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3. 큐티
창세기 24:1 ~ 9
아브라함의 마지막 믿음의 여정
관찰 :
1) 이삭의 아내를 자신의 고향에서 얻도록 하는 아브라함
- 1절.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아내 사라와 사별했고 이제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지역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였고, 주변 토호들이 그의 외아들 이삭과 혼인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부와 명성을 얻고자 했습니다.
- 2절.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의 모든 대소사를 섬기는 늙은 종을 오게 하고 맹세를 하게 했습니다. 이삭이 40세에 혼인을 했으니,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 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늙은 종”은 아브라함이 후사를 잇게 하고자 했던 “엘리에셀”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아들과 같이 여겨졌던 자였고, 아브라함이 늙어서까지 충성된 종으로 아브라함 집의 모든 대소사를 맡아서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결혼 문제를 이 늙은 종 엘르에셀에게 맡기는 것을 보면, 그가 엘르에셀을 일반 종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 늙은 종에게 “청하건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이삭의 혼사 문제를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허벅지 밑에”라고 표현 한 것은 남근을 가리키는 표현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자신의 사타구니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를 하도록 시킨 것입니다. 이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강력하고 엄숙한 맹세를 할 때 취하는 자세였습니다. 이 맹세 의식은 생식의 상징인 사타구니에 손을 넣음으로 대를 이어 충성한다는 의미와 불복종하면 후손이 없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맹세의식은 오늘날도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사이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의식입니다.
- 3절.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 아브라함이 이렇듯 강력하게 맹세를 하게 하는 이유는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족속에서 얻지 말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두 번이나 아내라고 속여야 했을 정도로 가나안의 문화가 성적으로 심각한 문화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곳의 여자를 이삭의 아내로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 4절.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아브라함은 자신의 친족들이 있는 곳에 가서 이삭을 위해서 아내를 택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나 온 곳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친족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곳은 하란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와 아브라함의 영향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었습니다.
2) 그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서 보내실 것이다
- 5절.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 엘리에섹로 추측되는 그 늙은 종은 혹시나 있을 염려되는 일에 대해서 주인인 아브라함과 상의를 하고자 합니다. 자신은 하란으로 가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곳에서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아브라함의 의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늙은 종이 얼마나 지혜롭고, 또 아브라함이 신뢰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종은 자신이 찾은 여인이 이삭이 있는 곳으로 오고자 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삭을 데리고 그 여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물론 본인도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을 결정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주인 아브라함의 의견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자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멋진 종을 수하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6절.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 아브라함은 결코 이삭을 그곳으로 데려가지 말라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본토 친척의 땅에서 떠나게 하셨는데, 다시 돌아가게 하실 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40여년의 세월, 그 중에 65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은 바가 하나님은 한 번 언약하시면 바꾸시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자신을 이끄신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으시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언약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7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 사자를 먼저 보내셔서 그 아내를 이삭에게로 이끄실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활의 믿음을 넘어서서 이제 아들의 혼사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손해와 문제를 극복하는 차원에서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8절.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 만약 그 여자가 이삭에게로 오고자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엘레에셀과 맺은 맹세가 상관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에셀로 하여금 부담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그 여자를 설득해서라도 꼭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하튼 이삭을 그곳으로 데려가지 말라고 명합니다. 정말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자리에 까지 아브라함은 도달했었던 것입니다.
- 9절. “그 종이 이에 그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 그 늙은 종, 아마도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사타구니 사이에 손을 넣고 맹세했습니다. 이제 엘리에셀은 이 맹세를 성취하기 까지 최선을 다해서 주인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이 역할을 수행하고자 할 것이었습니다. 이 맹세를 따라야 하는 책임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가르침 :
1) 아브라함은 이제 부활 신앙의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그와 사라는 믿음의 여정을 모두 완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가지 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혼사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생활을 하는 가나안의 족속들은 거의 모두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키고자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힘과 아브라함의 부가 합쳐진다면 가나안의 패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렸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혼담이 아브라함에게 쏟아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라가 죽고 자신의 죽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것은 큰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이삭을 가나안의 유력한 족속의 족장의 딸과 결혼을 시키게 되면 가나안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분명히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문화가 그들의 성윤리와 삶이 아브라함이 볼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러한 문화로 인해서 아내를 두 번이나 빼앗길 뻔 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치적 안정 혹은 전략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아들 이삭의 베필을 구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혹시 이 소식이 주변 가나안의 족속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신부를 구하러 가는 종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자신의 집을 다스려온 늙은 종을 부릅니다. 아마도 이 종은 아브라함이 후사로 삼고자 했던 다메섹의 엘리에셀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을 오랫동안 잘 다스려왔고, 자신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순종하는 종에게 아들 이삭의 혼사 문제를 맡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그를 인정하고 믿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 이삭의 혼처를 절대로 가나안에서 구하지 말 것을 맹세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족들이 살고 있는 하란에 가서 구해 올 것을 맹세하게 합니다.
3) 늙은 종은 아브라함의 요청에 응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에 혹시라도 있을 가능성을 물어봅니다. 이삭의 신부감을 구했는데, 가나안 땅으로 오고자 하지 않을 경우를 주인과 상의합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의 가능성은 절대로 고려하지 말 것을 요청합니다. 첫째는 가나안 땅에서 이삭의 신부를 구하지 말 것. 둘째는 이삭이 하란으로 가도록 하지 말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충족이 되려면, 하란에서 신부감을 구해서 이삭에게로 데려와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엘리에셀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에셀은 주인 아브라함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맹세를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했습니다. 이제 그는 주인을 대신해서 반드시 이삭의 신부감을 하란에서 찾아서 가나안으로 무사히 데려와야 했습니다.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늙은 주인 아브라함을 위해서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 했습니다.
적용 :
1)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위해서 다시금 믿음의 결단을 했습니다. 부활 신앙까지 도달했지만, 세상의 유익에 취해서 세상적인 잣대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세상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이삭이 주변의 족장들의 딸과 결혼했다면, 이삭이 유리 방황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향후 우물을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아비멜렉에게 빼앗기는 수치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외적인 요소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소유했다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이 땅의 유익을 믿음보다 우선으로 놓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늙은 종 엘리에셀과 맹세를 합니다. 단순한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엘리에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엘리에셀도 주인과 무서운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주인의 명령을 이행했을 것이지만, 무서운 맹세를 통해서 충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이런 종과 이런 주인의 만남은 참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미션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을 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믿음이 일상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제 그런 단계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한 믿음의 조상의 모범에 감사 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마치 폭풍의 눈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또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