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출생, 대표작 <할로윈>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괴물> <바디 백> <스타맨> <안개> <저주받은 도시> <커트 러셀의 코브라 24시> <크리스틴>
존 카펜터는 관객의 공포심리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자극하는 기교면에서 앨프리드 히치콕과 견줄 수 있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그의 대표작인 <할로윈 Halloween> (1978)은 칼이나 톱 등의 흉악한 무기를 든 괴물이 인간의 몸을 사지절단하는 소동을 벌이며 공포를 주는 ‘난도질 공포영화’의 기념비적인 효시인데, 이후 숱한 아류작을 낳았던 이 영화를 통해 카펜터는 스크린에 묘사되는 폭력과 공포의 한계수위를 시험했다. 철학적 깊이나 도덕적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액션의 심리적 효과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카펜터의 솜씨는 굉장했고 미국평단은 곧 그를 마틴 스콜세지와 브라이언 드 팔마의 뒤를 잇는 ‘영화의 자식들’ 세대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추어올렸다.
48년 뉴욕에서 태어난 카펜터는 8살 때부터 8mm SF영화를 연출한 영화신동이었으며 남가주대학 영화과에 다닐 때 연출한 여러편의 단편영화 가운데 <브롱코빌리의 부활>로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카펜터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은 <다크 스타 Dark Star>(197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걸작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독립영화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학교동창이었던 댄 오배넌과 카펜터가 같이 각본을 쓰고 6만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저예산영화였다. 그러나 큐브릭이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란 대작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게 무게를 잡으며 표현한 주제를 카펜터는 저예산영화의 단순한 구조 안에 담아내 SF영화 팬들을 놀라게 했다. <분노의 13번가 Assault on Precint 13>(1976)는 경찰과 죄수일행이 곧 철수할 텅 빈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내다가 갱단의 습격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저예산영화의 제약을 스타일 감각으로 돌파해내는 카펜터의 솜씨는 돋보였다. 그러나 카펜터의 명성을 하늘 끝까지 올려준 건 바로 <할로윈>. 이 영화에서 카펜터는 본격적으로 스타일이 이야기를 구축한다는 명제를 증명해 보였다. 살인자의 시선으로 화면이 길게 이어지는 첫 장면부터 카펜터는 와이드스크린 화면 크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잊을 수 없는 공포감을 전해주었다. 음악도 뛰어났지만 카메라 움직임의 절묘함은 가히 신동의 경지. 살인범의 시점에서 예기치 않게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카메라는 화면에 잡힌 희생자의 나약한 처지를 시각적으로 강조하며 스테디 캠(어깨에 메고 걷거나 달려도 흔들리지 않는 특수 카메라) 촬영의 진수를 보여줬다.
<할로윈>에서 카펜터가 쓴 시점화면 기법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놀랄 만큼 중립을 지키며 항상 전후좌우를 살피는 전지적 시야처럼 보이면서도 마음 약하고 착한 등장인물이 들어와서는 안 될 방향을 가리키는 계기판 구실을 하는 것 같다. 설명조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이야기체 형식과 선을 긋는 이런 카펜터의 스타일 감각 덕분에 3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할로윈>은 전세계에서 7500만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뒀다. 이 영화의 성공은 카펜터의 재능을 주목하게 했다. 78년 LA 영화평론가협회는 카펜터에게 뉴 제너레이션상을 수여했다.
<안개 The Fog>(1980)는 100년 전에 사람들이 몰살당한 유령선의 망령에 휩싸이는 광산촌이 배경인 영화로 지적인 대중영화를 만들 수 있는 카펜터의 저력을 증명했지만 이후부터 카펜터의 영화는 조금씩 심심해진다. <커트 러셀의 코브라 24시 Escape from New-York>(1981)는 거대한 감옥으로 변해버린 97년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SF영화였지만 너무 상투적인 영웅담 구조로 긴박감이 좀 떨어지고 하워드 혹스가 제작했던 51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괴물 The Thing>(1982)도 롭 보틴의 인상적인 특수효과에 가려 원작만큼 휴머니스트적인 주제가 살지 못했다. <스타맨 Starman>(1984)은 카펜터가 스필버그류의 영화를 은근히 모방하는 SF로맨스영화로 퇴행하는 흔적을 보여 놀라움을 줬다. <빅 트러블 Big Trouble in Little China>(1986)은 홍콩 무술영화를 의식한 차이나타운 배경의 평범한 스펙터클이었다.
테크니션의 자리에 자족하는 것처럼 보일 무렵 카펜터는 저예산의 악마주의 공포영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Prince of Darkness> (1987)로 자기 색깔을 다시 보여줬다. 카펜터의 작품경력에서 분명한 것은 카펜터가 저예산의 공포스릴러영화를 만드는 재주만은 정말 뛰어나다는 것이다. 예산이 빡빡한 영화를 찍을 때 연출솜씨가 더 좋아보인다는 건 동서고금을 통틀어 아주 희한한 경우인데 레이건/부시 시대의 미국을 풍자한 H. F. 세인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투명인간의 사랑 Memoirs of an Invisible Man>(1992) 같은 영화는 특수효과에만 관심을 쏟는 스튜디오의 요구에 눌릴 때 카펜터가 얼마나 멍청한 영화를 찍는지 만천하에 입증한 경우다. 그러나 이 영화 이후에도 카펜터는 <매드니스 In the Mouth of Madness>(1994)나 <저주받은 도시 Village of the Damned>(1995) 같은 수작을 또 찍었다.
카펜터는 대작 상업영화에서 자기 길을 찾는 데 좀 애로사항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바쁘다. 오랜 경력 예술적인 성장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카펜터의 이름은 어떤 수준 이상의 질을 보여주는 상표 같은 것이다. 카펜터는 존 포드, 라울 월시, 앨프리드 히치콕, 하워드 혹스 등의 감독들이 터를 닦아놓은 미국식 장르영화 전통을 잘 이해하고 연출하는 굉장한 기술이 있다. 수준이 고르지 않지만 실패작을 만들더라도 그는 언제나 몇몇 장면만은 최고수준의 화면을 연출하는 흥미로운 감독이다. / 영화감독사전, 1999
2001년 <화성의 유령들 > 2005년 TV 영화<마스터즈 오브 호러 에피소드 8 - 담배 자국 >을 연출 하였다.
자료출처: 씨네21
씨네21 리뷰
긍정과 유머의 힘으로 로드 무비의 전형적 설정을 빛내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존 카펜터의 영화를 좋아하고 <타이타닉>은 본 적 없는 남자 야코(페트리 포이콜라이넨)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시력을 잃고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온라인으로 알게 된 연인 시르파(마르야나 마이얄라)와 통화하는 것이 삶의 낙인 그는 어느 날 혈액암 투병 중인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두 사람의 집은 1천 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는데, 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집 안에서조차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은 야코에게 홀로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모험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시르파를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집을 나선 야코는 택시와 기차를 거쳐 낯선 세상을 용기 있게 마주한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상에는 호의와 친절 못지않게 악의와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다. 야코는 무사히 시르파의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핀란드 감독 테무 니키의 다섯 번째 장편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난치병으로 시력과 기동성을 잃은 야코가 연인을 만나기 위해 1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하는 험난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시각장애를 지닌 야코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클로즈업과 섈로 포커스를 주로 활용한다. 이같은 제한적인 촬영 기법과 불량배들과의 조우라는 로드 무비의 전형적인 설정 속에서도 야코의 여정이 빛나는 것은 그가 지닌 긍정과 유머의 힘에 있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과 독특한 재치를 통해 슬픔을 웃음으로 씻어내는 주인공 야코는 한계와 제약으로 가득한 영화 세계 안에서 꿋꿋이 에너지를 발휘한다.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실제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배우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은 흡인력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엑스트라 부문 관객상 수상작.
글 박정원(영화평론가) 2022-03-09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