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티미 (Silly Timmy)
거의 1년 반 전의 일이다. 밖에 나왔다가 사무실에 전화를 하니 매니저가 아무래도 빨리 돌아와야 되겠다고 한다. 티미가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돌아온 낌새를 채더니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우는 것이 아닌가. 너댓살 된 아이들이 두 다리 쭉 뻗고 우는 바로 그런 식으로, 넋두리를 섞어가며 우는데, 매니저 얘기인즉, 그러기를 20분도 넘었단다. 자기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았다는 거다. 제 주먹만한 혹이 볼 옆에 붙어있는데 처음에는 볼거리인 줄 알았으나, 다른 부위로도 전이되어, 의사 말인지 자기 생각인지, 한달 이상 살기 힘들다는 거다. 여자들이 넋두리를 하듯 울음과 말을 섞어가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기도 살아남지 못할 거란다.
“어리석은 티미, 나는 세살 때 아버지를 잃고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있지 않니? 너는 40살도 넘은 남자야”
그래도 기를 쓰고 우는 티미에게 하는 수 없이 “그쳐(Stop it)”하며 그의 울음소리보다 더 큰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서야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곧 울음을 멈춘다. 그때 그 놀라는 모습이라니.
그 이후 나는 그를 ‘어리석은 티미(Silly Timmy)’라 부르고 그도 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티미는 부모 따라 대만에서 이민 온 아이로 나는 그가 나에게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와 친분이 있던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분의 사업이 파산을 하게 되어 놀고 있었다. 우연히 은행에서 나를 보자 무척 반기면서 하는 말이 벌써 6개월 째 실직해 있고,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나는 이렇게 착실한 애가 제 발로 굴러 들어오는구나 싶어 바로 그를 채용하기로 했다.
“넌 택시기사로는 아깝고 아직 젊으니 한 10년 열심히 일해서 돈 모아 네 비즈니스라도 해 볼 생각으로 오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벌써 10년 이상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그의 지나친 열성 때문에 다른 동료들로 부터 눈총도 많이 받고, 나에겐 가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티미가 떠나면 그 자리를 누가 메꾸어 주나 하는 걱정이 서서히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미가 내게 오더니,
“영, 네가 나에게 한 말 생각나니? 10년이 이제 가까워오네. 나 우체국에서 일해볼까 하고 시험봤어.”
그 순간 내 얼굴에는 큰 낭패감이 보였을 거고, 내가 채 뭐라기도 전에 (사실 뭐라 할 말도 못찾았지만) 티미는 그 특유의 놀란 큰 눈을 하고는 곧 사라졌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나만 보면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우체국 일은 새장에 갇혀있는 것 같이 무료할 것이며, 자기 같이 활동적인 사람에겐 택시기사가 훨씬 적성에 맞는다는 식의 논리를 펴가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고맙단 말도 못하고 눈만 깜박거리고 서있는 나에게 이번에는 우쭐해서 다시 그의 큰 눈으로 살피더니 콧노래까지 부르며 돌아선다. ‘티미, 네 장래를 위해서 뛰쳐나가 보렴.’ 결국 이 말을 못하고 만 나. 나는 나의 이기주의를 나무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 한번 팔자 타령이랄까, ‘왜 하필이면 택시 사업이람! 왜 아이들이 직업을 자랑으로 삼으며 일할 수 있는 사업을 하지 못했을까!’하며 작은 한숨을 침에 섞어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곧 다시 ‘우리 같이 흙탕물에서 연꽃 피우자’(미국속담)라며 모진 마음으로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나는 그후로 티미를 볼 때마다 그의 아버지 안부를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며칠 못사실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티미 아버지는 암 수술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생존해 계신다. 풍까지 맞으셔서 말씀은 못하시지만 무언으로 티미와 맺은 약속이 있는데, 그것은 매일 티미가 아버지께 5불씩 드리는 것과 아버지는 그 돈을 밑천으로 다른 중국노인들과 소일삼아 마작을 하시는 거란다. 그 때문에 무척 행복해하시는 아버지. 티미는 그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더욱 다행인 것은 10불이 아닌 5불에 낙착된 거란다. 아버지는 처음에 10불이라고 종이에 쓰셨단다. 1달에 150불의 차이지만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칫 일주일에 하루도 못 쉬고 일요일까지 일하게 될 참사를 당할 뻔했으니까.
“마작을 법으로 금하기 전에는 너의 아버지는 계속 살아 계실거다”라는 나의 농담에 그는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며칠 전 아침에 테니스를 치러 갔다가 9시 반쯤 돌아왔다. 5분 후에 티미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1시간 반 동안 우리 집에 계속 전화를 해도 내가 없어서 무척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매일 아침 8시를 5분 전후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게 안부전화를 걸어온다. 나이 많은 사람은 대개 밤사이에 풍이 오거나 사고가 난다며 혼자 사는 나를 염려해 준다.
“티미, 앞으로는 아침 일찍 테니스를 치러가거나 내가 죽게 되면 너에게 전화로 알려 줄께”했더니, 내 말의 뜻이 그의 뇌에 빨리 전달이 안되었는지 한참만에,
“어리석은 나(Silly me)"라고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나를 스마트하다며 무척 부러워하는 티미, 하지만 나는 티미의 그 귀여운 어리석음 뒤에 숨어있는 착한 마음씨를 귀히 사고 싶다. 그를 보면 수십 년을 내가 찾고 바라던 지식, 지성이 허망하게만 생각되는 건 지나친 것일까?
첫댓글 감동 깃든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