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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갑부다
이 홍사
돈을 쌓지 말고 덕을 쌓으라고 했다.
그래! 기죽지 말자.
을이라고 갑에게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는 나도 갑이고, 무엇보다 나는 갑부다.
어제는 일하면서 갑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지긋지긋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꿈자리까지 뒤숭숭했다. 사과밭의 고목을 캐내는 작업이었는데 벌써 둥치는 다 잘라가고 뿌리만 남은 과수원이었다.
굴착기를 사십 년이 넘도록 한 홍랑이 그런 작업이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지만, 주인인 갑의 비위를 맞추기가 힘이 들었다. 기사가 있는 날 하자고 했으나 어제따라 기사들이 다 다른 현장, 고정거래처에 투입되었는데 꼭 어제 해야 한다고 전화가 세 번이나 와서 마지못해 홍랑이 주기장에 놀고 있는 장비를 끌고 나갔다. 어제의 갑은 칠십 대 노인인데 유별났다. 그냥 뿌리만 캐내고 잔뿌리를 정리하고 밭을 고르면 되는 일인데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았는지, 성질은 급해서 작업하고 있는 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잔소리를 해댔다. 얼마나 눈에 거슬렸는지 일하다가 팽개치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일 정도였다.
“오랜만에 끌고 나왔더니 호되게 당하는구먼. 그래 을이니까 참자.”
어제는 이 말을 속으로 열 번도 넘게 삼켰다. 정말이지 유별나게 지독한 노인이었다.
그럼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갑인가?
홍랑은 일을 하면서 곰곰이 짚어보았다.
주유소? 부품가게? 타이어가게? 중기 정비공장? 굴착기 기사들?
짚어보니 을은 여러 곳이 있었다.
수정하자. 굴착기 기사들은 이미 을이 아니다. 오히려 갑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칼자루는 이미 희소성의 원칙에 의해서 기사들에게 넘어간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갑부라고 하기에는 타당하기나 한 것인가?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하면 되는 일이고, 사실이지 아침마다, 혈압, 당뇨, 공황장애, 간에 좋다는 양약을 한 줌이나 상복하고 있지만, 이미 죽은 친구들과 비교하면 제 발로 다니며 오줌을 누고, 더 나아가 일할 수가 있고, 한 번 더 나아가 혼자서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다니니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은 갑부다.
그래! 나도 갑부다.
이렇게 생각하니 항상 쪼들린다고 생각하던 고정관념의 지축이 흔들린다.
가만히 짚어보니 마음만 갑부가 아니라 실제로 갑부다. 자식 갑부? 이 시대에 아이를 넷이나 두었으니 분명 홍랑은 갑부다.
“여보시오! 나도 갑부요.”
홍랑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려본다.
해장부터 이게 무슨 지랄이야?
그 생각을 하지 옆에 아무도 없지만 조금 머쓱해졌다.
오늘 새벽에는 사무실에 내려와 아이들에게 사진 한 장과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홍랑은 자식들이 많음으로 네 번이나 날려야 한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똑, 같은 내용을 네 번이나 날렸다.
문제는 셋째 딸이다.
이 년은 모든 문제에 감성이라곤 모기 눈물만큼도 없고 모든 손익을 수치로 파악하는 냉철한 성격을 지녔다. 좋은 말로 하면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고 하지만 잔정이라곤 서푼 어치도 없어, 이 녀석과는 윤기가 찰찰 흘러야 할 부녀관계가 메말라 있다. 홍랑이 인터넷 쇼핑을 할 줄 몰라서, 지방 서점에 없는, 꼭 필요한 책 한 권을 사 달라고 부탁을 하면 단박에 제 아버지에게 책값을 요구하는 녀석이다.
이게 서운이라는 녀석이다.
딸 둘만 낳고 안 낳으려다가 아들이 생각나서 낳은 녀석인데 딸이라, 덤으로 태어난 셈인데 출생신고도 미루다가 과태료를 붙여서 출생신고를 하고 이름도 짓지 않고 너무 서운해서 서운이라고 불렀는데, 제 주제도 모르고 정말 서운한 짓거리만 골라서 한다.
이 녀석의 버릇부터 고쳐주어야 할 일이다.
두어 달이 있으면 홍랑의 회갑이다.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이들 같을까? 마음도 늙어야 하는 법이거늘, 아직도 철딱서니들 같다. 홍랑 자신이 생각해도 그렇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회갑?
기회는 이때다.
결코, 기회를 유기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부담을 왕창 주어 존재감을 과시해야 한다. 부담을 왕창 주다니? 불량 아버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야 늙어가는 아버지가 있음을 직시하고 항상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게 홍랑의 지론이다. 아이들을 너무 위해주면 안 된다. 이 만큼 키워주었으니 이젠 받을 건 받아야지. 그게 아이들이 자기중심 사고에 벗어나게 만드는 일이다.
새벽에 메시지로 보내준 사진은 다름이 아니라 손목시계의 사진이었다. 얼마 전 대구에 서점탐방을 갔다가 로렉스 전문매장에 들러 가장 비싸다는 금딱지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었는데 그 사진을 날리고 사진 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두어 달 있으면 아부지 환갑이다.
아부지는 자식이 넷이다. 알아서들 해라.
셋째딸이 메시지를 확인하면 ‘아버지! 아버지 입으로 요구하기 민망하지도 않으세요?’라고 할 게 뻔하다. 그렇지만 ‘욕봐라!’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날렸다. 아이들이 모여서 의논해서 얼마씩 각출하여 사 달라는 얘기다. 시계는 상당히 고가다. 물론 홍랑이 그런 시계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형편이 안된다고 안 사주어도 그만이다. 아이들 마음에 부담을 지우는 게 홍랑의 목적이고 존재감을 다시 심어주는 게 메시지를 보낸 이유다. 마땅히 부모에겐 빚진 기분으로 살아야지.
잘 빠진 외제 승용차 사진을 날리려다가 심사숙고해서 한 단계를 낮추었는데 사실, 넷이니 각자 얼마씩 각출하면 그 정도의 금액은 어렵사리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자식이라고 봐 줄 것이 없다. 이기적인 생각이 가장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다. 초년고생은 은을 주고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는 나밖에 없다. 내가 표출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이가 없다. 자식들도 예외는 아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니 제 아버지를 거둘 줄 알아야지.
이 말을 곱씹으며 불량 아버지인 홍랑은 담배를 빼서 물었다.
큰딸은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대학을 서울로 가려는 걸 홍랑이 우겨서 집에서 가까운, 사내들만 득실거리는 지방 국립 공대를 보냈는데 거기서 술을 배웠다. 그게 홍랑의 불찰이었다. 결국, 술 때문에 이혼을 한 것이다. 보습학원의 강사로 뛰다가 지금은 혼자서 사업자를 내고 남의 공장을 빌려 축산 유통업을 하고 있는데 한우를 전문으로 취급해서 각 식당에 납품하는 모양이다. 공장이 잘 돌아가는지 배달하는 작은 냉동탑차만 세 대다. 일꾼이 없으면 직접 고기를 자르고 포장을 하는지 얼마 전에 왔을 때 보니 손이 상당히 거칠어져서 홍랑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이 녀석이 내년이면 마흔인데 얼른 다시 새 출발을 했으면 좋으련만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든다.
또 이 년은 눈물샘이 얕아서 조금만 자극적인 말을 하면 울어버리는 게 흠이다. 큰딸 얘기는 여기서 그만 들먹이자. 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둘째 딸은 큰딸과 한 살 터울이다.
이놈은 법대를 나와 고시를 준비하지도 않고 일찌감치 검찰 사무직을 쳐서 검찰 수사관이 된 녀석이다. 직장에서 만나서 사위도 검찰 수사관이다. 지금은 맞벌이하는 부부인데 국가직이라 딸년은 이번에 진급하면서 발령을 멀리 받아 서울 중앙지검에 있고 사위는 대구 서부지검에 있으니 주말부부를 하는데, 내년 인사발령이 있을 때까지는 꼼짝없이 주말부부를 해야 하는 놈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손자들은 대구에서 사위가 데리고 있는데 대구 서부지검에서 만났고 그곳이 이 녀석들의 친정으로 생각하는지 그곳을 메인 캠프로 들락거린다. 이놈은 여행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아이들이 방학이면 해외로 나가고 주말이면 하루도 집에 붙어있지 않는 가족들이다. 홍랑이 한창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하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생활 스타일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와는 세대 차이라고 일축했다. 지금은 아파트 청약 때문에 돈이 들어간다고 아내를 통해 중도금을 융통해달라고 하지만 그건 해주는 한이 있어도 환갑을 빙자해서 받을 건 받아야 한다는 게 홍랑의 생각이다.
셋째 딸, 이 년은 나이가 뚝 떨어져서 큰딸과 띠동갑인데 올해 결혼을 했다. 이 년은 발가벗겨 남극이나 북극에 내다 버려도 살아서 돌아올 독한 놈이다. 참 욕심이 많은 아이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이 되어 대구의 무슨 구청에 근무한다. 사위는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고. 아직 임신하지 않고 있다. ‘시집갔으면 사흘 만에 아기를 안고 와야지?’ 했더니 신혼 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 아직은 아기 생각이 없다는 년이다. 잔정도 없고 애교마저도 없어 쌀쌀맞은 년이다. 이 서운이란 년의 얘기는 앞에서 조금 했으니 이쯤 하자.
그다음은 누구지?
그렇지 아들이지.
아이들이 많으니 좀 헷갈리네.
아들! 이 녀석도 제 누나와 한 살 터울이다. 결과적으로 말해 이 녀석을 낳기 위해 실수로 셋째 딸을 낳은 것이다. 딸 셋을 낳고 낳은 녀석이라 제 몸이 귀하다는 걸 아는 녀석이다. 이런 녀석은 언제나 망나니짓을 하게 마련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제 엄마 속을 엄청 썩인 녀석이다. 군에 갔다가 와서 지금은 홍랑의 가업을 물려받는다고 사업자 등록을 내고 홍랑의 굴착기를 한 대 물려받아 굴착기 운전을 하고 있다. 일은 그럭저럭하는데 아직 일을 물고 오는 방법이나, 대인관계, 일에 대해 견적을 내는 눈이 없어 그저 굴착기 일만 시키고 홍랑이 월급을 준다. 월급이 아니라 하루 일을 하면 얼마를 쳐서 준다. 주기장에 있는 장비들을 다 관리하라고 하고 그 대가로 기본급으로 얼마를 주고 일을 나가는 날을 계산해서 경리부장인 홍랑의 여동생, 그러니까 제 고모가 날짜를 계산해서 지급하는데 언젠가 명세서를 보니 받아가는 금액이 장난이 아니다.
“제 친구 중에서 돈 버는 인간은 저밖에 없어요.”
이 말은 달리 해석하면, 친구들에게 제가 물주입니다, 하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일이 없는 날이면 어디를 쏘다니는지 잠시도 집에 붙어있지를 않는 녀석인데, 이놈은 메이커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신발이나 옷, 가방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이커가 아니면 입거나 신지를 않는다.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를 하는데 운동화 한 켤레에 얼마라고 해서 홍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게 비싼 운동화가 세상에 다 있었나?’ 홍랑이 깜짝 놀라니 그것보다 더 비싼 운동화도 있단다. 그런 녀석이니 제 아버지 회갑 선물을 하는데 좀 보탠다고 이설을 달 녀석이 아니다. 제 누나들이 형편을 고려해서 얼마를 내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낼 녀석이다.
새벽에 그렇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생각하니 홍랑은 자신이 갑부로 여겨졌다.
자식 갑부!
이 시대에 이렇게 많이 낳았으니 분명히 갑부다. 당시에는 정부 시책이 저출산이었다. 정말이지 십 년 앞을 못 내다보는 근시안적인 정부였다. 홍랑이 예비군 훈련을 받던 시절만 해도 정관수술을 하는 자에 한해서는 훈련을 면제시켜주던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홍랑은 아이들을 더 낳았다. 심지어 셋째 딸과 아들을 낳을 적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었다. 출생신고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아야지만 의료보험에 적용되던 시절이었다. 한심한 인구정책이었다. 십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다니? 통계청은 두었다가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어떤가?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갖가지 혜택을 부여하지만,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는다. 가임연령대가 줄었기 때문이다.
홍랑이 넷째 아이, 그러니까 아들을 낳고 계에서 하는 모임에 나가자 소문을 들은 모양인지 중학 동기라는 어떤 녀석이 말했다. 앉은 자리에서 홍랑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여럿이 있는데 술상 너머로 외침을 휙 던진 것이다. 그 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너는 미개인이가? 원시인이가? 우째 키울라 카노?”
일을 깔끔하게 마치고 모임에 참석해서 한잔한다고 한껏 찰랑대던 기분이 팍 엎질러졌다.
“야 이 자식아! 너한테 키워달라고 하지 않을 터이니 쓸데없는 걱정을 마라.”
그 자식은 딸 하나를 낳고 그만두었다. 당시의 정부 시책을 참 착실히 따랐던 선량한 국민이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웃기는 소리!
지금 눈치를 보니 명절이면 시집간 딸이 시댁에 들렀다가 친정을 오니 종일 딸을 기다리느라 손가락을 빨고 있는 모양이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슬픈 말은 바로 이것이다. ‘나도 그럴 수 있었는데!’ 녀석은 이 말을 수시로 가슴이나 입으로 삭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자고로 인생이란 연습이 없는 물건이다.
그 녀석에 비교하면 홍랑은 단연 갑부다.
홍랑이 새벽부터 갑부를 들먹이는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빚쟁이지만 미얀마에 나가면 실제로 갑부다.
한국에서는 농협에 진 빚의 이자를 매달, 홍랑이 소유하고 있는 굴착기 기사 두 명 월급에 맞먹는 금액을 내고 있다. 그러니 원금은 천문학적 숫자다. 빚쟁이가 확실하다. 생각하니 이번 달에 내야 할 이자가 아직 누구 주머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갑부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갑부?
새벽에 느닷없이 뇌리를 스친 단어인데 갑부의 기준점이 어디일까?
스스로가 만족하는 정도?
남에게 구차하게 빌리러 가지 않는 정도?
그럼 거지도 갑부가 되네?
기준이 모호하다.
그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미얀마에 나가면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양곤에 집이 열세 채가 있다. 그림같이 지었는데 아직 팔리지 않은 집이다. 팔아서 한국의 빚을 청산해야 할 집인데 완성을 한 게 아니다. 외벽의 페인트 마감을 미루고 있다. 미얀마는 열대 몬순기후라 우기가 길어서 페인트를 칠하고 일 년이 있으면 헌 집처럼 보인다. 페인트에 곰팡이가 피고 퇴색되기 때문이다. 우기가 오륙 개월 지속하니 페인트가 견디질 못한다. 내부장식의 페인트는 그런 일이 없는데 외벽의 페인트는 분양이 되는 시점에 칠하려고 미뤄두고 있다. 몽골의 사업을 접고 미얀마로 건너가 수중에 가진 여윳돈으로 해보자고 했는데 주물럭거리다 보니 커져서 빚까지 동원되었다. 총 스물아홉 세대를 지었는데 지주와 공동개발했던 게 있어서 지주에게 몇 채를 주고 또 분양해서 막바지 공사비를 주고, 허가와 준공을 도맡고 법적인 문제를 처리한 변호사 사무실에 제일 싼 것으로, 현물이라며 한 채를 이전 해주고 열세 채가 남았는데 팔면 모두가 홍랑의 몫이다.
이 정도면 갑부가 아닌가?
아니다.
지난번에는 돈이라곤 씨가 말라서 그렇게 마음을 졸였는데 갑부라니 당치 않다.
갑부라면 절대 경제적인 문제로 마음을 졸이는 일이 없을 거다. 그렇다면 홍랑은 갑부가 아니다. 지난번 미얀마에 나갔을 적이었다. 홍랑의 휴대전화에 통장 입출금 내용이 메시지로 날아온다. 외국에 있어도 예외는 아니다. 통장 잔액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들 녀석이 요구했는지 아내가 아들 녀석에게 얼마를 송금시켜버렸다. 잔액이 딸랑딸랑하는 걸 모르고 카드로 보낸 게 분명했다. 메시지가 날아온 걸 뒤늦게 보니 그랬다. 그 날이 마침 할부금이 빠져나가는 날이었다. 할부금은 아내 모르게 저지른 것이다. 아내는 그런 게 빠져나가는 걸 모르고 있었다. 할부금이 연체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 아내에게 카톡을 해도 연락이 없었다. 다급해서 아들 녀석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하고 홍랑의 통장으로 되려 입금을 좀 시키라고 했더니, 왜 그렇게 돈이 씨가 말랐느냐고 도리어 화를 내며 끊어버렸다. 아들 녀석에게 네 엄마를 좀 바꾸어 달라고 했더니 제 엄마는 절에 갔단다. 아내에게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지를 않자, 절로 국제전화를 했다. 역시 받지 않는 것이었다. 기도 중인 모양이었다. 급해서 주지 스님 휴대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이거 한 달 할부금이 없어 이 지랄이야? 환장하겠네!”
중얼거리며 사무실 경리부장인 여동생에게 전화했다. 제주도에 시댁 식구들과 여행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동생에게 얼마를 통장으로 빨리 입금을 좀 시키라고 했다.
입금이 되는 걸 보고 메시지를 확인하니 금세, 띵똥! 할부금이 빠져나갔다. 돈 문제로 그렇게 다급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절도 모르고 시주를 해놓고 이게 무슨 꼴이야? 진땀이 다 나는군.”
지옥을 갔다가 온 기분이었고 자존심이 무지하게 상했던 홍랑은 자신을 원망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궁하고 아쉬울 때가 다 있군!
사실이지, 해외사업은 진즉에 그만하려고 했었다. 중고 중장비를 들여가 하던 몽골의 일을 접으면서 다시는 해외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일 년을 놀아보니 아픈 곳이 슬슬 생기는 것이었다. 아마도 마음의 병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바쁘게 설치다가 일이 없으니 생기는 병으로 자가진단을 내렸었다. 슬슬 아픈 곳이 생기자 몸이 간질거리고 홍랑의 역마살이 도지고 또 생각이 슬금슬금 바뀌는 것이었다.
예전과 달리 홍랑이 사무실에서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건설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굴착기 기사와 덤프트럭 기사가 열다섯 명이 넘게 있었는데 그때는 홍랑이 할 일이 있었다. 매일 장비가 투입된 현장을 둘러보는 게 일이었다. 그러나 건설 경기가 시들해지고 보유 장비를 반 토막으로 줄이자 홍랑이 할 일이 사라진 것이다. 사무실을 지키는 여동생이 혼자서, 배차하고 수금하고. 다 꾸려가는 것이다. 거들려고 나서면 잔소리라고 일축했다.
몽골에서 돌아와 일 년을 빈둥거렸다.
빈둥거리니 잡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거 나이도 자꾸 먹는데 해외사업을 한 번 만 더 해봐? 아니야. 어떤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이 나이에 잘못하면 꼽추가 되는데? 아니야. 사람이라면 일이 있어야지. 일은 엄중하고 신성한 거야. 늙을수록 일이 있어야 해!
심리적 갈등이었다. 자다가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심리적으로 갈등하면서도 인터넷으로 다른 나라의 경제 사정을 훑어보았다. 자석에 쇠붙이가 끌리듯이 무슨 마력 같은 것이었다. 자고 나면 인터넷으로 다른 나라의 동향을 훑어보는 게 일이었다.
처음에는 세 나라를 찍었다.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미얀마.
이렇게 세 나라를 살폈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알아보니 외환관리가 너무 심한 나라였다. 심지어 출국심사를 하며 여행자의 지갑까지 조사하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 들어가서 벌어도 가지고 나오는 게 문제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어떤 중소기업에서 공장을 지었는데 가동하다가 외환관리가 심해서 그만두고 공장을 팔아서 외화로는 가져 나오지 못하게 되자,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 심산으로 공장을 홧김에 산산이 부숴버리고 철수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외환관리가 그렇게 심하면 발전이 있나?
하여, 우즈베키스탄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베트남과 미얀마를 비교하며 살폈다.
베트남이 매력적이긴 한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후발주자다. 이미 많은 한국의 교포들이 안 하는 장사가 없는 나라다. 처음에는 몽골처럼 중장비를 가지고 들어가려고 마음을 먹고 살펴보니 이미 선점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거기에 끼어서 숟가락을 얹는다는 건, 후발주자로서 경쟁에 자신이 없었다. 또 인건비도 이미 많이 오른 나라였다. 베트남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포기하자니 아깝고 숟가락을 얹자니 먹을 게 없고, 일단 미얀마에 한 번 나가보고 나서 결정을 하자고 마음을 먹고 미얀마로 나갔다. 미얀마는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이라는 매혹적인 말이 들리기도 했었다.
처음 나가서 밤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가는데 공항을 벗어나 첫 삼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삼거리 정면에 커다란 금빛 간판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황금의 땅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Golden Land
황금빛으로 만든 그 간판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데 홍랑은 마치 자신을 위해 세운 간판으로 여겨졌다.
“황금의 땅? 그래! 바로 여기야!”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니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 다음날부터 슬슬 시내를 구경하며 시장조사를 했는데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였다. 이것도 하면 되겠고, 저것도 하면 대박이 날 것 같았다. 홍랑의 전문인 중장비를 살펴보았다. 아직 들여오지 않았다. 보편화 된 것이 아니고 특별한 공사에 투입되고 있었다. 중장비, 굴착기는 시기상조다. 아직은 아니다. 왜 그런가 파악을 하니 인건비가 너무 싸기 때문이었다. 부득이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공사에서만 장비가 투입되고 나머지는 인부들이 삽질로 공사를 하는 나라였다. 보름 정도를 예상하고 시장조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갔는데 열흘 남짓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이유는 돈을 가지러 온 것이다.
집값이 뛰는 걸 보니 하루가 급했다.
다 짓기도 전에 팔리고 집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파트의 월세도 엄청나게 비싸고 전세라는 개념이 없는 나라라 모두가 월세인데 집 장사는 주먹구구식으로 얼른 계산해도 엄청 남는 장사였다.
그래 여기서 집 장사를 하자.
땅값이 매일 오른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빴다. 홍랑이 건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굴착기를 사십 년이 되도록 하면서 노가다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해도 주택 정도는 가뿐하게 지을 수가 있는 문제다. 홍랑은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급한 성격의 소유자다. 좋게 말하면 진취적인 성향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손해를 본 것이 상당히 많다.
한국에서 당시의 외환은행에서 해외투자자로 신청을 하고 후딱 미얀마에 날아가 외국인 투자자로 등록을 했다.
그다음 날부터 집을 지을 땅을 알아보러 다녔다.
다녀보니 땅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애초에는 얼마라고 했는데 홍랑이 나타나자 외국인이라 더 비싸게 올려서 부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여 홍랑이 빠지고 현지직원의 이름으로 양곤 시내 여기저기 여러 군데를 샀다. 홍랑은 자금을 가지러 한국으로 들락거리며 그때그때 땅값을 지급했다. 땅을 사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었다. 한데, 도면을 그려서 건축허가를 넣었는데 허가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알아보니 양곤 시청의 부동산 종합개발 계획 때문에 허가가 다 묶여 있다는 말만 들었다.
양곤에서 사무실과 살림집을 구하고 현지직원들과 일 년을 빈둥거리니 허가가 한꺼번에 왕창 다 나왔다. 홍랑의 허가만 나온 것이 아니라 이 년간 밀려있던 현지인의 건축허가가 한꺼번에 다 나온 것이다. 그러니 갑자기 집이 포화상태를 넘어 공급과잉이 되어버린 것이다.
애초에는 허가가 나오는 것부터 한 채를 지어서 팔고 그 대금으로 다음 집을 지어서 팔고, 그렇게 자금 계획을 세웠는데 한꺼번에 허가가 다 나오니 한국에서 빚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일 년간 허가가 묶이는 바람에 새로 지은 집이 포화상태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홍랑은 상투를 잡은 격이라 하겠다. 부동산 매기가 뚝 떨어지고 그렇게 치솟던 월세의 가격이 한풀 꺾이면서 집값이 하락하는 기현상이 생기고 있다. 미얀마 시골 사람들은 꾸역꾸역 양곤으로 몰려드는데 어디에 다 사는지 모르겠다.
집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보러오는 사람은 많은데 그냥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비싸다, 싸다, 말도 하지 않고 다음에 연락하겠다면서 둘러보고 가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중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나?
중력이란 달리 말하면 땅이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인간들은 그 중력의 고마움을 모른다. 어느 날 자고 나니 중력이 사라졌다. 무게가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될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는데 중력도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홍랑에게 지구의 중력이 사라진 것이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니 어찌할 줄을 모르는 건 당연한 이치.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이치다. 중력이 사라지니 어느 게 무거운지 어느 게 가벼운지 알 수가 없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아! 잘나가던 놈이 망하는 건, 이런 경우구나!
그런 생각들이 불쑥불쑥 뇌리를 스칠 때가 있다. 그건 괴로운 느낌이고 불길한 상상이다. 홍랑은 후회했지만, 송아지 물 건너간 다음이다.
빨리 팔아서 이곳의 빚을 갚아야 하는데 현지직원들도 매니저도 바쁜 게 없다. 홍랑이 가격을 좀 낮추어서 빨리 팔자고 하니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 주택에 대한 상거래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홍랑이 지은 주택이 아니라 양곤의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치면 현지의 주택업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했다. 홍랑은 매달 한국의 푼돈을 긁어서 현지직원들 월급을 주러 나가는 꼴이 되었다.
그나마 지난달에는 월급조차도 못 주었다.
그러니 허구한 날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전화질이다.
언제 들어오느냐고 묻는 전화다. 홍랑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월급을 기다리는 거겠지.
지난달에 나가려고 했는데 도급 공사를 하나 낙찰받는 바람에 그 공사 마치고 나가려고 예약한 항공권을 두 번이나 연기시키고 매일 현장에 나가 공사감독을 하고 있다. 홍랑이 붙어있어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데 남에게 맡기고 가면 안 봐도 뻔하다.
날마다 새벽에 나가 오밤중에 돌아오지만, 워낙 낮은 단가에 낙찰이 되어 남는 건 별로 없을 것으로 예측이 된다. 공사란 원래 그렇다. 좀 남도록 넉넉하게 낙찰을 받으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데 경쟁자가 많아 낮은 단가에 낙찰을 받으면 예상치 못한 악재가 돌출한다. 그건 무슨 원칙이나 법칙이다. 이번에는 지하실을 파는 공사인데 조그마한 상가지하실이 아니라 대형 덤프트럭을 수십 대 붙여서 거의 한 달 가까이 파내야 하는 대형공사다. 예상치 못한 악재라면 지하실에 물이 많이 나고 토질이 좋지 않아 남는 흙을 버릴 곳이 멀어진다는 얘기다. 흙을 버릴 곳이 마땅치 않고 멀어지면 장비 투입비가 많이 든다. 받을 금액은 정해졌는데 장비 투입비를 무조건 줄여야 하는 게 도급을 받은 업자의 능력이다.
오늘도 아침을 먹으면 현장으로 달려나가 공사를 지켜보아야 한다. 오늘 흙이 들어가는 밭에는 하루만 더 들어가면 끝이다. 다른 공터를 찾아야 하는 일이다. 이 바쁜 와중에서도 어제는 도급현장에서 안전점검 때문에 하루 쉬는 날인데,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하고 굴착기를 직접 끌고 나가서 과수원에서 하루 을이 되어 무시만 당하고 개고생을 하다가 돌아온 것이다.
“그건 그렇고 경제가 어디까지 추락하려나? 한국 경제도 내 꼴이 나는 게 아닌가?”
홍랑은 담배 연기와 함께 중얼거림을 뱉어낸다.
사실이지.
한국의 경제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곧 망하지 싶다.
민생고가 파탄되기 직전인데 정부에서는 경제가 제대로 잘 돌아가고 있단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라 누구도 대꾸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메시지를 날렸는데 아무 녀석도 답이 없다.
“이거? 뭐 이래? 자식이란 자고로 궁핍 속에서 성장하고 결핍 속에서 철이 들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
홍랑은 책상머리에 던져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답이 온 곳은 없다. 메시지를 날린 시간을 확인하니 네 시 이십 분이었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 건가? 이 녀석들이! 아직 자는 모양이군. 외제 승용차 사진을 날릴 걸 그랬나?
오늘은 세 시쯤 잠에서 깨었다.
더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이 층 사무실로 내려온 것이다.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몸을 움직여 피곤해서 그런지 매일 저녁 일찍 잠이 들고, 새벽에 사무실에 내려와 이것저것 뒤적이며 계산을 한다. 도급 공사에 하루에 얼마가 적자가 가는지 계산을 해보고 또 흙을 어디에 버리면 투입비가 적게 들어가는지 궁리를 한다. 그래도 낙찰을 받기를 잘했다. 홍랑 자신 소유의 장비가 들어가 일을 하니 일당을 온전히 건지지는 못하더라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이 정부가 들어오고 건설은 후처가 데려온 자식이다. 후처는 이미 죽고 없다. 발길질한다고 눈을 흘길 작자가 없는 게 작금의 건설이라는 자식이다. 건설이라는 남의 자식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정부다.
돈을 쌓지 말고 덕을 쌓으라고 했다.
이 거꾸로 가는 정부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다.
돈도 덕도 쌓지 못하는 정부다.
욕을 더 하고 싶지만, 그 생각을 하면 또 해장부터 기분만 더러워질 것이다. 말을 말자.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단다. 허구한 날 자화자찬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와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민주를 일으켰고 무너진 나라를 바로 세웠단다.
참, 문장이 유려하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어디에 기준을 두고? 이게 입으로 하는 말이야, 입으로 뀌는 방귀야?
여태 평화가 없는 전쟁통에 살았고 무너진 나라에서 살았었나?
또 열이 오른다.
열 내지 말자. 혈압 조심해야지. 한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고찰考察하자. 관찰이나 성찰이 아니라 분명히 고찰이다.
홍랑은 스스로 재촉하며 달래지만 또 담배에 손이 간다.
나라는 곧 망하게 생겼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이지 남미의 어느 나라 꼴이 난다. 어디서 배웠는지 그 나라가 펼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창밖이 슬슬 밝아오고 있다.
“빨리 망해라! 이 나라야! 나라가 망하면 미얀마로 가지!”
미얀마에서 일 년에 한 채씩 팔아서 쓰면 부자같이 살지 않을까? 아니, 이 년에 한 채씩 팔아서 쓰자. 그래도 펑펑 쓰고 남을 것이다. 집이 열세 채인데 홍랑이 앞으로 이십육 년이 넘도록 살 수가 있을까? 미얀마에는 빚이라곤 한 푼도 없다.
한국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
그래? 이 자식들아. 그렇다면 나도 갑부다.
홍랑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치고는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물고 있던 담배가 의자 위에 뚝 떨어졌다. 홍랑은 담배를 주워들며 팔을 벌려 위로 쳐들고 목청껏 외쳤다.
“그래! 나도 갑부다.”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더니. 그 소리가 삼 층, 아내의 방까지 들렸는지, 아내가 일어나는 모양이다. 홍랑이 서 있는 사무실 천정에 층간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집안에 아침이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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