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 / 조영안
우리 집 아침 풍경은 요란스럽다. 남편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쯤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전에 미스터 코리아 선발대회 경남 대표로 나갔던 보디빌딩 선수였다. 지금도 기본 운동은 거의 빠지지 않고 한다. 무릎 수술을 하고 나서는 상체 운동 위주로 한다. 여섯 시에는 청소기를 돌린다. 구시렁거리면서도 구석구석 윤이 날 정도로 청소한다. 이때 잠자던 코코와 호두가 마주하며 짖기 시작한다. 청소기 앞에서 주입구를 노려보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두 마리가 나란히 서서 짖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재밌다. 결국 승자는 남편의 청소기다.
청소가 끝나면 두 마리 개를 10분쯤 산책시킨다. 그리고 밥통, 물통, 배변판을 청소하고, 하나하나 닦아 정리한다. 또 모아 둔 빨랫거리를 세탁기에 돌린다. 어머니와 나는 손세탁을 자주 한다. 그런데도 산더미다. ‘세탁기가 없었던 옛날에는 어찌 살았을까?’ 투덜거린다. 영락없는 가정주부다. 그러고 나서야 출근을 준비한다.
남편은 내가 봐도 정말 바쁘게 산다. 이렇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수술과 입원을 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건강 이상이 발목을 잡았다. 원래는 퇴직하자마자 계약직으로 다시 근무하기로 했었다. 평소에 건강만큼은 자신했는데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더니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하여 바로 수술했다. 흔히들 말하는 심장마비의 원인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그 원인을 모르고 즉사하는 경우가 많았단다.
또 협심증은 가족력이 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시누이 두 사람 모두 같은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의 소개로 병원 수송 담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내 코로나가 터졌다. 병원 출입자들 코로나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일로 업무가 바뀌었다. 여러 번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꿋끗하게 이겨 냈다. 하지만 결국에는 병원의 경영 사정으로 퇴사하게 되었다. 지금의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고용보험을 받게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때부터 오늘 아침처럼 조금씩 집안일을 시작하면서 정말 바쁘게 사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식탁 위에 무화과 두 개가 있었다. 싱싱한 게 금방 딴 거 같았다. 넓지도 않은 마당 옆 화단에 포도나무, 사과나무,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 무화과 나무 두 그루가 있다. 심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맛을 보여 주다니 신기했다. 그럴 때마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맛보라고 챙겨 온 남편도 고마웠다. 한 개는 어머니 드리고, 나도 입에 넣었다. 달고 맛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것도 남편이 부지런해서 맛볼 수 있는 행복이다.
휴일에도 쉬지도 않고, 시간만 나면 농장에 들른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거기에 심은 과실수도 여러 가지다. 자두가 열리는 걸 선두로 서리맞은 감을 따는 늦가을까지 입은 호사를 누린다. 남편이 정성스럽게. 가꿔서 어수선했던 농장도 정리가 되어 간다.
이런 바쁜 와중에도 예전부터 하던 취미생활도 열심히 한다. 아들이 사 준 드럼이 거실 한쪽에 있어서 연습하는 데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고용보험 기간 8개월이 끝나고 바로 시 공원과에 다니게 되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다시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는 더 바쁘게 사는 사람이 되었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음악 학원에서 드럼을 연습한다. 집에 와서는 개 운동도 시킬 겸 두 시간을 걷는다. 덕분에 불룩했던 배가 쏘옥 들어갈 정도로 날씬해졌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추어 가게로 온다. 이것저것 무거운 상자도 옮겨 주며 마무리 작업을 돕는다. 때론 밥 먹을 시간도 없다며 구시렁대며 한 잔의 술로 하루의 피곤을 푼다. 사실 직장 다니기에 나를 도와주는 일은 그만둬도 된다. 그런데도 아무런 불평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을 해 주는 남편이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그러다가도 힘이 들면 가끔 “세상에서 나보다 더 바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며 큰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