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어 입히신 가죽옷
창세기 3 : 20 – 21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손수 지으시고 에덴동산에서 살며(2:8) 에덴동산을 경작하고(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2:15)
‘그 사람’(15)을 ‘인간’ ‘인류’라는 의미로 ‘아담’(19)이라고 하나님께서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주어(2:21-24) 독립한 최초의 한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에 각종 실과를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그들이 지켜야 할 규칙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규칙(법)도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상 법도 지키지 않으면 법을 범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자가 간교한 뱀(사탄)의 꾐에 빠져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그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김으로 그들은 죄를 범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실과를 먹고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의 벗을 줄을 알고 부끄러워하며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치마로 가렸습니다.(7)
‘선악을 알게 하는 눈이 밝아졌다’는 말은 영적 순결한 눈이 어두워지는 반면, 세상적인 죄의 눈이 밝아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만든 치마로 가리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8)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시며 찾으셨습니다.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근본 원인은 벗었기 때문이 아니라, 먹지 말라는 말씀을 불순종한 죄 때문에 숨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께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은 것은 말하지 않고 벗어서 숨었다는 어설픈 변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고 하시며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11)
그러나 이미 죄의 덫에 걸려버린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하여 말했습니다.(12)
아담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여자’라고 말하여 하나님까지 죄의 공범자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라고 묻자 아담은 ‘내가 먹었나이다’(12)라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아담은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뼈저리게 뉘우치는 회개의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먹긴 먹었으나 그것은 다 여자 때문이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태도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죄까지 범하고 있습니다. 죄는 죄를 낳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여지없이 파괴시켜 불신과 미움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듭니다. 우리도 잘못했을 때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구차하게 변명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와도 자신의 범죄를 뱀에게 돌려 말했습니다.(13) 이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죄를 범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형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형벌을 내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자에게는 임신하는 고통과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6)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아담은 평생을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 소산을 먹을 것을 명하셨습니다.(17,18) 그리고 죄의 결과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9)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보냈습니다.(22-24)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은 것이 아담이 범한 죄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죄같이 여겨지지 않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아도 죄는 죄입니다.
‘죄’를 정의하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싸워 이겼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삼상15:1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였습니다.(삼상15:8)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것을 점치는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삼상15:23) 그로 인하여 사울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점치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이 무서운 죄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를 하와라고 불렀던 때가 언제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담이 그의 아내를 하와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그 여자’, 또는 ‘그의 아내’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를 ‘하와’라고 불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너는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이며,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19)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다’(20)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20)는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범죄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구원의 믿음과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를 ‘하와’라고 부른 것은 ‘살다’, ‘생명’이란 뜻으로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를 ‘산 자의 어머니가 된다’는 의미로 ‘하와’라 부른 것은 아담의 믿음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죽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그의 아내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하와’라고 부른 것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한 형벌을 말씀하셨습니다.(16-19)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죄의 결과로 평생을 수고하고 살다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인생’이라고 합니다.
범죄한 인간의 삶의 여정은 죽음의 길을 가는 나그네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죽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탄은 여자를 통해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여자의 후손(예수)를 통해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멸망시키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앞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15)고 말씀하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를 ‘하와’,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부른 것은 뱀의 후손과는 구분되는 하나님의 택한 자녀를 의미합니다.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부른 것은 죄로 인한 뱀(사탄)의 후손과 구별되는 ‘택함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를 ‘죽은 자의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모든 산 자의 어머니’, ‘하와’라고 불렀습니다. ‘하와’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여자의 후손’(15)에 복음을 듣고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저주, 죽음, 추방. 가시덤불 등으로 비극적인 장면을 성경은 말씀합니다.(14-19)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무서운 결과가 생생히 드러난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까?
아담이 그의 아내를 ‘하와’라고 부른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아내를 ‘모든 산자의 어머니’란 뜻으로 ‘하와’라고 부른 아담의 신앙을 보시고 가죽옷을 지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21)
아담과 하와가 만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든 것은 그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만든 최초의 옷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만든 무화과나무잎은 곧 말라버리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 주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와 가죽옷은 다 같이 죄를 가려주는 옷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는 죄를 가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든 가죽옷으로 죄를 가려주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과 가죽옷은 종교적으로 구원을 상징하는 옷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만든 종교는 죄를 용서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기독교는 죄를 용서하시는 구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가죽옷은 짐승의 죽음을 의미하는 옷입니다. 피가 묻은 옷입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입니다. 가죽옷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상징하는 옷입니다.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자식에게 보따리를 챙겨주는 부모의 심정으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범죄 한 아담과 하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가죽옷을 입고 거친 세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죽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께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며 믿음과 구원의 소망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범죄한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대속해 주셨습니다. 가죽옷을 입은 아담과 하와의 믿음과 소망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주님 오시는 날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