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秋(춘추)-191 春秋(춘추) 昭公 一篇(소공 일편)18
十有八年春王三月(시유팔년춘왕삼월) 曹伯須卒(조백수졸)
18년 봄 왕의 3월, 조백(曹伯) 수(須)가 졸(卒)했다.
夏五月壬午(하오월임오) 宋衛陳鄭災(송위진정재)
여름 5월 임오(壬午), 송(宋)·위(衛)·진(陳)·정(鄭)나라에 화재가 있었다.
六月(유월) 邾人入鄅(주인입우)
6월, 주(邾)나라 사람이 우(鄅)에 들어 갔다.
秋(추) 葬曹平公(장조평공)
가을, 조(曹) 평공(平公)을 장사 지냈다.
冬(동) 許遷於白羽(허천어백우)
겨울, 허(許)가 백우(白羽)로 옮겼다.
해설; 여름 5월에 화성(火星)이 처음으로 저녁 때 나타 났다. 그리고 병자(丙子)에는 바람이 불었다. 재신(梓愼)이 말하기를, "이를 융풍(戎風: 東北風)이라고 한다. 화재의 전조(前兆)이다. 앞으로 7일 후이면 큰 불이 날 것이다"고 했다. 무인(戊寅)에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임오(壬午 )에는 더욱 심했다. 송(宋)·위(衛)·진(陳)·정(鄭)나라에 모두 불이 났다.
6월에 우(鄅)나라 임금이 적전(藉田)에 벼를 심었다. 주(邾)나라 사람이 우(鄅)를 습격하였다. 우(鄅)나라 사람이 성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주(邾)나라 사람 양라(羊羅)가 그 머리를 베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공격해 들어가서 우(鄅)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가지고 돌아 갔다. 우자(鄅子)는 말하기를,"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하고 처자를 따라서 주(邾)나라로 갔다. 주(邾)의 장공(莊公)은 우자(鄅子)의 부인을 돌려 보내고 그 딸은 머물러 있게 하였다.
가을 7월 자산(子山)이 화재를 입은 일 때문에, 사(社)에서 대제(大祭)를 올리고 사방(四方)의 신(神)에게 화재가 일어나지않게 해주기를 빌었으니, 이는 예(禮)에 맞는 것이다. 그리고서 군사를 조사 하고 크게 열병식을 하였다. 열병을 위해 장소를 마련 하려고 하자, 자대숙(子大叔: 遊吉)의 집 사당이 군대의 통로 남쪽이 되고, 집의 길이 북쪽이 되었다. 뜰이 좁으므로 사당이나 집을 허물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미 기한이 사흘이나 지나고서야[대숙은 차마 사당을 허물기가 어려워 기한이 3일씩이나 지나서야 명령을 따랐던 것이다], 인부들을 길의 남쪽, 즉 사당의 북쪽에 모으고, "자산(子山)이 여기와서 빨리 치우라고 하면, 너희들이 향하고 있는쪽으로 허물어 가라"
고 했다. 자산이 조정에 들어가다가 아직 일이끝나지 않았음을 성냈다. 인부들은 남쪽을 향해 허물어 갔다. 자산(子山)은 네거리까지 갔다가 종자(從者)를 보내어 일을중지시키고 말하기를, "북쪽을 허물어라[북쪽은 수(水)에 속하므로 화재를 막을 수 있는 셈이다]"고 했다. 앞서 불이 났을 때, 자산은 진(晉)나라와의 국경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무기를주고 성(城)에 오르게 하였다. 자대숙이 말하기를, "진(晉)나라는 가만히 있을까?"하니, 자산이 말하기를, "나는 듣건대 작은 나라가 지키는 것을 잊는다면 위태롭다고 했다. 하물며 불이 나지 않았는가. 나라가 작더라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방비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고 했다.
초나라의 좌윤(左尹) 왕자(王子)승(勝)이 초자(楚子)에게 말하기를, "허(許)는 정(鄭)나라와 원수
사이입니다. 그리고 초나라 땅에 있으면서 정(鄭)나라를 섬기지 않고 있습니다. 진(晉)나라와 정(鄭)나라가 바야흐로 친선을 도모하고 있으니, 만일 정(鄭)나라가 허(許)를치고 진(晉)나라가 이를 돕는다면, 초(楚)나라는 영토를 잃게 될것입니다. 주군께서는 허(許)를 다른곳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허(許)는 우리 초나라에 대해서도 마음을 기울여 섬기지 않고 있으며, 정(鄭)나라는 이제 잘다스려지고 있습니다. 허(許)는 말하기를,‘정(鄭)은 원래 우리의 고장이다[정(鄭)은 원래 허(許)나라였는데, 뒤에 허(許)는 남쪽 섭(葉)으로 옮겨 가고, 정(鄭)나라가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하고, 정(鄭)나라는 말하기를, ‘허(許)는 포로의 땅[노나라은공11년 정나라가 허(許)를 멸했다가 다시 세운 기록이 있음]이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섭[葉: 노나라 소공(昭公) 13년조에 허(許)는 이(夷)에서 섭(葉)으로 들어 갔음]은, 초나라 방성(方城) 밖의 보장(保障)이니, 소홀히 할수 없는 땅입니다. 정나라를 얕볼수도 없고, 허(許)를 차지하게 해서도 안됩니다. 주군께서는 선처하시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초자(楚子)가 이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겨울에 왕자(王子) 승(勝)을 시켜 허(許)를 석(析)으로 옮기게 하였으니, 석(析)은 지금의 백우(白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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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춘추)-191 春秋(춘추) 昭公 一篇(소공 일편)18
해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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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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