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영으로 달려온 교회(고린도전서 3:2~6)
2023년 11월 26일 주일연합(54주년 교회사랑헌신&창립감사)
설교 : 김성현 감독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린도후서 3:2~6)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실로 은혜로 베풀어주셨구나. 오늘날까지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심으시고 그도 포기하지 않으시는구나.’ 하는 놀라운 사실을 제 나름대로 발견했습니다. 54년의 결과가 무엇일까? 지웠다 다시 썼다, 지웠다 다시 썼다. 우리의 지난 50여 년 간을 좁아 터진 인간의 마음으로 정의하기에는 도저히 한 번에 써지지가 않습니다. 지웠다 썼다를 엄청 많이 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일까? 가만 보니, 우리 하나님,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약속을 이루셔서 그가 영원토록 맹세하신 그의 뜻을 이루시기를 소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자들입니다. 비록 인간의 이런 사회 환경 가운데, 이런 세상 문화 속에 존재해야 되는 어려움 속에서 우리 자신들을 가꾸어 가고, 발견해가고, 하나님께 맞추어 가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 세상 하나님께서 그래도 당신께서 그 은혜를 베푸셔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려고 애쓰셨습니다.
다만, 우리 교회 지난 54년간의 우리 모습들이 다 온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이 무엇일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이미 그것을 완성한 것 같습니다. 저만 완성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하나님이 베푸신 것이 무엇인지를 거의 다 짐작합니다. 자세한 내용, 성경 구절을 일일이 판단은 못할지라도 그들 마음이 이미 하나님을 받을 수 있는 선천적인 요만큼의 역량이 있거든요. 타락한 중에서도 망하지 않고 남아있는 그 조그마한 상자 같은 것이 마음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최후의 수단, 심겨져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어린 아이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지요. 먹다가 여기 저기 묻히고 놀다가도 누가 “예수님 믿어요?” “네! 예수님, 사랑해요.” 하고 말합니다. 그런 모습이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그 작은 영혼보다 더 나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다 이해는 못해도 하나님의 것은 많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참아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훌륭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영접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되게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데려가시려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을 어렵게 따질 것도 없는 것이 어떤 목사님의 자녀 분이 아이인데, ‘감독님의 사역의 성격은 이것이다.’ 라고 이야기한 것을 전해 들었는데, 너무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하나님의 취지, 죄인을 살려주신다는 것, 죄인을 어떻게 하든 구원해주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죄인을 의롭다고 해준다고요?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적인 법적 보호가 필요합니다. 또 하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부여해 주셔서 신변을 보호하시고 데려가시겠다 하십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악인에게는 벌로 의인에게는 상으로 딱 나누셔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정당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마을에 2~3만명 되는데, 여기 의인이 50명이 있으면 구원하시겠습니까?” “물론! 구원하지.” 그런데 아브라함의 생각에 의인이 암만 봐도 50명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40명이라도 되겠습니까?” “40명, 구원하지. 의인이 40명 있으면 여기 벌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면 30명이라면요?” “그래, 그럼 30명.” “혹시 20명은요?” “그래~그럼 20명이라도 구원할게.” “그럼 열 명은요?” “이야… 열명은 나오겠지. 그래~열명 나와도 구원한다.” 이렇게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같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뻔뻔스러운 자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한 일입니다. 저도 어릴 때에 이미 주님 앞에 순수한 우리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북돋아 준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 부모들이 있습니다만, 우리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은 계속 평생동안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내 아버지, 진짜 내 어머니.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영원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올라갈 수 없는 너무나 불행한 이곳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눈 떠서 보니 우리 자신이 이렇게 불행속에 있더라고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제 알게 된 바, 원수 마귀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망하게 했는데, 어떻게 망하게 했을까요? 성경이 그 시초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속였어요. 우리 인간이 거짓을 그 때부터는 굉장히 잘 하게 되었습니다. 거짓을 잘하던 우리 원래의 인간성이 우리 자신을 죽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영원히 사망 속에, 죄로 빠지게 하고 그리하여 사망이 오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포로로 잡힌, 누군가에게 농락을 당하는, 누군가에게 엄청 폭력을 당한 그런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한테 불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압니다. ‘거기에 아담이 없었다면, 내가 아담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끄러지기 쉽고 속이기 쉽고, 속기도 쉽고 또 가증스럽고 그렇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고가 있었습니다. 법정에서 ‘너는 죄인이다’ 하는 선고, 이미 죄인이라는 것이 선고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고 2천년 동안에 계속 ‘죄인이래, 우리 죄인이래.’ ‘정말? 정말이래? 아… 어떻게 하지? 잘해야겠다. 잘해야겠다.’ ‘잘해도 소용없대.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하신대.’ 구원하신다는 소식 듣고 잘해야겠다. 우리가 지난 54년 동안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벌이 확 날아올 때 그나마 이렇게 손으로라도 확 쳐내듯이, 벌레가 다가올 때 쳐내듯이 ‘잘 해야겠다’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잘하지 않았습니다. 잘해야 되는데.
하지만 나는 이런 사실을 아직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단 나의 이 한계, 나의 이 부족함, 나의 이 더러운 마음, 나의 게으르고 나의 가증스러운 내 속사람을 용서해주시면 좋겠다. 나의 어두운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 존재, 그 성질이 없다면 나도 거룩하니 뭐니를 조금 연구해볼 수 있겠는데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구나. 이미 믿기 전에 그리스도를 못 박았고, 죄의 성질도 있고, 죄를 범한 정황 자체가 법적으로 저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범죄를 한 사람이고 성질은 죄인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 우리는 열심으로 어떤 면에서 훌륭하게 빨리 뛰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엄청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는 많은 일에 대하여 준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돼요. 하나님께서 ‘STOP!’ 하실 때에 멈춰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항상 바랬던 것은, 우리 예배가 신이신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육신 덩어리인데 신께서 내 마음에 용기를 주시길, 받아 주시길. 그냥 기꺼이 ‘오냐.’ 하고 받아주시기를 바래 왔습니다. 포인트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때에 나의 진실로 영이신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이 육신은 지옥밖에는 성질이 맞는 데가 없는데,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승격되고 하늘에 가려면, 하늘에 계신 그는 우리를 끌어 올려주셔야 하고, 우리는 자기 것으로 하나님을 내 마음에서 속여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은 세상에서 거꾸러지고 실패하더라도 예배를 드릴 때에는 사람에게는 얘기 못하더라도 하나님께는 “나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받으소서…용서하시고 참으시고 받으소서!” 하며 우리 예배가 하나님께 받아져야 합니다.
여기 다 죄인투성이입니다. 모두가 ‘나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온 교회가 이렇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가운데 하나님의 의는 전혀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만 보이십니다. 죄인만 구원하기로 작정해서 자기 아들을 이미 십자가에 못을 박았기 때문에 자기 아들의 피값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십니다. ‘죄인 어디 있느냐! 죄인으로 자처하고 자신을 정직하게 나오는 자들 어디 있느냐?’ 예배 드릴 때에 ‘하나님, 나는 굉장히 거룩한데, 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웬만하면 커다란 복을 좀 주십시오.’ 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만날 수 없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많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 역사 동안에 희미하게나마, 많이 참으시는, 인내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더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이런 많은 사고로 인해서 많은 궁지에 처해 있고 어려움에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 살려주시리라 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주시리라 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첫 걸음을 내딛게 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잘해볼까?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절대 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든 절대 되지 않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 매번 자기를 회복시킬 수 없는 자라면 안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죄인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이 자기를 죄인이라고 해야죠. ‘죄인을 살려주옵소서. 죄인을 올려주옵소서.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주셨지요? 예수로 살고 싶습니다. 예수로 영원한 나라 가고 싶습니다. 데려가 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을까? 하늘에 갈 수 있을까?’ 세상의 이론으로는 요만큼의 가능성밖에 없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된다고 믿습니다. 된다고 믿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희망을 가지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하늘에 불려 올라갈 것이다. 너희들이 죽어도 시체를 끌어 모아서 다시 살릴 것이고, 요한계시록 보면 너희가 바다 어딘가에 던져져도 다 끄집어 내서, 조각조각을 다 찾아서 하나님 앞에 다시 끌어올 것이다. 너희들이 그날까지 살아 있다면 공중에 너희를 살려 불려 올릴 것이다. 너희 육체가 공중에 떠서 하나님이 일일이 불러 올리실 것이다. 천사가 너희 이름을 부르고 너희를 찾을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예배 드릴 때, 우리의 창립예배 드릴 때 건성으로 ‘우리가 뭐 큰 걸 했습니다. 우리 훌륭하죠?’ 이런 것이 아닌 것이죠.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에 대한 그 간절한, ‘구원하옵소서.’ 하는 구원의 소망이 가득한 것입니다. 미래의 소망이 가득한 것입니다. 54년 정말 하나님께서 이거 망할거라면 일찍 망하게 해주셨을 것인데, 하나님, 우리를 오히려 훈련하시고 우리를 잘 성장케 하시려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겉으로 ‘예배 드렸습니다. 우리가 헌금 했습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습니다.’ 아무 소용 없어요. 주님을 속이면 아무 소용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속이고 주님을 속이는 자는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첫째, 나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속이면 지옥 갑니다. 하나님의 구원이신 주님의 피도 효력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필요 없다!’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속이기를 굉장히 잘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짓인 줄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 속이지 말자. 나를 속이지 말자.’
하나님, 우리는 당신 앞에 그대로 옵니다. 찬송도, 하나님, 죄인오라 하실 때에, “여봐여봐여봐! 하나님께서 죄인 오라 하신대, 죄인 부르신대!” “에?... 죄인? 난데.” 하고 가야 합니다 우리 성락인이 평소에는 이렇게 거룩한 우리 교인으로 자처하지만, 기초가 다 돼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개인 하나하나 100%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은혜에 참으로 감사하고 변화되려는 모습으로, 죽음에서 법적으로 살려주셨는데 이제는 회복하려는 우리의 노력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날개 짓을 해야 됩니다. 교만하지 않고요.
54년, 나는 하나님의 달력을 모르고 있습니다만, 540년 동안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유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가는 동안에 인도하시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이셔야 합니다. 우리는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왜곡된 사실들도 많기 때문에 명확하게 얘기합니다. 내 마음에 가장 진실한, 하나님 앞에 완전히 벌거벗은 나의 모습을 본, 나의 가장 약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기가 내 영입니다. 내 정신 세계에서도 가장 깊은 곳, 내 존재의 바닥을 드러낸, 내 마음 구석, 심리에서도 가장 밑바닥이 내 마음, 깊은, deep in my heart, 여기가 내 영입니다. ‘여기다가 네 정신을 심으라.’ 했는데, ‘네 정신, ‘네 영혼’, ‘네 하나님’을 다 같은 단어로 씁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the Spirit’이라고 해서 ‘S’를 대문자로 쓰면 하나님이 되고, ‘the spirit’이라 해서 소문자 ‘s’를 쓰면 사람의 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으로 하나님께 판단 받고, 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으로 우리의 발전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영으로 우리를 구축하고, 우리는 주의 교회, 영으로 서있는 교회, 예배도 영으로 하나님 앞에 접근하는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오해가, 혼란한 것들이 많이 있어서, 왜곡되고 오해된 것들이 있어서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 주님의 교회의 피를 빨아먹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세, 54년에 파묻어서 밑에 넣읍시다. 침례 받을 때에 물에다가 놓고 왔어야 됐는데 다시 주워 왔나봐요. 다시 되돌아갑시다. 몇 년 전으로, 물속으로 들어가서 ‘너는 저기 있어.’ 하고서 물 속에 되 던지시고, 꿈이라도 꾸세요. 안 되면 꿈이라도 꾸셔서 침례시기로 되돌아가서 ‘이놈의… 너도 인간이냐! 거기다가 내버려라.’ 우리 각자 싸워줘야 돼요. 우리 성락인 각각이 전체를 대표해 줘야 됩니다. 각자 싸워 줘야 합니다. 최소한 일당일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많이 사랑받고, 그런 것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 속이지 않고, 당신이 하나님 앞에 당신을 의탁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이 되면 됩니다.
‘목사님 나는 이루어 놓은 것이 없어요.’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간절하면 됩니다! 최소한 자기가 죄인인 걸 알면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아닌 것처럼 행세했던 모든 과거를 회개하고 돌이킵시다. 우리는 십자가에 쓰러지신 주님을 생각합시다. 우리 과거에 쓰러졌던 모습을 생각합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잊지 않고 평생 마음에 두는 것은 우리가 타락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내가 쓰러졌을 때에 주님도 거기 쓰러지셨다. 거기 쓰러지신 것은 내 자신이었다.’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회복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자입니다. 우리의 헌신, 우리의 감사, 우리의 드리는 것에 대해 ‘아깝다. 나도 삶이 어려운데…’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이렇게 다 써버리면 나는 어떡하지?’ 이건 우리 믿음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헌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메시지를 받을 때 ‘하나님께 드린다.’ 하는 이 사람은 천국에 대한 진정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까운 줄 알지만 나는 헌금하겠다! 나는 헌신하겠다! 교회가 어려울 때 주님이 큰 목소리로, 보통때의 두배의 목소리로 나를 부르시는구나. 나는 헌금하겠다. 힘든데… 힘든데… 그래도 헌금하겠다!’ 이 사람은 천국에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네 영을 살리려 한다.’ 온통 자기의 삶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고, 자기 영이 진정 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시고 ‘저는 참 의인이다.’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주님같이 거룩한 의인이 될 수 있나요? 아니죠.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보기 어려울 만큼 그는 엄청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훌륭했나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못된 짓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상대적으로 의인이다. 보통 의인이 아니다. 이런 자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준을 정하자. 저는 자기가 욕심을 부릴 수 있는데 잠재적으로 자기를 구원하실 자에 대해서 신뢰하고 그를 속이지 않고 자기를 속이지도 않더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 너를 기준으로 해서 앞으로 미래에 너와 같은 자, 너의 신앙과 너의 자세를 따르는 자에게서 너를 기억할 것이고, 나는 너를 기준으로 내 축복을 주고 내 저주를 내릴 것이다. 너는 의로우니 나의 축복의 대상이 될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자는 나도 그를 사랑하겠다. 그러나 너를 미워하는 자는 나도 미워하겠다. 너는 앞으로 나타나실 그리스도의 그림자니라.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너의 구주를 생각나게 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훈련하고 따라야 될 모본입니다.
이제부터 영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사태도 빨리 벗어납시다. 사태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우리에게 굉장한 충격으로 계속 우리 자신을 상기시켜야 될 대단히 중요한 역사입니다. 우리 다시 옛날과 같은 우리의 모습이 아닌 정말 갈보리 십자가의 주님을 모시고 내려온 자들 같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젠 내가 성령으로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할 때에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예수를 다시 보지 못합니다. 예수 다시 보는 날까지 성령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사람, 마음과 마음이, 자기 깊은 마음과 마음이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중에 주님 뵐 때는 늦습니다. 주님을 보는 날은 내가 하늘에 불려 올려 가거나 심판 받는 날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우리 성락교회 온전히 54년을 기회로 하여서 완전히 변화되는 우리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구원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영원한 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 속에 하나님의 큰 영광과 축복과 미래가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영으로 하나님을 뵙기를 원합니다. 우리 영으로 하나님 모시길 원합니다. 내 생각 속에,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기를 바랍니다. 겉으로 있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속이지 않고 날 속이지 않고, 우리 성락교회 54년 동안 기다려 오신 우리 주님을 이제는 기쁘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고, 내 가정 받아주시고, 나의 모든 연약함도 이제부터는 열심히 하나님 인내해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녹취 :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31126 하나님의 영으로 달려온 교회(고린도전서 3:2~6) 54주년 교회사랑헌신&창립감사 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