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 최종호
올해 7월말, 정년을 앞두고 책을 냈다. 막연하게 바라던 꿈이 뜻밖에 현실이 된 것이다. 가까운 지인의 권유도 있었고 ‘일상의 글쓰기’에서 매주 쓴 글도 제법 모인데다 전남문화재단에 제출한 출판 계획서가 통과되어 경제적인 지원까지 받는 바람에 쉽게 이루어졌다.
어디에서 책을 펴낼지 정하고 나자 몇 부나 찍을까 고민이 되었다. 명단에 가족과 교직원, 친구 등 가까운 지인을 넣고, 여유분까지 합쳐 300부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최종 500권을 주문했다. 적으나 많으나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출판사 쪽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다. 책이 많이 와서 여유가 생겼다. 폭을 넓혀 친분이 적은 대학 동기에게도 보냈다. 아내도 여기저기 많이 부치는 것 같았다. 큰아들과 작은아들도 여러 권 챙겼다.
직접 건네주기도 했지만 우편으로 보낼 곳이 훨씬 많았다. 받을 사람에게 주소를 묻고 일일이 우편번호를 찾아 적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목 디스크 증세가 심해서 더 힘들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연을 헤아려서 사인과 함게 써 줄 말을 생각해 내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여름방학 내내 여기에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택배로 보내면 빠르기도 하고, 누가 언제 받았는지 알 수 있지만 보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주로 일반 우편을 이용했다. 문제는 받았다는 소식을 주지 않으면 확인할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전화를 주거나 문자로 소식이 오면 무척 고마웠다. 꼭 받아야 할 사람이 소식이 없으면 전화해서 확인했다. 한 지인은 못 받았다고 해서 두 번이나 보냈다.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에도 개성이 드러난다. 잘 받았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봉투와 책을 나란히 놓고 찍은 사진을 보내는 지인도 있다. 또,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일부분을 읽고 느낌을 쓰는가 하면, 하루 저녁에 다 읽고 소감을 적어 보냈다. 그중에 장흥에 사는 친구 아내는 예상 밖의 칭찬을 해서 인상 깊다. 원문 내용은 다 옮겨 적을 수 없어 요점만 간추려 고쳐 적어 본다.
‘식탁을 5년 썼더니 제 모습을 잃어 가네요. 둘이서 힘들게 3일 동안 사포질하고 기름칠했습니다. 책이 어제 와서 읽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몇 장 읽어 보려고 펼쳤는데 그만 새벽까지 다 읽고 말았네요. 반듯하게 누워 읽었더니 벌 선 것처럼 팔과 허리가 아프지만 뭉클합니다. 우영우가 고래를 만난 것처럼 환상적입니다. 이렇게 담백하게 잘 쓰는 분일 줄 미처 몰랐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박완서)의 문체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차 한잔 마시며 많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책이 대박날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같이 근무하다 퇴직한 선생님은 달뜬 목소리로 “드디어 책을 냈네요. 기대보다 좀 늦었지만 축하합니다.”라고 하면서 호남교육신문에 보낼 원고를 쓰는 중이라고 했다. 서평을 보고 ‘꿈보다 해몽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기자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오마이뉴스와 한국교육신문에도 '내일이면 늦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해서 실렸다. 그분은 책을 여러 권 냈다. 그래서인지 서평을 꽤 잘 쓴다. 긴 글에서 내용의 일부분만 옮겨 본다.
‘우리나라 모든 교사와 관리자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입니다. 그 외에 위의 모든 문장은 사족입니다. 책에 실린 글은 교직 생활의 체험과 실천 내용, 개인사를 비롯하여 생명존중 사상과 올곧은 시민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매우 직설적이고 솔직하여 저자의 의도를 행간에 숨기지 않은 사실 중심의 문체는 담백하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직선적인 성품의 발로로 여겨집니다. 그분의 교육 철학과 인생관은 뒤따르는 교단의 후배들에게 오래도록 귀감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대학 친구도 뜻하지 않게 편지를 보내왔다. 같은 반이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닌지라 울림이 더 컸다. 글머리에 ‘동창이지만 존경하는 마음에서 오늘만큼은 존댓말로 쓰겠다.’고 하면서 여러 얘기를 담았다. 그의 얘기 중에서 핵심만 간추려 본다.
'『내일이면 집을 지으리』 제목만 보고 집 짓는 이야기인가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따뜻하고 배울 점이 한둘이 아닌 보배 같은 책이어서 감동이었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 고생한 이야기 등은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게다가 교직 생활에서의 이야기는 내게 들려주는 것 같았고, <코앞에 놓인 과제>, <이렇게 초록별을 떠나고 싶다>는 공감 가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선생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보고 많은 이들이 공감해 주었고 감동했다는 말도 전했다. 9월 중순에는 담양 읍내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선생님이 쓴 책을 읽고 느낀 점이 많아 내게 읽어보라."며 기초 학력을 담당한 자신에게 주었단다. 그러면서 1,2학년 담임을 대상으로 문해력을 어떻게 길러줄 것인지 얘기해 달라고 했다. 출판 덕분에 강의할 기회까지 생긴 셈이다.
글을 쓰고 원고를 정리해서 책을 내는 일도 힘들지만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보내 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많은 지인들이 예상 밖의 칭찬과 평가를 해 주어 즐거웠다. 행복한 아우성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가치로운 일이기에 보람도 컸다. 무엇보다 아내와 자식, 소식이 뜸한 친구와 친척에게 소식을 전하고 존재감을 드러낸 것 같아 뿌듯하다. 큰마음 먹고 누구라도 한번쯤 도전해 볼 일이다.
첫댓글 저도 그 책 읽고 싶습니다. 재판 내시면 사서 읽겠습니다.
카톡에 근무지를 알려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칭찬 받으시니 글쓰기의 세계로 이끈 동료로서 제가 다 뿌듯합니다.
후일담 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글쓰기 공부도 하고 책도 낼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마음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와! 부럽습니다. 글이 따뜻해서 겨울에 읽으면 더 좋겠네요.
황 문우님, 주소 알려주면 보내드리겠습니다.
같이 글쓰기 하는 동료로 자랑스럽니다. 그리고 독자가 최교장님의 진심을 같이 읽었다니 더 기쁩니다. 제목 보고 집짓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해서 빵 터졌습니다. 김석수 원장님이나 최교장님 모두 찬사를 받아서 저는 점점 자신이 없어지네요.
아이고나! 하산해도 될 분이 왜 이러실까요? 아마 최수석님은 더 많은 찬사를 받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저는 책 잘 읽었는데 감상문 쓸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문우님은 아이 키우느라 힘들잖아요?
칭찬 받아 마땅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