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회계 공개 의무화 추진… 尹 “공시 시스템 구축” 지시
“노란봉투법 처리” 민주당사 점거한 민노총 2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관계자가 창문 밖으로 손짓을 하고 있다. 민노총은 이날 노조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입법)을 요구하며 민주당 중앙당사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였다. 장승윤 기자
정부가 ‘깜깜이 회계’ 비판을 받아 온 국내 노동조합의 재정 현황을 외부에 공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형 노조에 대해 사상 첫 자율점검도 실시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DART)처럼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관련법을 개정해 현재 공표 의무가 없는 노조 회계감사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노조 재정 운용 방식을 개선할 정부 차원의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연합단체와 조합원 1000명 이상 개별 사업장 노조 등 253곳을 대상으로 자율점검을 하도록 했다. 이들 노조는 내년 1월까지 노조 회의록과 회계장부 등 운영 자료를 조합원들이 볼 수 있도록 사무실에 공개 비치하고, 이행 여부를 고용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500만 원이 부과된다. 정부는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선출 방법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로 했다.
대형 노조 회계장부 공개… 탈퇴 방해-재정비리 신고센터 운영
노조 투명성 강화 방안
노조 몸집 커졌는데 재정 깜깜이… 조합비 횡령 등 부조리 잇달아
尹 “노조가 노동약자 대표 못해”… 노동계 “노조 망신주기 앞장” 반발
○ ‘노조판 전자공시’ 추진
최근 5년간 국내 노조 가입자가 급격히 늘면서 노조의 재정 규모도 커졌다. 지난해 국내 노조 조합원은 293만3000명으로, 2016년 대비 96만6000명(49%) 증가했다. 하지만 재정 운용 실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그 사이 일부 노조에선 집행부의 조합비 횡령 등 회계 관련 비리가 이어졌다.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조 위원장은 약 3년간 10억 원이 넘는 조합비를 횡령한 혐의로 이달 21일 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장관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양적으로 성장한 노조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노조 재정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사회적 위상에 걸맞게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구축을 지시한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최대한 빨리 노조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개별 노조들이 회계 결과를 조합원에게 제대로 공개하도록 감시 및 견제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을 방침이다.
현행법으로도 노조가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내용을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외부 감시·견제 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노조법에 ‘행정관청이 요구할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노조 재정을 엄격하게 감시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에선 노조가 연차회계보고서를 노동장관에게 제출하고 외부에도 공개한다. 영국 노조도 재무 상황을 포함한 연차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 노동계 불합리한 관행도 개선
정부는 노조 재정 투명화와 별도로 국내 노조의 불합리한 관행도 개선하기로 했다. 우선 내년 2월부터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최근 민노총 금속노조 산하 포스코지회처럼 특정 노조의 가입이나 탈퇴를 방해하는 경우나 노조의 재정 비리 등을 신고하면 정부가 근로감독, 시정명령 등을 통해 엄정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금속노조가 포스코지회의 상급단체 탈퇴를 방해했다는 의혹에 대해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시정명령을 내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해당 센터는 노조의 부조리뿐만 아니라 포괄임금 오남용 등 사업주의 부조리 신고도 함께 접수할 방침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조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이번 대책의 방향성은 바람직하다”며 “법 개정 전 자율 점검으로 자체 보완 기회를 준 것은 내년에 추진할 노동 개혁을 앞두고 적절하게 속도 조절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노동계는 ‘노조 때리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노조의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상대에 대한 존중이 우선”이라며 “정부가 일부 노조 사례를 앞세워 노조 전체의 문제처럼 부풀려 노조 망신 주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 “노동 약자 보호가 노동 개혁”
정부는 이번 노조 투명성 강화를 시작으로 노동 개혁의 속도를 올릴 방침이다. 특히 노조에 속하지 않는 ‘노동 약자’ 보호에 나서기로 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노조 조직률이 낮은 현황을 보고받은 뒤 “국내 노조가 노동 약자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노노(勞勞) 간 착취 구조 타파가 시급하다”며 “정부는 노동 약자 보호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46.3%였다. 반면 100∼299명 규모는 10.4%, 30∼99명 규모는 1.6%에 그쳤다.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2%에 불과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같은 현실을 노동시장 이중구조 고착화, 노노 간 착취 구조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청년세대, 노동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는 게 노동 개혁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