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젠더폭력 피해자가 생존하게 하는 힘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 서평
보도날짜: 2022년 12월 18일
언론신문: 일다
보도기자: 이솜이 기자
기사원문: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라는 문장은 너무도 당연하고 완벽한 문장이다. 하지만 문장을 곱씹을수록 떠오르는 편협한 굴레가 짐짓 떠오르기에 이윽고 서너 번은 좌절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허벅지 위에 놓인 책을 보며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라고 나지막이 읊조려보니 이상하게도 내 안의 마음가짐이 점점 달라졌다. 그러니까 주체를 알 수 없는 패배감, 뭉뚱그려진 시간 속 간극 안에서 언어화되지 못한 우울함 따위가 점점 언어화를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잘 살아야 한다고, 나 역시 그래야겠노라고.
당연한 마음을 목소리로 발화하자, 피해 생존자이자 작가로 살기로 한 이들이 솎아낸 시간이 드러난다. 알리고자 하는 의지는 과거를 넘어 미래로 바꿔낸다. ‘악몽’을 꾸는 날들이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5년 후, 10년 후의 삶이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나는 살아남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들은 작가로 묶이지만, 생존자로 흩어진다. 서로가 다른 층위의 피해, 서로 다른 층위의 폭력,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계급,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공간 그러니까 서로 다른 상처를 그저 ‘상처’라는 커다란 범위로 퉁 쳐버리지 않고 섬세한 감정과 서사를 당사자의 세밀한 문체로 적어낸다. 뚜렷한 해결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어떻게든 말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힘. 서로의 언어로, 각자의 이름을 달고 합쳐지는 순간 생존자의 층위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두터워진다.
푸른나비, 최은, 아린, 이레, 예나, 임작가, 박정순, 하나, 연아, 보라
생존자 열 명은 그렇게 작가가 되기로 한다.
# 울면서 싸우는 존엄한 생존자 ‘푸른 나비’
운다고 달라질 일은 없지만 울어서 강해진 푸른 나비는 괴로운 꿈을 자주 꾼다. 하지만 그 꿈 사이를 유영하며 피해 생존자인 상처를 마주하며, 광화문 광장 사거리로 나간다. 푸른 나비는 자신의 용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내 몸 세포와 세포 사이를 갈라 꺼내어 말할 수 있는 용기’. 이는 자신을 분열하고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내며 푸른 나비만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마지막 구절에는 꿈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 ‘나는 자주 꿈을 꾼다. (중략) 바람처럼 호흡하는 푸른 하늘이 나인지, 푸른 나비가 하늘인지 모르도록 그렇게 기다리며 나는 또 나와 닮은 이들을 만나길 꿈꾼다.’ 작가는 계속해서 자신의 굴레를 능동적으로 만들고, 수동적인 꿈에서 벗어나기를 반복하며, 치유로 나아간다.
# 생존자이자 창작자인 ‘최은’
첫 문장부터 작가는 자신의 위치를 정체화하며 글을 시작한다. ‘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다. 그리고 생존자다.’ 이는 작가가 지닌 정체성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능동적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내가 어디에 가늠하는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생존자 가이드처럼 느껴지는 작가의 언어에는 정부, 기관, 사람들 모두를 차라리 고맙다고 말하는 넓은 아량마저 품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사람을 만나는 능동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
‘5년 후, 10년 후의 삶이 있으리라’고 말하며 무언가 계속 창작하는 작가는 생존자가 생존자들에게 그럼에도 버텨보자고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만 같다.
# ‘만들어진 나’가 아닌 ‘진짜 나’로 살아내려는 아린
자기 자신을 괴롭히던 지독한 죄책감으로부터 작가는 상담을 통해 분노하기 시작한다. 작가의 분노는 감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가정폭력 사회 속에서 필요한 제도를 말하며, 자신 언어를 넓혀나간다. ‘주민등록 열람 금지 제도와 비밀 전학 제도가 있었다면’. 이는 개인으로 시각을 돌리지 않고 사회가 우리에게 해줘야만 하는 것을 명확하게 명시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피해 속 관찰자로서, 생존자로서, 운동가로서, 작가로서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글 속에서 확장해 나간다. 이 과정은 이미 ‘진짜 나’로 살아가는 과정이다.
# 과거의 나를 마주할 용기를 낸 이레
작가는 처음부터 15년 전으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지금, 1인 가구로 사는 작가는 계속해서 ‘나’와 부딪힌다. 과정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 앞에 놓인 삶과 고군분투하며 마침내 작가는 ‘자기 돌봄’이라는 일상을 만들어낸다. 내 앞에 놓인 하루를 잘 살아내는 막중한 자기 돌봄 과정을 지내는 것뿐 아니라 2차 가해와 맞서 싸운다.
성폭력으로 점철된 삶의 대서사를 꺼내어 쓰기로 한 작가의 선택, 계속해서 삶을 나열하는 과정들은 작가가 쓴 문장과도 닮아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내기 위해 애쓴 나 자신이 대견하고 멋지다.’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을 기꺼이 내어주는 작가의 태도는 냉철하다. 그렇기에 독자 또한 온전히 과정에 집중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 끝까지 살아남기로 한 예나
한국 사회 안에서 어른의 폭력은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작가는 가정폭력 피해당사자로서 폭력을 복기하며, 방관자와 가해자 모두 가족이기에 겪는 순간들을 꾸밈없이 나열한다. 살아야 하기에 필요한 자본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생존자의 독립에서 개인의 결단뿐만 아니라 제도적 조건이 얼마나 필요한지 되짚어준다.
가정폭력 생존자는 피해 앞에서 탈가정을 쉬이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작가는 말미에 이런 문장을 적어놓았다. ‘서로의 힘이 되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멋지게 독립하기 위해 우리는 연대해야 하는 마음. 그 마음이 되기까지 작가는 살아남기로 한다.
# ‘연경하며’ 살기로 한 임작가
작가는 글이 시작하기 전, 자신이 새해 할 일을 적어놓았다. 목표를 설정하는 담대함과 경쾌함 그렇기에 문장은 활기차다. ‘또 뭘 써야 할까?’ 작가는 쓰고 있지만 또 쓰기 위해 고민한다.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임작가는 이 책의 터닝 포인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존은 당연하기에, 목표를 적고 다음을 더 멋지게 살아내겠다는 당찬 의지를 보여준다.
힘든 산을 하나 넘고 남은 산을 잘 넘기 위해 잠시 고민하는 작가. 그런 작가에게 주머니엔 500원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매달 보낼 양육비 80만 원 무리 없이 해결하기’로 목표를 써낸 작가. 말미에는 자신의 닉네임이 아닌 본명을 말하기로 한다. 즉 ‘연경하며’ 살기로 한다.
# 치유는 긴 여정이라고 말하는 박정순
‘그러나 살아남아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면 치유하기 위해 치열하게 지내 온 작가의 삶이 묻어난다. ‘오래된 고통’ 속 ‘어디에나 있는 성폭력’을 직면하며 살아내는 것. ‘미래에 대한 꿈을 꿔보지 않았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모르겠지만,’에서 느낄 수 있듯이 먼 미래는 작가에게 너무 멀고 버거운 현재를 대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장 뒤엔 이렇게 쓰여있다. ‘온기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중략) 좋은 이웃들이 살아서 서로를 지켜주는, 그런 공간에서 살고 싶다.’ 미래가 없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어떤 미래를 꿈꾸며, 꿈을 갖게 된 작가는 언젠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통증 속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문장은 힘이 넘친다.
# 조용한 일반인으로 살길 원하는 하나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가해, 디지털 성범죄는 지독한 가해와 피해의 굴레를 만들어낸다. 무력감 속에서도 작가는 자기 자신이 피해의 굴레를 끊고 세상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벗어난 가해의 굴레에서 세상은 작가에게 남겨진 피해의 흔적조차 지우라고 강요당한다. 새벽에 울면서 사진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피해생존자로서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외로움과 무력감을 숙명처럼 느끼게 된다.
‘하루하루, 자살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 버티듯 발버둥 쳤다.’ 이 문장 속 용기는 이제 살기위한 용기로 변해간다. 곧이어 작가는 평범함을 꿈꾸며 더 나은 일상을 부르짖는다.
#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기로 한 연아
소중한 연인으로부터 피해를 만나게 된 작가는 데이트 폭력이 지니고 있는 폭력과 가스라이팅을 경험한다. 하물며 ‘나’로 인해 이런 일이 생겨났다는 죄책감으로 벗어나기까지 작가는 자신을 계속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자책의 고리를 끊어내며 나아간다.
‘가끔 내 20대 좋은 시절이 그 때문에 날아갔고, 그 후유증까지 합치면 대체 몇 년을 고생시키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가 뭐라고 내 인생을 휘두르게 놔둔단 말인가.’ 이 말처럼 작가는 자신이 겪은 피해에 대해 물러나지 않고 공부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한다. 온전히 나 자신을 바라보고 다시 올라오는 일.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세계는 넓고 깊다.
# 단 한 명의 힘으로는 부족하기에 ‘연대하는 자’가 되기로 한 보라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당한 성폭력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는 작가는 도리어 왕따가 되어 고립된다. 피해를 해결하는 동안 쉬지 않고 일한다. 더 열심히 일하기로 마음먹은 작가는 해고통지서를 받는다. 해고를 당해야 하는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기에 고소를 진행하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는다.
받지 말아야 할 해고통지서를 다시 돌려주기 위한 지난한 과정은 작가가 ‘공적인 일’임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나의 삶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나의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도 이를 명확히 아는 것처럼 이제는 연대하는 활동가로서 사회를 바꾸고 있다.
책은 열 명의 작가를 모았다. 그 열 개의 챕터 속엔 개인, 계급, 인권 그렇게 이루어진 커다란 사회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당사자로서 온전히 살아내려고 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는 계속해서 말한다. 여기에 내 삶이 있다고, 그러니까 내 삶을 읽어보라고. 과정을 이해해야 비로소 해결이 보인다. 정답과 정책이 아닌 과정과 치유 그리고 생존을 중요시하는 것. 이 책은 그래야 하는 삶에 영원한 힘을 실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증거가 되어 말하는 순간, 생존자는 계속해서 생존할 것이다.
작가 열 명은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연대의 힘을 보여줄 것이니, 이제는 우리 차례이다.
[필자 소개] 이솜이. 증거가 없는 기억, 그 자체에 관심이 많다. 2015년 성폭력 기억에 관한 다큐멘터리 〈관찰과 기억〉을 만들었으며, 만들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의 힘은 공유할수록 커진다는 것을 깨달은 뒤 영화제에 출품했으며, 2018년도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였다.
원문링크: 젠더폭력 피해자가 생존하게 하는 힘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