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에톤(Phaethon)과 태양전차



'눈부신', '빛나는'이라는 뜻의 파에톤(Phaethon)은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와 바다의 님프 클리메네(Clymene)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헬리오스는 종종 아폴론(Apollon)과 혼동되는데, 이는 후대에 헬리오스의 신격이 아폴론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헬리오스는 티탄 신족의 후예이며 천체 가운데 태양을 의인화한 신으로 아폴론과는 구별되는 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은 미술 작품에도 반영되어 파에톤의 일화를 다룬 장면들에서 헬리오스와 아폴론은 동일한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
파에톤의 일화를 가장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문헌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ō)가 쓴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이다. 오비디우스 역시 파에톤을 아폴론의 아들이 아닌, '태양신의 아들', 또는 '포에부스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파에톤의 누이들을 '헬리아데스(Heliades)'라고 명시함으로써 여기서 태양신은 헬리오스를 가리키는 것임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이 그린 파에톤과 헬리오스 주위에 토성의 의인화인 사투르누스(Saturnus), 사계절의 의인상 등이 등장하는 것은 헬리오스의 신격과 관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파에톤의 가계적 혈통, 즉 그가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오비디우스가 전하는 파에톤의 일화에서 사건의 발단이자 전개의 중심을 이룬다. 어느 날 파에톤은 제우스(Zeus)와 이오(의 아들인 에파포스(Epaphos)가 족보 자랑을 하는 것을 듣고는 자신도 태양신의 아들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에파포스는 이를 믿지 않고 파에톤을 조롱했다.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하고 분개한 채 집으로 돌아온 파에톤은 어머니 클리메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정말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클리메네는 아들의 간청을 듣고는 그에게 아버지인 태양신을 찾아가서 직접 확인하라고 일렀다. 파에톤은 그 길로 아버지의 궁전으로 향했다. 마침내 눈부신 빛줄기를 뿜어내는 태양신 앞에서 그는 자신이 그의 아들임을 증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한눈에 아들을 알아본 태양의 신은 아들에게 이르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몰아보고 싶다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태양의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조르다
날개 달린 천마(天馬) 네 마리가 끄는 태양 마차는 오직 태양의 신만이 몰 수 있었다. 천공의 궤도를 따라 제대로 몰고 가려면 그 조차도 애를 먹을 만큼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태양신은 위험천만한 소원 대신 다른 소원을 말해보라 파에톤을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인 아들에겐 소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신은 아들의 얼굴에 뜨거운 불길을 견뎌낼 수 있는 연고를 발라주고 마차를 모는 방법도 알려주었지만, 고삐를 쥐여주는 그 순간까지도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프랑스의 화가 니콜라 베르탱(Nicolas Bertin)이 그린 [아폴론과 파에톤]은 태양신의 마지막 조언을 들은 파에톤이 마차에 올라 고삐를 건네받은 직후를 묘사한 것이다. 푸른색 망토를 두른 태양신이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마차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있는 파에톤의 들뜬 기분이 그의 제스처와 흩날리는 망토, 그리고 전체적인 밝은 색조를 통해 드러나는 듯하다.
그러나 파에톤의 행복한 순간은 여기까지였다. 네 마리의 천마는 신보다 훨씬 가벼운 신의 아들을 태우고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궤도를 이탈한 태양 마차는 하늘의 별자리들을 위협할 만큼 솟구치는가 하면 대지로 곤두박질치며 산과 들, 마을과 강물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샘이 마르고 사막이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이며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오비디우스는 기록하고 있다. 하물며 바다와 대지의 신들조차 뜨거운 열기로 인한 갈증과 고통을 제우스에게 호소할 정도였다.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추락하다
대지의 여신의 강력한 항의가 아니더라도 제우스는 서둘러 손을 써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의 열기로 타버린 천지만물이 태초의 카오스로 돌아가버릴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제우스는 천궁 꼭대기로 올라가 벼락을 하나 집어 든 다음 파에톤이 탄 태양 마차를 향해 집어던졌다. 정확히 마부석을 강타한 벼락으로 인해 마차는 산산조각이 나고 파에톤은 머리에 불이 붙은 채 거꾸로 떨어졌다.
불덩이가 되어 떨어진 파에톤의 그을린 시신은 에리다노스 강이 받아주었다. 이후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이 시신을 수습해 묻어주었으며 명문을 새긴 비석도 세워주었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이 때 태양의 신은 하루 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태양 마차가 지른 불이 그때까지 꺼지지 않고 타올라 태양신의 부재를 대신했다고 한다. 시인은 이에 대해 재앙이라고 해서 쓸모없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끝으로 프랑스의 화가 피에르 파텔 1세(Pierre Patel le Père)가 그린 [파에톤의 추락] 장면을 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낡고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 주변으로 싱그러운 나무와 하얀 물살을 일으키는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화면 왼쪽 하단에 조그맣게 그려진 파에톤의 시신이 보이는가? 그의 뒤쪽으로는 추락한 천마도 보인다. 저 멀리 들판을 헤매고 있는 이들은 아마도 파에톤의 무덤을 찾아온 어머니 클리메네와 누이들인 듯하다. 파에톤의 죽음을 슬퍼하며 나무가 되었다고 하는 그의 누이들, 그녀들의 눈물은 태양빛을 받아 영롱한 호박 구슬이 되었다고 한다.
글 이민수 / 미술칼럼니스트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는 데에서 미술사학의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보다 가까운 미술사, 소통하는 미술사에 대해 고민하며 집필 및 강의 활동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