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 그대로
설 쇠고 봄방학 들던 날 옮겨가는 학교에서 전입교사 면담이 있었다. 교감이 이르길 교장은 정년퇴임하고 신학기 새로운 분이 올 예정이라 했다. 전입교사들은 교감에게 짧은 시간 상견례를 건네고 담임 업무 희망 서식의 칸을 채워 제출했다. 본인 원 대로 다 되질 않겠지만 신학기면 늘 의례적 절차였다. 그러고는 열흘 뒤 전 교직원들을 소집하여 신학년도 워크숍이 열린다고 했다.
나는 그사이 유유자적 들녘을 걷고 강둑을 걸으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오후 집에서부터 걸어 새로운 임지까지 가보았다. 거리의 가로수 밑을 걸어 20분, 소나무 숲길을 25분 더 걸으면 닿았다. 산자락 아래 울타리엔 쪽문이 있었는데 안으로부터 잠금장치를 해두어 학교 안으로 내려서질 못했다. 걸쇠만 그냥 걸어 놓았는지 무슨 열쇠를 채워두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드디어 신학년도가 설계되는 날이었다. 집에서부터 걸어 사전답사를 끝낸 그 산자락을 넘어갔다. 지난번 뒤뜰 쪽문이 잠겨 있어 극동방송국으로 내려서 학교 정문을 들어섰다. 집을 나서 1 시간이 지날 때였다. 정한 시각보다 일찍 도착해 학교 경내를 빙글 들러보고 교무실로 올라갔다. 얼굴이 익은 몇몇 동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생계형 평교사의 새로운 일터가 될 학교였다.
전 교사들은 운동장 동편 신관 3층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도서관 이름은 학사재(學思齋)였다. 논어의 한 구절 -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 (思而不學則殆) - 에서 따왔더랬다. 워크숍은 지나가는 학년도 교무부장의 사회로 진행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번 전입교사들을 맞았던 교감도 진주권 어느 고등학교로 전출을 갔다. 나는 바깥세상 물정에 무척 어둠을 실감했다.
마이크를 교감은 잡은 자신이 예상 밖으로 떠나게 된 소회를 짧게 밝히고 전입해 오는 교사들을 불러 세워 인사를 시켰다. 이후 새 학년도 업무 부장을 맡은 교사들은 앞으로 불러내어 소개했다. 이어 업무 배정을 발표했다. 나는 예상대로 교지와 홍보와 연수 업무에다 ‘별탑원’ 운영과 관리였다. 전임지에서 교지만 엮었는데 공문 기안도 서툰 나한테 이런저런 곁가지 일들이 더 붙었다.
신발장 번호가 3번이었다. 내가 교직 입문이 몇 해 늦어 나이로는 제일 많지 싶었다. 담임을 맡기지 않음은 다행이다. 교지정도야 상관없는데 나이스 업무포탈로 이루어지는 공문 기안과 발송을 제 때 해 낼지 걱정이다. 문제는 ‘별탑원’이었다. 가사 생활관을 학습실로 개조해 성적우수자들을 입소시켜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공간으로 학교 뒤뜰 산 밑에 있었다. 그 학습실 사감 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교감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있었다. 담임 배정 절대수가 부족하니 맡아주실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사정이 정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으나 담임을 맡지 않은 지가 5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럼 별탑원과 그 밖 몇 가지를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맡기면 맡겨지는 대로 임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초저녁 일찍 잠드는데 밤늦은 시각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을 일이 걱정이다.
교무부장의 사회로 신학년도 학사일정과 교육과정 설명이 있었다. 이어 각 교과별로 수업시수 배정에 들었다. 국어과는 모두 11명이었는데 남교사는 나 혼자였다. 시수 배분은 여교사들에게 맡기고 아까 둘러본 교정 별탑원 뒤뜰로 가보았다. 산으로 오르는 쪽문엔 열쇠가 채워져 있어 출퇴근 길 동선을 바꾸어야 될 형편이었다. 돌아와 보니 나는 3학년 화법과 독서 그리고 논술을 맡았다.
남은 일정은 저녁 회식이었다. 먼저 집으로 가려고 했더니 전 교직원이 참석 대상이라고 했다. 두대동 주택가 상가 횟집이었다. 전 학년도까지 교무부장을 맡아 수고 많았던 분이 떠나는 교감, 1월에 부임한 행정실장, 친목회장, 신학년도 교무부장 순으로 건배를 시켰다. 이어 전입교사를 대표해 나에게도 건배를 제의해 따듯하게 맞아주어 고맙다면서 ‘이 모습!’에 그대로!’로 화답해 왔다.1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