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되는 부모 / 박미숙
14년 전, 교육청에서 독서 치료 연수 공문이 와서 신청했다. 첫날, 강사님은 독서 치료 관련 책을 여러 권 늘어놓고 제일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라고 했는데, 수잔 포워드의 『독이 되는 부모』를 선택했다. 화가 나면 딸들에게 막 소리치는 내가 책 제목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독이 되는 부모 유형 여섯 가지 중 ‘말로 상처를 주는 부모’가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한 말들이 자신감을 잃게 하고, 자존심을 무너뜨리며, 엄청난 마음의 상처도 남겼다는 것을 책으로 확인하고 나니 참 부끄러웠다.
연수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써 가서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12주 동안 스스로를 많이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는데, 그 시간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후속 모임을 제안하여 여덟 명의 선생님이 같이하게 되었다.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많은 선생님이 있던 연수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사연들을, 우리끼리 있으니 다 얘기했다. 아이들 키우는 문제, 남편과의 다툼,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 모든 것을. 속내를 다 드러낸 글을 읽다 보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듣는 사람도 함께 운다. 그러고는 서로 얘기 나누며 위로해 준다.
모임 횟수가 거듭될수록 다른 선생님들은 마음을 다스리는 힘도, 글쓰기 실력도 늘어나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으나 난 늘 제자리인 것 같았다. 그 당시 남편은 광양에 먼저 가 있었고 혼자서 딸 둘을 보살폈다. 두 딸 다 수험생이었다. 큰딸은 수의대 1차 합격하고 수능 준비를 하다 몸에 탈이 나서 시험을 치를 수가 없게 되었고, 작은딸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새벽 한 시 반에 학원에 가서 데려오고 적금을 깨어 고액 과외까지 시키는데도 말이다. 작은딸 성적이 내려갔다고 말하면 “뭐가 걱정이냐? 목표를 낮추면 되지.”라고 대답하는 남편이다 보니, 아이들 문제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다. 큰딸의 건강, 작은딸의 진학 문제 다 내가 알아서 해야 했다. 남편이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여 돈이 끝없이 들어가고 있어서 경제적인 부분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가방 속에 몰래 화장품과 사복도 넣어 다니는 아이에게 “지금 제 정신이냐?”라고 고함을 질렀다. 회초리로 때리기도 했다. 반항하고 더 말을 듣지 않았다. 수능 전날, 셋이 성당에 가서 촛불 켜고 기도도 하고 와 놓고선 집에 와서 싸웠다. 큰딸은 수능 보는 것을 포기했는데도 교육청에서 수험표를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고 다녀와서는 계속 울었다. “넌 시험 치러 갈 수 있어서 좋겠다.” 진심으로 부러워서 한 말이었는데, 예민했던 작은딸은 “그럼 네가 가라.”고 한다. “넌, 언니가 지금 어떤 상황인데 그런 말을 하냐?”라고 큰소리로 혼내다 셋이 같이 엉엉 울고 말았다. 난 수능 전날에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엄마는 언니만 신경 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작은딸의 마음속에 구멍을 뻥 뚫리게 만든 못난 엄마였다.
어릴 때부터 톡톡 튀는 기발한 생각을 잘하며 남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던 애가 변했다는 것을 딸이 교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생각을 선뜻 말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과를 불러올까 봐 작은 결정 하나 내리는 것을 어려워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있는 것도 많이 힘들어했다.
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함부로 내뱉은 말이 자존감을 뭉개고 자신감을 떨어뜨렸다. 재주가 많았던 아이의 능력을 제대로 살려 주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들었거니와 자녀 교육의 방식이 대물림될까 봐 걱정도 되었다. 자신이 성장해 온 것처럼 자식도 키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작은 일에도 화내고 큰소리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 않은가?
대물림의 고리를 잘라야 했다. 언니의 권유로 불교대학 입학을 했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108배를 하며 말로써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고도 애썼다. 무지를 깨달아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려고 했다. 딸에게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여러 번 했다. 뒤늦게나마 노력한 덕분인지 “엄마도 그때는 참 힘들었겠다.”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다.
딸은 결혼 후에 마음이 안정되어 더욱 잘 지낸다. 다정한 남편과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매일 같이 전화하거나 카톡을 하며 안부를 물어 온다. 아빠 일 도우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는지를. 나이 들어 보살핌이 필요할 때가 되면 자기 집 근처에서 같이 살자고도 한다. 안 한다고 대답하면서도 싫진 않다. 살가운 딸을 보며, 내가 뿌린 독이 조금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