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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 누가복음 18:9~12 > 2026-01-04
[개정] 9 또 自己(자기)를 義(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蔑視(멸시)하는 者(자)들에게 이 譬喩(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祈禱(기도)하러 聖殿(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人(인)이요 하나는 稅吏(세리)라 11 바리새人(인)은 서서 따로 祈禱(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討索(토색), 不義(불의), 姦淫(간음)을 하는 者(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稅吏(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感謝(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番(번)씩 禁食(금식)하고 또 所得(소득)의 十一條(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새번역] 9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공동번역] 9 예수께서는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리였다. 11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12 저는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NLT] 9 Then Jesus told this story to some who had great confidence in their own righteousness and scorned everyone else: 10 “Two men went to the Temple to pray. One was a Pharisee, and the other was a despised tax collector. 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this prayer: ‘I thank you, God,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cheaters, sinners, adulterers. I’m certainly not like that tax collector! 12 I fast twice a week, and I give you a tenth of my income.’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
▸예수님께서는 앞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항상 기도하고 있으며,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에게 또 하나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의(義)롭다고 믿었다고 했는데, ‘과연 의(義)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는 ‘의로운 자 란 원래 그 행위가 자기가 소속된 사회의 구조와 조화를 이루고 신들과 이웃에 대한 정당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자’를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모든 사회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당시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도 유대인들 사이에서 종교지도자로서 율법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열성적이면서도 세밀한 규정까지 준수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는 자타가 인정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도 비록 외형적이지만 그들의 의를 인정하시듯,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를’이라는 단어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의 의미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their own righteousnes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바로 자기 혼자서가 아니라, 그 공동체 안에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지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누군가가 신호를 어기고 건너가는 것을 보면, 우리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썩고 상함’이 올라오고, 어느새 자신의 입에서 욕이 스며 나오면서 그 사람을 멸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도 급할 때 신호를 어겼던 기억이 떠오르면, ‘화장실이 급한 모양이네’ 하면서 썩고 상하지 않게 됩니다.
2.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이 지리적으로 산 위쪽이 있기도 하지만, 성전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고 모든 삶의 중심이기 때문에 올라가 간다고 표현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대개 하루에 3번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3시(오전 9시)와 제 6시(정오, 낮 12시)와 제 9시(오후 3시)에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데, 기도 장소는 성전 내부가 아니라 성전의 뜰이었습니다. 지금 이슬람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이슬람 사원에 가거나,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습관과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카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도 ‘삼종기도(The Angelus)라고 하여 오전 6시, 정오 12시, 오후 6시, 하루에 3번 기도하는데 종소리가 울리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기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뿐만 아니라 세리도 기도하러 올라간 것을 보면, 당시에 대부분 기도 시간을 지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기도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다고 해서, 기도의 시간을 다 지켰고, 기도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새벽이나 저녁이나 하루의 어느 특정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느 한 장소를 정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다고 해서, 기도를 다 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새 낙심하고 불안해한다면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한 것이 전부 무의미해 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으로 예수님 자신이 성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 안에 오셔서 거처를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기도를 했다고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교만함에 빠지지 말고, 우리 자신이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신령한 집임을 잊지 말고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 안에 생명과 긍휼을 구하는 자이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9~21]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고린도전서 3:16~17]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6:19~20]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베드로전서 2:3~5]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3.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먼저 바리새인의 기도의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 서서 따로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성전이라고 했을 때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건물 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소의 입구 바깥쪽에 번제단과 제물을 잡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제사장의 뜰이고, 제사장의 뜰로 들어오는 안쪽은 이스라엘의 뜰이 있고, 문 바깥쪽은 여인의 뜰이라 하였습니다. 통상적으로 그때 사람들이 이용하던 기도장소는 이 ‘여인의 뜰’이라 불리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바리새인은 번제단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 서서 기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서’ 기도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도 자세였습니다. 뒤에 등장하는 세리도 ‘멀리 서서’ 기도했다고 기록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서’ 기도하는 기도의 자세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안입니다.
[사무엘상 1: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열왕기상 8:22~23]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마가복음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문제는 그가 ‘무엇을 기도했느냐?’ 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였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자랑하였습니다. 1주일에 2번씩 금식하는 것과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근채(根菜)의 십일조, 즉 아주 사소한 것의 십일조까지 드린다고 자랑하였는데, 율법의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과부들의 가산(家産)을 삼키는 것을 책망하시고, 외식(外飾)으로 길게 기도한다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가복음 12:38~40]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하면서, 자신을 세리와 비교하고, 자신들 외의 다른 사람들은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형식을 빌어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실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예배를 드릴 때 드린 기도의 내용(열왕기상 8장)과도 전혀 딴판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이 기도를 하면서, 처음에는 서서 기도했지만 하나님 앞에 점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죄와 허물로 죽은 죄인을 불러 회개하여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사도들을 통해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라.”라고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이 바리새인과 같은 기도를 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교회 밖의 다른 사람들과 우리를 비교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내용을 살피고, 과연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그래서 새로운 한해 2026년도를 살아가면서 낙심하지 말고 항상 쉬지 말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하는 우리이기를 기도합니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7~29]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