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사실 바울이 이때 놀라운 깨달음을 얻고 결심을 했지만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미 권면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이제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권면하셨어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다 알고 있다. 가서 얘기하면 된다 이거예요.
그러나 그전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 하늘의 능력이 임할 때까지는 절대 이 성을 떠나지 말라. 사도 바울이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할지라도 그것이 성령의 능력에 붙들려서 하는 일이 아니면 영적 결과가 안 나온다는 거 예수님의 부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우리가 예배드리고 또 찬양하고 우리 권사님도 찬양으로 섬겼지만 그 모든 일에 성령의 기름이 부어져야 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똑같은 사역을 한다 할지라도 영적인 결과가 나와 그게 성령의 일입니다. 마음이 변화되고 치유되고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결심을 하고 그 단순한 원리를 따라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복음을 전하자 놀라운 열매가 나타납니다. 디도 유스드라고 하는 사람이 변화됐습니다. 이 사람은 로마인인데 유대교로 개종을 해서 회당을 다니는 사람이었어요. 복음을 듣자 사도 바울이 성령에 의지해서 전하는 복음을 듣자 그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크리스찬이 됐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다 믿어버렸어요. 회당장은 골수 유대인입니다. 골수 율법주의자예요. 그런 사람도 사도바울이 이제 성령을 의지하자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회심을 했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사가 돼서 또는 선교사가 돼서 사역을 하든지 아니면은 여러분들이 일반 성도로서 생활을 하든지 원리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세 번째로 바울은 이 고린도에서 놀라운 환상을 봅니다. 바울에게 두 번의 큰 환상 사건이 있어요. 한 번은 들어와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를 와서 도와라. 그래서 바울이 그것 때문에 아시아 선교 대신에 소아시아요. 그러니까 에베소로 가려고 하는 그 계획 대신에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유럽 선교가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런 환상 이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가실 때는 우리를 부르실 때입니다.
바울을 소명으로 부르실 때 바울의 어떤 사명을 바꿔놓으실 때 이런 일이 일어나요. 그런데 오늘 이 고린도 환상은 조금 다른 겁니다. 이것은 바울을 위로하기 위한 사건이었어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흔들리기 시작하자 역시 유대인들 가운데 골수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해방하기 시작합니다.
여기도 유대인들이 있었던 거예요. 참 원수는 어디나 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든지 아니면 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방해하는 자들이 있어요. 마귀의 역사가 있어요. 다 모든 사람이 우리가 좋은 말씀 전하고 우리가 좋은 일 한다고 사람들이 다 환영해 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세상이 그렇지를 않아서 선한 일을 하려고 할수록 이런 어려움들이 더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역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어디나 대기하고 있다. 우리가 성실하게 예수를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방해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감을 잡아야 합니다.
저 동북권에 제 후배 어느 선교사님 이야기에 어느 한국교회 한인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갔어요. 그 교회로 가는데 저도 좀 역할을 했습니다. 서류상으로. 그런데 최근에 들은 소식을 듣고 저도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이분들이 이제 갔더니 코로나라서 이제 성도들이 거의 다 이제 귀국을 하고 집사님들 몇 가정이 남아서 교회를 지키는 상황이었는데 그 젊은 선교사 목사 부부가 갔으니까 얼마나 더 열심히 열정적인 마음으로 섬겼겠어요. 그래서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그 몇 명 안 되지만 그분들을 섬기면서 주일마다 이 가정에서 밥을 해가지고 성도들을 섬기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 마음은 어떻겠어요? 우리 교인들 마음은 막 감동이 돼가지고 정말 내가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먹어야죠. 우리 교인들은 아마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정말 그게 정상적인 교인이죠. 그리고 교회가 이제 이렇게 어려우니까 헌금도 적게 나오니까 처음에는 500유로를 이제 생활비로 주는 걸로 하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선교비를 받아 쓰는 걸로 이렇게 하고 갔는데 점점 더 어려워지니까 그것도 이제 받지 못하고 그러니까 자기가 한국에서 받아온 걸로 다 밥을 내서 섬기는데 이 이제 얼마나 그 젊은 사모가 힘들겠어요. 근데 운전면허를 또 따라고 앞으로 픽업을 또 하도록 이렇게까지 요구를 했더니 그것까지 다 받아들일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주일날 대표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하면서 이 참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제 가령 기도를 해도 똑같은 기도를 해도 우리 교회 이러면 대표기도 우리 교회를 하나님 이러면 목사님 저는 마음이 좋더라고 이분들이 잠깐 왔다가 1년 3년 왔다 가는 또 학생들 가운데도 잠깐 왔다 가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로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우리 교회 이렇게 우리 목사님 우리 성도들 이러면 굉장히 마음이 좋은데 하여튼 이제 그런 표현들 하나하나가 중요하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는데
근데 이분들이 기도를 하면서 목사님 그 젊은 목사님 내외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 종놈 그 종년 이렇게 표현을 한 거예요. 저도 하도 믿어지지 않아가지고 한번 언제 가가지고 팩트 체크를 한번 해보고 싶어 과연 그럴 수 있는가 물론 우리가 다 종입니다. 종 하나님이 종이죠. 그리고 여러분들을 섬기라고 보낸 종이에요. 그래서 종을 종임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종은 종이지 그래도 그 종도 종년 종놈 그러면 기분이 나빠 똑같은 말을 해도 그만큼 존중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표현을 한다는 거 그렇게 하니까 이 젊은 사역자들이 상처를 받은 거예요. 막 사역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모여서는 혹시 그럴지 몰라도 공예배 시간에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그런 얘기를 듣고 저도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정말 이 시대가 악해졌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방하고 대적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거예요. 그냥 바울 놈 바울 저 새끼 이렇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니까 대적하고 해방하고 돌을 들어치려고 하는 거예요. 막 인격을 모독하고 죽이려고 하고 그러니까 그런 정도 종놈 종년 말 듣는 거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바울이 지금 고린도에서 그 일을 당하는데 사실은 여기서만 당한 건 아니죠. 1차 전도여행 때 소아시아에서 고린도 지역에서 얼마나 갈라디아 지역에서 죄송합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당해서 죽 돌에 맞아서 시체가 있는 상태까지 됐으니까. 그러니까 이 말 한마디 듣고도 사람이 막 사색이 되는데 그런 모욕을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돌로 돌을 던지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 사도바울도 이게 인간인지라 힘든 거예요. 그리고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특별히 자기 동족들이 유대인들이 달려들어서 바울을 공격하고 있는 거예요.
바울의 마음에 두려움의 그림자가 가득 차 있는 거 그렇지 않아도 아테네에서 지금 실패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 실패한 다음에 그다음에는 남들이 뭐라고 안 해도 자기가 제일 잘 알아요. 그래서 늘 시무룩합니다. 가령 노래하는 사람이 오늘 쫙 소리를 뽑아야 되는데 뭐가 이렇게 좀 흔들렸다 그러면 남들이 뭐라고 안 해도 내가 늘 찝찝한 거예요.
설교하는 사람이 설교 죽순인 것을 누가 제일 먼저 알아요? 목사가 제일 먼저 압니다. 그런데 내려갔는데 오늘 설교가 죽었다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 얼굴을 들 수가 없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그런 거예요. 지금 아테네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고린도에 와서 그래도 디모데와 신라가 와서 힘이 돼가지고 복음을 전했는데 또 막 공격을 당하니까 조금 살아날려고 하는 마음이 다시 위축이 된 거예요. 그래서 마음에 두려움의 그림자가 가득 찼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린도 지역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는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굉장히 음란한 지역입니다. 이 고린도라고 하는 것은 다음에 한 번 제가 소개하겠지만 고린도는 이 상인들이 지나가는 곳이 하룻밤 거기서 묵으면서 거기서 온갖 그런 그 협상과 또 그 윤락을 죽기는 그런 지역이니까 거칠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아주 거칠게 믿는 거예요. 이 교회가 또 막 부흥도 왕성하게 하지만 나중에 고린도 교회 그러면 고린도 전후서가 있잖아요. 고린도 전후서가 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거예요. 문제 많은 교회 3개를 썼는데 하나가 없어진 것이 눈물로 쓴 편지입니다. 고린도 전후서 사이에 사도바울이 오죽하면 눈물로 쓴 편지가 되겠어요 그런 교회요. 그런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이니까 여기에 가서 사도바울이 마음이 위축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을 지금 맞이하고 있어요. 바울이 어느 정도가 되냐 하면 유대인들이 확 이렇게 공격을 하니까 고린도 사람도 힘든데 막 유대인들이 따라와가지고 공격을 하니까 바울이 18장 6절에 보면 자신의 옷을 떨어 털어서 털면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냐면 제자들에게 복음 전하러 나갔다가 복음을 전하는데 안 받아들이면 거기를 나올 때 신발에서 먼지를 털어라 그래서 거기와 관계를 단절하고 모든 책임을 거기로 돌리라는 거예요.
바울이 먼지를 떨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가라 그리고 나는 이후부터는 이방인들에게로 가겠다 하면서 이제 유대인과 관계를 끊는 그러니까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가를 우리가 상상해 볼 수가 있어요.
큰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바울은 십사였습니다. 나중에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며 두려우며 힘이 떨었노라. 이게 바울이 할 말이 아니잖아요. 너희들 가운데 있을 때 내 솔직한 심려 너무 약해졌고 너무 두려웠고 그래서 너무 떨었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어요.
지금 바울이 그런 상태예요. 이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주님이 나타나셔서 환상 중에 주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우리도 살면서 힘들 때가 있어요. 툭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때가 있어요. 더 이상 살아갈 수 있는 약간의 힘도 없을 때가 있어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 차 있어요. 인간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절망적인 순간을 만날 수 있어요. 그때가 언제냐 위로의 주님이 나타나실 때 바울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해라. 계속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지 못하게 하고 해롭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다. 걱정하지 마라 하면서 주님이 나타나셔서 직접 위로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드라에서 만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과 대조적인 거예요. 사명을 위한 부르심이 아니라 위로하기 위해서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주님의 마음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의 일을 하며 또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하고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동안 바울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때가 언제냐 주님이 나타나셔서 또는 주님이 가까이 오셔서 내 귀에 속삭이실 때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걱정하지 마라. 그냥 가던 길을 가라. 내가 니 편이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