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19-21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보고 어디서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때가 되면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아버지께 직접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고 답을 해 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물을 자신에게 줘서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러 오지도 않게 해 달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남편을 데려오라며 이 여인의 과거 결혼 경력과 현재의 상태까지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것을 드러내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이 하나님의 능력에 놀라 예언자라며 진정한 예배를 드릴 장소가 어디인지 묻자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고 대답하시는 내용이다.
19절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말하길 “내가 보니 당신은 예언자이십니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놀라운 광경을 자세히 구경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모든 과거까지 다 아시는 놀라운 분을 만나 자세히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예언자라는 말에는 관사가 없기에 한 명의 예언자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주석가들은 여인이 모세와 같은 특별한 예언자로 보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까지 다 아시는 것을 보고 놀란 것으로 해석다.
그러나 원어의 구문론은 “그 예언자” 라고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하고 신명기 34:15절에서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킬 것이라고 한 것을 믿으며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여인이 말한 예언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일 것이다. 이어서 어디에서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를 물은 것으로 보아 이 여인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리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본 것일 가능성이 높다.
20절에서 이 여인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했고 당신들은 말하길 예배드려야만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 여인이 예언자라고 한 것이 신기한 능력을 가진 예언자 정도로 해석한 사람들은 20절에서 갑자기 주제가 바뀌는 것에 대해 개인적인 문제에 관하 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학적인 어려움이 있는 주제로 말을 돌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맥으로 볼 때 이 여인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못하도록 갑자기 말을 돌렸다고 보기 어렵다. 모세 이외의 예언자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부른 것은 단순히 점쟁이 수준으로 보았다고 볼 수 없다. 만약 단순한 유대인 점쟁이 수준으로 이해했다면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오랜 논쟁거리인 어디가 참된 예배장소냐는 것에 대해 질문할 수 없다. 이 여인은 분명히 예수께서 이 논쟁을 끝낼 수 있는 답을 줄 분이라고 믿은 것이다.
21절에서 예수께서는 이 여인에게 “내 말을 믿으라, 여자여” 라고 하셨다. 여기서 여자라는 말은 “madam” 이라는 호칭과도 같은 존칭이기에 “내 말을 믿으시오 부인” 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때가 온다는 것이다.
때라는 말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하나님 우편으로 올리워지시는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하나님 우편에 오르시는 그 때부터는 장소에 국한이 되지 않고 너희가 아버지께 직접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신 것이다.
오늘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하면서 그 믿음이 점점 구체화되어가는 장면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해 말을 돌리는 장면이 아닌 것이다. 이 여인은 예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디에서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분으로 믿고 질문한 것이다. 이처럼 믿음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갖게 되는 것이고 말씀을 깊이 알아갈수록 그 믿음도 이 여인처럼 점점 확고해져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