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허문 자리 / 명주
큰딸이 백일 무렵 이 집에 들어왔으니, 이곳에서 산 지도 서른네 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돼지농장 관리사로 쓰던 집으로, 거실 한 칸과 방 두 칸이 전부였다. 그사이 마을 가운데 있던 안집이 화재로 무너져 내렸다. 식구가 늘면서 거실과 방 사이의 벽을 터 거실을 넓혔고, 방 두 칸을 더 증축했다. 지붕의 슬레이트를 걷어 내고 칼라강판으로 바꾸었으며, 천장은 합판으로 마감했다. 그렇게 한 군데씩 고쳐 가며 살아온 집이다.
어느덧 두 아이는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막내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전공을 살려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비교적 가까운 광주에 사는 딸네가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왔다. 밖에서 점심을 먹자는 남편의 말에 나는 집에서 준비하자고 했다. 마당의 넓은 데크에서 전복과 삼겹살을 굽고 제철 바지락으로 국을 끓이면 뽀얀 국물이 우러날 터였다. 돗자리 위에 음식이 하나둘 놓이자 가족들이 자리를 잡았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이 불판 위의 고기는 조금씩 줄어들고 복분자주 잔이 오갔다. 식사를 마친 뒤 마당을 뛰어다니는 손주들을 바라보다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셨다. 사위가 전부터 생각해 둔 말인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식탁이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요?”
“우리도 간간이 그런 말을 해 오던 참이네.”
식탁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주방의 공간이 좁아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을뿐.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 못지않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사위가 방바닥에 앉았다 일어서려면 불편할 것 같았다. 딸네가 돌아간 뒤 방과 주방 사이의 벽을 터 식탁을 놓기로 마음먹었다. 손재주 좋은 남편은 필요한 자재를 사고, 우리 지역에서 구하지 못한 공구는 인접한 장흥군까지 가서 빌려 왔다. 벽을 허물어 두 공간을 하나로 합치면 햇빛도 더 깊이 들어오고 집 안도 한결 넓어질 것 같았다. 구조에 지장이 없는 벽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공사를 준비했다.
공사에 앞서 두 공간의 살림살이부터 들어냈다. 싱크대만 남겨 두고 물건들을 다른 방으로 옮겼다. 집을 고치는 동안 버릴 것도 많았다. 여러 해 입지 않은 옷가지가 옷장 한쪽에 걸리고 한 번 읽은 뒤 다시 펼치지 않은 책들은 자리를 차지한 채 쌓여 있었다.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붙들어 둔 물건이 많아질수록 정작 필요한 공간은 좁아졌다. 이번에는 과감히 비우기로 했다.
준비를 마치자 본격적인 먼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벽의 두께는 25cm쯤 되었고, 벽돌은 세 겹으로 쌓여 있었다. 벽돌 사이의 시멘트는 단단히 굳어 있어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파괴 해머 드릴로 구멍을 낸 뒤 조금씩 부수어야 했다. 공구는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다. 벽돌이 부서질 때마다 시멘트 가루가 집 안으로 날렸다. 바닥과 창틀은 물론 문틈에도 먼지가 내려앉았다. 비닐로 가림막을 치고 방마다 테이프로 틈새를 단단히 막았는데도 분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내가 출근하고 나면 남편은 혼자 집에 남아 벽을 부수었다. 아침저녁으로 축사 일까지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는 날씨에 무거운 공구를 들고 땀을 흘렸을 남편을 생각하면 안쓰러웠다. 큰돈을 들여 업자에게 맡기면 수월했겠지만, 비용을 아끼려고 몸으로 감당한 일이었다. 스무 날 남짓 공사를 마쳤을 때 남편의 몸무게가 3kg이나 줄었다고 했다. 나도 입술이 부르트고 깨진 벽돌을 밖으로 나르느라 어깨죽지가 아팠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청소는 일주일이나 이어졌다. 싱크대 바닥을 닦고 그릇을 씻어도 시멘트 먼지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닦고 돌아서면 다시 눈에 띄는 먼지 때문에 대형 물티슈 한 박스를 다 써 버렸다. 벽 하나를 없애는 데 이렇게 많은 일이 따를 줄은 몰랐다. 젊을 때는 하루 종일 움직이고도 자고 나면 다음 날 거뜬했는데, 이제는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이 무거웠다. 마음만 앞세울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했다.
식탁은 남편이 원목으로 직접 만들었다. 나무의 굴곡진 가장자리를 반듯하게 잘라 내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자 나뭇결과 옹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길게 만든 벤치도 식탁과 한 쌍을 이루었다. 같은 나무의 결이 이어지며 두 가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벽을 허문 자리에 남편의 손으로 다듬은 식탁과 벤치가 놓였다.
공사가 끝난 뒤 남편과 목포 삼호에 있는 가구 할인 매장을 찾았다. 오래된 소파를 바꾸고 식탁에 놓을 의자를 고르려는 목적이였다. 주머니에는 아이들 형제 모임 통장에서 건네 준 신사임당 지폐가 두둑하다. 눈길이 머문 것은 갈색 원목의 다리와 등받이에 진주빛이 도는 회백색 앉는 부분이 어우러진 의자였다. 나무의 따뜻한 빛과 회백색의 은은한 광택이 단정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의자에 손을 얹어 보고 앉았다 일어나 보았다. 보기 좋은 것보다 편하고 가벼운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멋진 의자라도 무거워서 불편하다면 오래 곁에 두기 어려울 터였다. 이참에 전등도 밝고 단정한 것으로 교체했다.
도배와 장판까지 새로 하자 집 안이 한결 환해졌다. 추석에 내려온 아이들은 달라진 집을 둘러보고 환호하며 엄마 아빠 진짜 고생 많았다며 위로를 건넸다. 그들에게 깜짝 선물이 된 것같아 우리 마음도 흐믓했다. 그러고 보니 알뜰하게 모은 회비를 덜어내서 가구 사는 데 보태라고 마음 써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다. 내일 가족 단톡에 고마운 인사를 해야겠다.
첫댓글 정 선생님과 남편 분 다 대단하십니다. 퇴직하고 한 달이 지났는 데도 아직 정리에 손도 못 댄 게으른 나를 반성하며 글 잘 읽었습니다.
집을 가꾸는 두 분의 모습이 눈에 훤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와우, 남편 분이 맥가이버셨군요. 직접 만든 식탁과 의자가 궁금하네요. 분명 멋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