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밥 아저씨
어때요, 참 쉽죠?
That easy.
Happy accident(행복한 우연)
그의 본명은 로버트 노먼 로스이다. (Robert Norman Ross)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에서 태어났다. 순식간에 그린 그림으로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림에 대한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아주 유명하다. 첫째, 머리 곱슬로, 둘째, 빠른 손놀림으로 셋째,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로 그리고 독특한 말 "참 쉽죠?" That easy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 (The Joy of Painting, 국내명: 그림을 그립시다)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독특한 뽀글이 머리와 수염, 그리고 셔츠 앞주머니에 애완 청설모를 넣고 다녔다. 최고의 출연 게스트였다. 당시 내 소원이 다람쥐를 키우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밥아저씨가 가장 부러웠다. 신의 손을 가진 자였다. 그는 일생을 동물 애호가로 살았다.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받은 사람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 생머리인데 어쩌다 인기를 얻어서 본인의 맘에 들지 않음에도 시청자들을 위해 아프로 스타일을 유지했다. 푸른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는 남자! 생각만 해도 달달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의 삶은 고뇌의 연속이었다. 세상을 넉넉한 마음으로 보듬고 대지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켜 눈호강 하게 해 주셨다. 아저씨라 부르기엔 작금의 내가 나이가 더 많다.
삶에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가 시기적절하게 하는 말들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물론 그림은 따라 하다가 좌절했다. 오히려 밥아저씨 덕분에 진작에 미술을 그만두었으니 난 그의 추종자이자 피해자의 한 명이다.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이 좌절감이 되어버렸다. 그는 천재 화가였다. 그는 알래스카를 사랑해서 그림 대부분이 나무와 숲, 바위, 호수등의 풍경이 많이 나온다.
그의 온화한 말과 분위기에 압도되어 천재와 사기꾼을 넘나드는 기술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Hi, I'm Bob Ross, and for the next 13 weeks, I'll be your host, as we experience The Joy of Painting.
안녕하세요, 전 밥 로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13주간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동안 여러분의 진행자를 맡을 예정입니다.
어때요, 참 쉽죠? That easy 이 말은 지금까지도 모든 분야에 유행하고 있다.
어린 시절 목수인 아버지를 도와주다 검지손가락을 잃었다. 팔레트로 가리고 있어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실 군인이었다.
1961년, 18세의 나이로 밥 로스는 미합중국 공군에 입대하여, 알래스카 공군 기지에서 의무기록 부사관으로 20년 동안 근무했다. 따뜻한 플로리다 출신이던 그는 알래스카에서 눈과 산을 처음 보았다. 자연의 놀라운 경관이 그의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군복무를 하는 동안 앵커리지 미국위문협회(U.S.O. club)에서 처음으로 그림 수업을 배웠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 화가의 길을 택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온전하게 짧지만 강렬하게 살다 떠났다. 그의 그림 솜씨보다 진솔한 말들이 더 끌렸다.
사라진 이의 긴 그림자를 따라가는 일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태엽시계를 돌리는 것만큼 거룩하다. 그의 얼굴을 보면 용서의 시간이 쉬워지고 뉘우침이 지름길로 달려온다. 눈이 마른 가지를 덮어주고 호수의 푸른 물이 눈동자를 채운다. 까만 바위사이 흐르는 물은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처럼 사랑에 목마른 노래로 변신한다.
상냥한 목소리에 초긍정적 마인드는 단연최고이다. 문제는 나 같은 똥손은 손잡고 가르쳐도 딴 길로 새어나간다. 배우지 못해도 신비롭고 절묘하며 보는 내내 눈이 즐겁다는 것이다. 그가 그린 오두막에 난로하나 놓고 겨울 내내 그림만 그리고 싶다. 알래스카의 풍경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 안개처럼 떠있는 호수와 빅토리아 여왕의 초록 드레스보다 더 아름답게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들 하얀 거품의 물방울 시원한 푸르름의 잔치들, 마지막 멘트는 "God bless(신의 축복이 있기를)"였다.
그는 그림을 가르치면서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아름다운 한 사람이 세상에서 배운 재능을 다 베풀고 갔다. 수천 점의 작품과 인생에서 배운 기술을 나눠주고 간 이야기이다. 로스 특유의 유화 화법을 wet-on-wet 기법이라고 한다.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덧칠하기, 그러데이션을 많이 사용하기, 유분이 많은 물감을 바탕에 애벌 칠하기 등의 기법을 통해 단시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1995년 7월 4일, 향년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승꽃이 필 나이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외에는 악성 림프종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매니저였던 친구 코왈스키 부부가 의도적으로 그의 죽음을 은폐했다. 꼭꼭 밀봉한 기밀문서처럼 어딘가로 그의 삶이 숨바꼭질했다. 모든 저작권료와 판권, 그의 작품 수천 점을 가족이 아닌 그들이 보유하고 있다.
그의 장례식에는 30명 정도만이 참여했다. 밥이 사망하면 팬들이 많이 줄어들어 사업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 그의 지인은 그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 우리나라에서도 텔레비전에서 밥 로스를 섭외해 달라고 요청하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그의 죽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밥 로스의 아들에게 밥이 세상을 떴는지 모르고 팬레터를 보내거나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냐는 안부를 묻는 경우가 많다. 죽는 순간까지 밝고 멋지게 살다 갔다.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을 때, 그는 그림이 되어 남았다.
순식간에 호수와 나무와 하늘이 나타난다. 로스가 대중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형태와 디테일을 하나하나 정해가면서 그려나가는 것이라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깬 부분이다. 이미 그린 수풀이 붓으로 몇 번 칠하니 호수가 된다든지 하는 모습은,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그려 나간다는 일종의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신기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사실 희망고문이었다. 그럼에도 난 그의 신비로운 손길과 넉넉한 마음이 그립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자신의 그림을 돈을 받지 않고 무료 나눔을 많이 했다. 인간적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밥 로스는 플로리다 고타의 우드론 메모리얼 파크(Woodlawn Memorial Park)에 잠들어있다. 그의 무덤 위에는 "텔레비전 아티스트 밥 로스(Bob Ross, television artist.)"라는 글귀가 새겨진 기념 명판이 있다. 그림의 대중화를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오래전, 그의 그림 비슷한 것들이 집집마다 걸려있었다.
누군가의 머리와 마음에 이렇게 진하게 각인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갔다. 착한 아저씨, 아름다운 목소리로 용기와 격려와 위로를 주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실수를 하지 않아요. 그저 작은 사고가 있을 뿐이죠. 그의 말을 믿고 싶다. 내 삶이 실패나 실수가 아닌 제발 작은 사고이기를! 그의 온화한 음성과 현란한 붓질이 그립다. 오래전 잊고 있었던 산속 동굴, 어린 시절 몰래 묻어둔 유리구슬을 찾은 기분이다.
죽음은 참일까? 거짓일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양도하거나 받지 못한다. 무는 무이다. 원래 없었던 것이 없음으로 가는 것이다. 내 인생이 이야기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나는 사라지는 것이다. "누가 누가 잘하나 "TV프로그램처럼 "누가 누가 잘 죽나" 대회도 있었으면 좋겠다. 삶이 우려낸 죽음도 초 긍정의 접신술을 만나면 순한 바람처럼 변한다. 억센 겨울바람이 은행나무의 옷을 벗겨도 나무는 뼈만으로 견디어낸다. 증오를 걷어낸 내 인생의 이야기는 어떤 맛을 발할까? 오늘도 무너지고 흘러내린다. 내 병의 차도는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이다.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