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 가로되,
팔종(八宗)·구종(九宗)·십종(十宗) 중(中)에
어느 것이
석가불(釋迦佛)이
세우신 종(宗)이뇨.
답(答)하여 가로되,
법화종(法華宗)은
석가(釋迦) 소립(所立)의 종(宗)이니라.
그 까닭은
이설(已說)·금설(今說)·당설(當說) 중(中)에는
법화경(法華經)이
제일(第一)이라고 설하셨으니
이는 석가불(釋迦佛)이 세우신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을
불립종(佛立宗)이라 하고
또는
법화종(法華宗)이라고 하며
또한
천태종(天台宗)이라고도 하느니라.
그러므로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석(釋)에 가로되,
천태(天台) 소석(所釋)의 법화(法華)의 종(宗)은
석가세존소립(釋迦世尊所立)의 종(宗)이라고 말했느니라.
법화(法華) 이외(以外)의 경(經)에는
전혀 이금당(已今當)의 문(文)은 없더라.
이설(已說)이란
법화(法華)보다
이전(已前)의 사십여년(四十餘年)의 제경(諸經)을 말하고
금설(今說)이란
무량의경(無量義經)을 말하며
당설(當說)이란
열반경(涅槃經)을 말함인데,
이 삼설외(三說外)에 법화경(法華經)만이
성불(成佛)하는 종(宗)이라고 부처가 정(定)하셨느니라.
여종(餘宗)은
부처가 열반(涅槃)하신 후(後)에
혹(或)은 보살(菩薩)
혹(或)은 인사(人師)들이 건립(建立)한 종(宗)이니라,
부처가
정(定)하신 것을 어기고
보살(菩薩)·인사(人師)가
세운 종(宗)을 써야 하겠느뇨.
보살인사(菩薩人師)의
말을 어기고
부처가
세우신 종(宗)을 써야 하겠느뇨.
또는
어느 것이나 생각하는 대로
자기의 마음대로 뜻에 맞는 경법(經法)을 수지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터에
부처가 이를 미리 아시고
말법탁악(末法濁惡)의 세상에
진실(眞實)한 도심(道心)이 있는 사람들이
수지해야 할 경(經)을 정(定)하셨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법(法)에 의(依)하되 인(人)에 의(依)하지 말라,
의(義)에 의(依)하되
어(語)에 의(依)하지 말라,
지(知)에 의(依)하되
식(識)에 의(依)하지 말라,
요의경(了義經)에 의(依)하되 불료의경(不了義經)에 의(依)하지 말라」문(文).
이 문(文)의 심(心)은
보살(菩薩)·인사(人師)의 말에는 의(依)하지 말 것이며,
부처가 정(定)하신 것을 쓸지어다.
화엄(華嚴)·아함(阿含)·방등(方等)·반야경(般若經) 등(等)의
진언(眞言)·선종(禪宗)·염불(念佛) 등(等)의
법(法)에는
의(依)하지 말 것이며,
요의경(了義經)을
수지(受持)할지어다.
요의경(了義經)이라 함은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라는 문(文)이니라.
물어 가로되,
지금
일본국(日本國)을 보건대
당시(當時) 오탁(五濁)의 장애(障礙)가 무겁고
투쟁견고(鬪諍堅固)하여 진에(瞋恚)의 마음이 사나우며
질투(嫉妬)의 생각이 심(甚)하니,
이러한 나라, 이러한 때에는 어느 경(經)을 넓혀야 하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넓혀야 할 나라이니라.
그 까닭은 법화경(法華經)에 가로되
「염부제(閻浮提) 안에 널리 유포(流布)시켜서
단절(斷絶)케 하지 않으리라」등(等)운운(云云).
유가론(瑜伽論)에는
축인(丑寅)의 쪽에
대승(大乘)·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가 유포(流布)될
소국(小國)이 있다고 쓰여 있느니라.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어서 544쪽
젊은날의 일기
1950년 11월 10일 (금) 흐림 –22세-
「법화경(法華經)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발심(發心)의 지팡이로다. 다만 니치렌(日蓮)을 지팡이와 기둥이라고 의지(依持)하시라. 험준(嶮峻)한 산(山)· 나쁜 길도 지팡이를 짚으면 넘어지지 않으며, 특히 손을 잡아끌면 넘어지는 일이 없지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출(死出)의 산(山)에서는 지팡이와 기둥으로 되시느니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 상행(上行) 등(等)의 사보살(四菩薩)은 손을 잡으시리라」(〈야겐타전답서〉어서 1227쪽)
7시 30분 기상, 11시 30분 귀가.
날씨가 추워졌는데 갈아입을 셔츠가 없어 조금 난처하다.
하루 종일 5곳, 10곳의 거래처를 선생님의 대리로서 부장과 함께 돌았다.
어떤 시대에도 또한 사회에도 신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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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10일 (화) 흐림 –25세-
초겨울.
목탄이 필요한 계절이 되었다.
스기나미 제5소학교로 K씨를 방문.
선생님의 일로.
― 이치가야까지 함께 돌아감. 총명한 선배다.
저녁 무렵, 쓰루미 시장(市長)에서 강의. 〈입정안국론〉 제4단 종료.
9시 30분부터 11시까지 질문회를 S씨 댁에서 속행했다.
더욱 분쿄의 간부처럼 되어 주었으면 한다.
《황녀(皇女) 가즈의 궁전》을 읽었다.
취침, 1시 조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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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1월 10일 (목) 흐린 뒤 맑음 –27세-
아침 근행은 가장 중요하다.
하루의 승패를 결정하고 그 하루에 대한 인생의 성쇠도 결정하기 때문에. 인과구시(因果俱時)라는 철리의 실천 위에서도.
날이 갈수록 추워진다.
2시부터 본부 면접. 누구에게나 순조로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사람에게 힘이 있다면 그 차이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지도력이 없다는 사실이 분하다.
선생님께서는 어제부터 아드님과 함께 등산. 오늘 저녁 귀가하실 예정.
나는 마지막 1급 강의. 방편품, 수량품, 관념문 등 3개월 동안의 강의 종료. 매자작시념(每自作是念: 나는 항상 이렇게 일을 염원한다).
귀가 길에 지부장 댁으로.
〈말법상응초〉에 대하여 지부 간부 그리고 여자부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늦은 시간, 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
여러 가지 엄한 지도가 있었다. 불꽃처럼 강하게 메아리치는 선생님의 지도.
한밤중, <인간혁명>이라는 시를 썼다.
“악업에 모두 어둡게 겹쳐,
나락(奈落), 수라, 또 귀축(鬼畜)을 헤매고 있다.
업 또 업을 거듭하여 그 결과 역시 엄하고 슬프다.
이 사회
이 인류
인생의 항로, 무시(無始)하고 우주의 원동, 또 영원 하늘에 욱일 떠오르고 생명의 새싹이 살아 움직이니 묘법의 힘, 동원(動源)의 힘.
바위마저도 부수고 악업까지도 무산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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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1월 10일 (일) 비 –29세-
기상 ― 6시 40분. 열이 많이 난다.
선생님과 리쿄보에서 대화. 선생님의 자애에 울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아 오장원, 가을밤 ―.
8시 30분 ― 어개비. 선생님 바로 뒤에서 근행. 니치준 예하가 간사이 방면으로 지도하러 가신 동안, 승려 호소이 닛다스가 대리, 앞으로의 불가사의한 모습을 격렬하게 느꼈다. 나는 광포의 대인재로 성장해야만 한다.
대강당 옥상에 올라갔다. 장관.
닛쇼 상인의 묘를 참배했다. 그립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 다시 리교보에서 1시간 동안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영원한 생명. 시방(十方: 전 우주) 국토에 주(住: 머물다)한다는 원리.
묘법의 힘으로 어느 곳에라도 태어날 수 있다는 법리.
돌아오는 중에 ··· 쓰루미 제35부대에 참석. 10시에 회합이 끝났다.
지쳐서 귀가. 공부다.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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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1월 10일 (월) 흐림 –30세-
은사의 자비가 생명에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느끼는 매일.
우수한 인재를 바란다는 것 ― 만감(萬感).
저녁에 묘코 사에서 열린 I군과 M양의 결혼식에 참석. 행복했으면 좋겠다.
허영심 많은 두 사람의 앞날, 정말 걱정이다. 신심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조금 일찍 귀가.
여유 있게 제목을 불렀다. 독서.
은사의 흉중을 헤아리며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도록 기념.
선생님 유족 분들이 다복(多福)하시기를 기념.
첫댓글 생명.정화의.부처님말씀
올려주셔서
매일매일 더욱더
감사드립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