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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린 사람---소암 조재훈 | 조회 15 |추천 0 | 2019.09.28. 09:51
남원시 송동면 두신리398번지 두곡서원지
경주김씨자손의 연대 내력
신라56대 경순왕의 셋째아들인--김명종 영분공 파 중시조 자손들이 [경주인]
남원시 송동면 두곡리 두곡서원에 봉안되신
영분공파 12세손인 명암-김인경은---1168년에출생하여---1235년에 별세하시었습니다
1235년경 영분공파 자손들께서--고려때에 강동성에서 거란족을 평정하여 공을세워
중서시랑 평장사 에 올라다한다 문무를 겸하신 휼륭하시었든 인물이라합니다
벼실은 서시랑 평장사를 지내셨다합니다
고려말 충신---영분공의 16세손인---수은공 김충한은-수은공 파조로-자는 통경 호는 수은이시다
벼실은-봉익대부 예의판서시 를 지내셨습니다
고려말에 이성계 반정으로 불사이군 충신으로---두문동72현의 한분이신 충신이셨습니다
수은공[예의판서] 김충한 충신께서는선조님--- 고려6은이라 합니다---
유명하신분이 우리지역에 게시었군요 -------
우리옥천조씨 원길 선조님께서= 5은으로 농은이십니다
우리선조님---농은 조원길선조님과--- 경주 수은 김충한 선조님 과 함께 고려에 충신이셨습니다
포은정몽주-목은 이색-야은 길재-도은 이숭인-농은 조원길-수은 김충한
우리 송동지역에 고려말에 충신이셨든 6은=김충한수은공 충신분이 계시었습니다
두곡서원창건은--1766년영조42년에 수은공-김충한 충신을 봉안하기위하여 자손들이 창건하였다합니다
정면3칸 -측면2칸 -사우와 -동재 -서재 -강학당 을건립하여 -학문을 연마하였든 서원이였다 합니다
남원 도호부 시대에 48방지역중에서---두동방지역으로
수은선생님의 유묵이1350년~1428년 전하여져있담니다
1711년에 경주김씨 신묘보--수은공파 창간보 참조
1824년 두곡서원을 중건하여 이때에 명암 김인경 선조님을 봉안하였다 합니다
1868년에 조선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훼철 되었다합니다
1945년 광복후에--- 자손들이 두남사를 재건하여---
매년 음력9월1일에 -전국에 자손300여명이 참석하여 제향을 봉향한다 합니다
두곡서원이라한 명칭은---수은공이 두문동에 은거하시였든일에
두자를 앞에기록하여---두곡서원이라 호칭하였다는 설이있습니다
1564년~1614년에 취락당현판글씨를---김습이쓴글이라합니다
전라북도 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홈실]에 죽산박씨문중이 번창하였습니다
시조는 박기오 로고려 왕건을도와 경기도 안성 [죽산] 을식읍으로 하사를받어거주하다가 후손인
박문수가 이성계반정으로 72현으로 두문동에 숨어들때 자기부인과 가족을 홈실로 내려보내어
홈실에서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다합니다
우리남원지역에서 경주인 김충한 충신과 죽산인 박문수충신 두분이 72현이십니다
두곡서원지 [杜谷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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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두문동 72현의충의정신을 본받아 세상과 차단한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막골이라 하다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막을 두(杜), 골짜기 곡(谷)자를 써서 두곡(杜谷)으로 바뀌었다. 일설에는 본래부터 두곡이라 했는데 형인 두계공의 이름에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망골은 막골의 와전인 것으로 보인다. 두곡에는 형 두계공이 정착한 대두곡(大杜谷), 동생이 정착한 곳을 소두곡(小杜谷)이라 했다고 한다.
두문동 72현이신 수은공(관작 奉翊大夫禮儀判書 봉익대부예의판서)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질이 있었으니 체격이 장대하고 성격이 위엄하고 기상이 의연하였다. 학문에 뜻을 두고 책을 읽을 때 한번 읽으면 바로 그 뜻을 체득하였고 저술에도 능하셨다. 주변등에는 농사를 짓고 있으며 가을비가 냬려 땅이 촉촉회 적어있으나 들판에는 오곡이 읶어가면서 둘판 등지에는 황금물결이 출령거리는 가을이라 바람도 쌀쌀한 기운이 둘어오고 있다,
두곡서원이 자리한 앞에는 당산나무가 있어 600백년된 느티나무가 있으며 거대한 바위의 주역[성혈]이 파져있으며 지리산과 백두대간 줄기 천갈래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광한루원을 거쳐 요천강이 흐르는 곳이며 물은 흘려 섬진강으로 흐르는 곳이다,
두곡서원이 있었던 터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600백년된 느티나무는 구멍이 뚤엊져있어 어린 5명은 들어갈수 있는 곳이다.
당산나무가 있던 곳에는 거대한 바위에 성혈[ 주역]이 파져있어 이곳은 청동기시대의 밤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표시를 했다가 다음날 선조들이 바위등에 구멍을 내고 점을 본다던가, 날씨와 관상을 보는 곳이다,
一片丹心不二身(일편단심불이신): 수은 할아버지는 고려말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이른바 6은이라 칭하는 충신으로 모든 관직과 벼슬을 버리고 전라북도 남원으로 낙향하여 사셨으며, 후손에게도 조선시대에는 절대로 관직에 진출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셨다. 그 후 조선시대에 후손들은 유언을 받들어 시골에 묻혀 가난하게 살았지만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들어섰으니 이제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다음은 수은 할아버지가 지으시고 쓰신 일편단심가를 올리고 그 풀이를 해 보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포은 정몽주 선생의 단심가는 알아도 우리 할아버지의 단심가는 모르고 있었다니 이 또한 조상님께 부끄럽기 그지없다.
一片丹心不二身(일편단심불이신) 변하지 않는 참 마음은 두 몸이 아니니 松京何在淚流巾(송경하지루류건) 송도는 어디인가 수건에 눈물 흘리는데. 雪山獨立苞桑世(설산독립포상세) 설산에서 천지가 막힌 세상에 홀로서서 無愧首陽斷絶塵(무괴수양단절진) 이제에 부끄럽지 않게 세속과 단절하네.
두곡서원 글을 올린 사람--- 소암 조재훈 19.09.28. 0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