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세는 동경 근교 농업 지대였으나, 근래 주택 단지‧공업단지가 진출하여 도시화 되었다. 미군의 아츠끼(厚木,あつぎ) 공군기지가 있다.
녹색 지요다선은 기타센주를 지나면 지상으로 나온다.
아라가와를 건너고 이윽고 아야세다.
벌써부터 나는 입맛을 다신다.
아야세 역 앞 이자까야(いざかや,居酒屋)의 흥청거림이 벌써부터 전해져 왔다.
하교 하면서 늘 들리던 곳, 本郷三丁目 학교 앞에서 이사 와서 첫 아이를 낳았던 곳이다. 아야세는.
미술 대학을 졸업한 여동생이 강릉에서 학원을 하다가 갑자기 일본에 와서 보석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해서, 할 수 없이 방 값이 싼 아야세로 이사해야 했다.
여동생은 유학에 실패(?)한 나와 다르게 한국으로 돌아와 프랑스 보석디자인 대회에 출전하여 한국인 최 초로 대상을 받아 잘나가는 한국인 여성에 선정되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나의 유학생활은 여동생으로 보상이 된 셈이다.
아야세 역(駅,えき) 앞의 이자까야(いざかや,居酒屋)는 하루 종일 공부하던 나의 머리를 씻어주었다.
나는 일본술 쥬하이를 좋아했다.
안주는 에다마메(えだまめ,枝豆). 돈이 있으면 바사시(ばさし,馬刺).
나는 술이 너무 세서 쥬하이(ジュハイ)를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았다.
앉자마자 서너 잔을 연달아 마시는 내가 신기했는지 주방장은 나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오마에 나니 시때루?”
(너 뭐하니?“)
”뱅꾜“
(공부)
”갓꼬와?“
(학교는)
”아까몽“
(동경대)
”에엥“
주방장이 반말이어서 나도 같이 반말로 대답을 했다.
주방장은 몹시 놀래면서 동경사람들 특유의 리스펙트 신음소리를 냈다.
동경대는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의 서울대 이상으로 대단한 학교였다.
나는 일부러 동경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유학 시험을 보고 우연히 얹어 걸린 것에 불과했다.
아까몽은 동경대의 정문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그런 대화가 있은 후부터 주방장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날, 쥬하이 무료 티켓을 수백장 건네는 거였다.
그 당시 쥬하이 한 잔에 200엔이었으니 돈으로 치면 거의 십만엥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안주 에다마메는 무한정 공급했다.
에다마메는 논뚝에 흔하게 자라는 파란 콩을 껍질채 살짝 찌면서 소금을 조금 뿌린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자까야에서 기본 안주로 나오는 것이다.
하루에 술값으로 천엥 이상 나오던 지출이 주방장의 도움으로 거의 꽁짜로 지출이 되었다.
어느 날, 꽁짜 에다마메가 지겨워서 주방장에게 바사시(말고기 회)를 주문했다.
놀라는 주방장. 그리고는 눈을 치껴뜨면서 비싼 것을 왜 먹느냐는 투였다.
”줘봐,임마“
나는 자랑스런 한반도의 유학생 답게 반말로 건방을 떨었다.
잠시 후.
바사시는 수북히 쌓여있는 에다마메 밑에 감추어져 있었다.
주방장은 자랑스런 한반도의 유학생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