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데살로니가 교회의 초기 상황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은 한계에 부딪힐 때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바른 복음의 씨만 뿌려지면 어떻게 해서든지 신앙은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 아주 강력한 복음의 씨앗을 데살로니가에 뿌리셨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한 가르침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탄의 공격에 먼저 대비했고 앞으로 일어날 고난에도 준비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바울이라고 하는 위대한 사도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구체적인 믿음의 모델을 새길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복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만 투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번 제대로 된 것을 보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각인이 돼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다른 곳을 다니면서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느 한곳에 정착해서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데살로니가를 떠났는데도 그들을 잊지 못하고 계속된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이렇게까지 마음에 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데살로니가에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복음이 말로만 그들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살전 1:5)는 바울의 증언이 뒷받침해 줍니다. 그랬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그의 가르침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 신비로운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하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편지를 쓰고 사람을 보내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성도 간에 유기적인 관심을 가지고 중보로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되면 주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토록 염려하며 기도했던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로부터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그 교회가 여전히 살아 있고 건강한 교회로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불을 붙여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사도와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 성령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언제 어디서나 성도 간에 기도로 중보하며 성령 안에서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