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와 등산은 한참전에 내가 회장인 신장학회 등산모임을 구파발에서 모여
진관사로 해서 응봉능선을 타고 하산은 진관사 계곡으로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황순재와 박인철을 초청하여 같이 한 기억.
그 다음은 내가 회장이고 총무가 박인철일 때 청계산 등산모임을 메일로, 전화로, 팩스로, 홈 페이지에 올리는 등
갖은 노력을 하였으나 참석자는 나와 박인철 뿐이라서 오늘의 모임은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철이 들었는지 딸이 차를 태워주어 예정된 시간 9시에 맞추려 출발을 하였더니 신분당선 개통으로
늘 밀리던 양재에서 청계산 입구간에 차가 쉽게 빠지고 원지동 주차장에도 빈자리가 많았다.
10분 전 도착, 건너편에 한인교가 나와 있다.
이어 윤덕기가 부인과 아들과 함께와 인사를 한다.
오늘의 등산은 "윤덕기교수 퇴임 축하 등산"으로 정하였다.
최정학이 엉뚱한 곳에 내려서 우리를 찾아 오는 중이고
오늘의 총무가 9시에 신분당선을 탔다며 전화,
박모씨가 툴툴대며 "아니 총무가 그렇게 늦게?"
이 등산로를 잘아는 덕기 아들과 같이 먼저 출발하여
복원예정인 봉화대 부근에서 기다리는데 윤회장과 정총무가 도착한다.
이 봉화대는 여기에서 봉화를 올리면 바로 남산의 봉수대로 연결이 되는 전략의 요충지이다.
남쪽의 변란도 얼마걸리지 않아 한성으로 연락이되는 편리한 제도.
최정학이 강원도 봉화산을 말하는데 이도 봉화대가 있었던 산일것이다.
오르다보니 총무는 반팔 차림으로 바뀌고 쉬임없이 오른다.
그럴바에는 삼청교육대에 입소하여 봉체조나 할 것이지.
하기사 이 동네는 손바닥 안 같이 잘 아는 나이니까 어디로 해서 최종목적지인 회식장소는 어디로 만 정하면 문제 없다.
산을 오르며 어쩌다 예과 1학년 겨울에 설악산에서 조난사한 이필복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야말로 이 건은 너무나 잘안다.
왜냐하면 사고가 나기 2주전에 나랑 미국에 있는 이기진이라 셋이서 북한산능선 종주산행을 하였었다.
3대 독자인 이 친구는 누나 결혼식이 끝나고 2주후에 설악산 동계산행을 간다며 예행연습이었고.
나는 눈이 오질않아 스키는 산악부실에 맡겨 놓고 겨울 남쪽 바다 혼자 여행을 하던 중.
여수에서 봄비가 부슬부슬오는데 설악산 쪽은 폭설이 온다고 뉴스를 발표하였다.
산행중 폭설을 만나 봉정암으로 하산도중 기진한 친구를 두고
구조대를 만들어 왔더니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그해 여름 우리 산악반회원들이 십시 일반하여 조난당한 부근 바위에
"우리의 사랑하는 이필복군, 여기 백설위에 고이 잠들다" 란 동판을 부착 후
가을에 필복이네 집에서 산악부원들을 초대하여 저녁을 먹었는데.
그 어머니 말씀이 지금도 날이 궂어 대문이 바람에 흔들려 덜커덩대면
"어머니"하고 찾아 올것 같다면서 눈물지었다.
내가 28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더니 그대로 붙어있고 동판을 따라 흘린 녹물만 더 해져 있었다.
2010년 9월 2일 태풍 "곤파스"로 위 부분이 날라간 나무를 잘라 걸상처럼 해 놓았다.
부근에는 먹이를 찾는 박새가 사람들 눈치를 살피는데.
손바닥에 잣같은 먹이를 두면 날아와 집어간다.
늘 산에 올때는 새들의 모이를 가지고 오는데 오늘은 깜빡.
오늘은 그래도 자리가 비어 있고 덕기 아들이 사진을 찍어 주니 단체사진이 있다.
내가 덕기부부를 잘 아는데 아들은 부모를 닮지 않고 키가 훌쩍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이 자리에서 두팀으로 나눈다.
덕기부자와 총무는 국사봉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가져간 안주와 환자가 담아 온 더덕주를 정상주로.
금방 학창시절로 돌아가 제일 먼저 교수님들을 안주로 하고
이어서 여기에 안 온 우리 동기들도 질겅질겅 씹힌다.
예를 들면 성기준 선생님 조금 이상하잖아, 부터
이명복교수의 사상의학, 성낙응선생을 욕하다 그래도 박인철이 전 내무부부장관하던 이호씨와 관연이 있어
무의촌 봉사갔다 오며 들른 어디에서 동네깡패와 패싸움이 붙었는데 전화 한통화로 해결해 주셨다는 등.
기용숙선생님은 다른 곳에 특강을 가셨다가 기다려도 오지 않아 찾아 보았더니
수위가 웬 촌로를 잡고 있는데 기용숙교수.
우리 동기들은 지방이 세었고 같은 고등출신도 분파가 있었으며
재수생의 비율이 높지 않았나?
입학동기이었으나 졸업못한 노기석이 한용철선생님 앞에서 영어로 presentation한 일,
우리 위로 들어왔다 아래로 떨어진 황제호? 의 안부 등등.
동기들 중 욕먹었던 사람들 누구, 내가 거명은 하지 않지만.
시국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가니까
경기 출신 박인철이 경기 출신들이 나라를 말아 먹는다고 비난.
현재 손모씨, 박모씨 등등이고 모두들 탁월한 정치평론가의 말에 동감을 표한다.
최정학의 손주자랑을 참고 들어준다.
집가까이에 있는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에서 손주들에게 돋보기로 개미떼를 보여 주고 등등.
내려가서 우리 청국장이나 먹으러 갈까? 하였더니 인철이가 단연코 반대.
정학이가 홍영재는 암을 앓고 청국장으로 효험을 보았다며 자기 아파트 앞에 좀 비싸기는 하나
"산타 홍"이란 식당을 운영한다며 가자고.
그러나 이런 건 자기 취향에 따라 다르므로
"옛골 토성"으로 정하고.
학교다닐때 권모씨가 피카디리극장에서 하던 "발지 전투"가 정말 재미있다하여 갔더니 별로.
영화 등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크, 술맛좋다"
그건 술맛만 좋을 뿐 아니라 약효도 보통이 아닌데.
동기들이 나를 뒤따라오며 키가 줄었는가베, 바지가 끌리게.
이 친구들아! 허리가 줄어서 바지가 흘러내린 건데.
계곡으로 하산을 하는데 또 바쁜 사람들이 앞서 가는 통에 나는 최정학과 슬슬 내려가며
일반적인 코스와 다른 경로로 내려간다.
봄철이면 철쭉이 아름답게 피는 곳으로.
계곡의 어름은 아직 두터운데 얼음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벌써 봄을 알린다.
어딘가에 피어잇을 벌들강아지를 찾으니 보이질 않고 봄의 전령인 새소리가 가볍게 들린다.
누가 꽃피고 새우는 봄이 온다 하였을까?
새울고 꽃이 피는데.
이건 무슨 풀인데 벌써 파랗다.
시산제를 하고 있구나.
저 옆으로 제를 끝날때가면 떡과 막걸리를 얻어 먹을 수 있는데.
가는 길에 세워놓은 붉은 악마 차.
붉은 악마보다는 붉은 도깨비나 요정이 더 부드럽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옛골 토성"을 찾아 들어가니 아직 음식도 나오질 않았다.
윤회장이 쏜다고 하니 푸근하게 먹자.고 누가 충동질.
모듬구이세트는 오리, 돼지갈비와 돼지 삼겹살은 초벌 구이를 해와 그런대로 먹을 만하였고
따라오는 밑반찬은 좋았다.
이외에도 해물파전과 두부도 나왔고.
술은 막걸리와 맥주,
모두들 주량이 많이 줄었다.
이 자리에서는 박인철이 동기로 들어왔다 한해 미끄러진 조윤태이야기를 꺼내는데.
나도 얼마전에도 전화를 해서 안부를 확인하였었다.
나하고 하숙을 같이 한 사이이니까.
윤회장이 우리가 학교다닐때 너무 말하지도 않고 지낸것이 아닐까?
아마 1/4정도 만 알고 지낸 것같은데.
자기는 같이 비뇨기과 전공의를 마친 최냑규를 주근원선생한테 비뇨기과를 하겠다 하였더니
비군보 TO가 둘이니 한사람 더불러오라해서 도서관에서 비로소 낙규와 말을 통하였다고.
자기는 성애병원에서 근무를 계속한다하여 그 병원은 이사장부터 70년대에 이미 내가 잘 아는 병원이고
내가 존경하는 몇 되지 않은 원로라고 말하였다.
모두 들 이런 모임에 아들까지 대동해 나온 윤덕기를 부러워 하고 나 역시 마찬가지.
나중에 나온 식사는 선지 해장국은 먹을 만하였고, 순두부와 인철이가 시킨 열무국수는 No Good.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며 또 동기들의 말들이 이어진다.
임종윤의 개업 선물은 무엇이 좋을까?
경찰병원장 하였던 이모씨가 개업을 할 때 내가 회장으로 난을 보내었는데
송년모임에 나온다 해놓고는 나오질 않아 전화를 해 보았더니 피곤해서 못나갔다.
흉부외과의 채모씨 등등, 동기회 모임에 한번도 참여하지 않는 동기들도 욕얻어 먹고.
하여튼 즐거운 산행이었고 오늘의 경비를 부담하여 준 윤회장은 앞으로도 복 많이 받을 것이다.
첫댓글 사진과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인철도 건재 하군요.... 회장님 아들은 건장하고...
계원장 얘기도 나왔으나 내가 뺏지.
앞으로 행동 조심해야겠습니다. 안주감 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댓글 안 부치는 분들을 안주삼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