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10 그 무렵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변화는 신에 대한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변모입니다. 예수님께서 변모하실 때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어떤 인물일까요? 모세는 진리와 엘리야는 은총과 관련이 깊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엘리야는 불이 세상에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은총과 진리는 마치 어머니의 젖과 가르침처럼 자녀를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은총과 진리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고 그 새로운 존재의 은총과 진리를 통해서만, 또 제자들도 새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기도는 진정 새로 태어남의 시간이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기적의 시간입니다. 사순절에 교회에서 권고하는 세 가지 재계, 곧 기도-자선-단식에서 오늘은 기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기도하건 하지 않건 사람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더 높은 본성으로 변하든지 더 악해지든지 할 뿐입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어떤 것 때문입니다. 안 좋은 것을 받아들일 때는 안 좋게 되고 좋은 것을 받아들일 때는 좋게 변화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악마와 같이 변화되었다면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SNS에 N번방을 만들어 수십 명의 여성을 노예처럼 착취하며 돈을 번 일당이 잡혔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미성년자였습니다. 천재적인 수법으로 사람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으며 그것을 돈벌이로 이용한 젊은 청년 중 주도자 두 명이 자신들의 아이디를 ‘갓갓’(GodGod) ‘붓다’라고 한 것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신으로 불러줬기 때문입니다. 신이 되는 방법은 돈을 소유함으로, 쾌락을 추구함으로, 힘을 과시함으로써입니다. 곧 스스로 주님, 창조자, 심판자가 되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신이 되려 했는데 알고 보니 악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경찰에 잡혀 자신들의 악마와 같은 삶을 끝내줘서 감사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들은 왜 스스로 신이 되려 했을까요? 세상에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무언가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 아기가 짐승에게 사랑받고 길러지면 짐승이 되고 사람에게 길러지면 사람이 되며 하느님께 길러지면 하느님이 됩니다.
그들은 사랑받지 못했기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이때 스스로 높아지는 방법은 돈과 여자, 힘이었던 것이고 그것이 사람을 악마로 만듭니다.
영화 ‘한공주’(2014)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아이가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 했지만,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고 학교, 그리고 친구에게마저 외면당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옵니다. 목숨을 끊는다는 말도 내가 신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자기 힘으로는 절대 높은 수준의 본성으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사람을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본성으로 상승시킵니다. 주윤발 배우와 같은 이들은 세상에 가진 전 재산을 아낌없이 주고 가겠다고 말하며 자신들은 매우 검소하게 삽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은 세상이 자기들을 그만큼 사랑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만큼 본성이 상승하여 다른 이들도 들어 높일 줄 압니다.
그의 오랜 친구 오맹달이 술과 쾌락에 빠져 그에게 돈을 빌리려고 왔을 때 주윤발은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가 분노로 재기할 수 있도록 감독들에게 전화해서 그를 써 달라고 청합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안 오맹달은 그때 자신에게 주윤발이 돈을 빌려주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다고 단언합니다. 주윤발이 준 교훈은 진리이고 그가 오맹달이 재기할 수 있도록 감독에게 한 전화는 은총입니다.
기도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아 본성이 새롭게 변모하는 시간입니다. 베드로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모하여갑니다. 그가 타볼산에서 본 변모는 은총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함은 진리를 받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십자가에 거꾸로 순교하면서 또 누군가에게 은총과 진리를 베푸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갓갓이나 붓다는 가지는 것과 즐기는 것, 강해지는 것으로 무언가 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대로 부모로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기도라는 시간이 있고 기도하면 은총과 진리로 누구나 작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