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자영화 제작자
틀을 깨뜨리는 여자
스스로를 망가지는 삶
너무나 외로운 삶
화려한 슬픔들!
1926년에 태어나 1962년에 세상을 떠난 마릴린 먼로는 시대를 초월한 아이콘이다. 마를린 먼로가 좋아지기 시작한 건 내가 그녀보다 더 긴 세월을 살고나서부터였다. 그녀의 슬픈 삶의 궤적이 내 편협한 삶과 조우했다. 적의가 느껴지는 삶의 전장에서 평온하게 책을 읽는 그녀의 아픈 인생을 읽고 있다. 삶의 마디마디가 관절의 마디처럼 아파오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 우울하지만 과감한 한 여자의 생을 난 날로 씹어 먹고 있다.
그녀의 상냥하고 착한 인성과 옹알거리는 목소리와 웃음은 아기 방울 흔드는 소리가 난다. 핫핑크색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샤넬 No.5를 세상에 알린 세기의 아이콘이다. 그 당시, 촬영장 상황이 열악해서 트레일러에서 잠자는 경우가 많았다. 샤워시설이 제대로 없었다. 씻지도 못하고 자야 하는 상황 때문에 언제나 침대 머리맡에는 향수가 놓여있었다. 삶의 필수품이었다. 삶의 고달픔과 고통의 향이었다.
그녀에겐 월급 던져주고 술주정하고 폭력행사하는 그런 아버지조차 없었다. 평생 아버지를 누군지를 모르고 살았던 사생아였다. 어머니는 정신병환자라 딸을 죽일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양부모는 11번이나 바뀌었다. 스쳐 지나간 모든 사무침들을 넘어 그녀는 언제나 밝고 맑고 자신을 우습게 만듬으로 타인을 즐겁게 했다. UCLA에서 문학강좌를 듣고 고전문학을 읽었다.
톨스토이와 밀턴을 읽기도 하고 사후,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수많은 장서들은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학벌 세탁에 매달리고 과시하기 위해 똑 독해 보이려고 하는 우리의 삶에 일침을 던진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실패하는 결혼, 모든 무모한 집착도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사랑스러운 여인,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인이 마를린 먼로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불타는 노력과 열정을 그녀가 떠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3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은 양부모가 떠나자 어쩔 수 없이 보육원으로 가기 싫어서 16살이 끝나갈 무렵 , 제임스 도허티라는 경비원이랑 이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살기 위한 버려진 아이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전쟁이 나고 남편이 군대로 떠났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왔고 그녀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두 번째 남자는 전설의 야구선수 조지프 폴 "조" 디마지오(Joseph Paul "Joe" DiMaggio, 1914년 11월 25일 ~ 1999년 3월 8일, 미국의 야구 선수)였다. 헤밍웨이는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 어부를 통해 뉴욕 양키스와 조 디마지오에 대한 숭배를 표현했다.
“양키스는 지는 법이 없어.”
“그렇지만 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신경 쓰여요.”
“양키스를 믿으렴, 얘야. 위대한 디마지오를 생각하렴.”
불멸의 기록 56게임 연속 안타를 친 조 디마지오는 마를린 먼로의 두 번째 남편이었다. 그는 양키스 No.5 였다.
아름답고 섹시한 매력으로 만인의 여인이지만 한 남자의 여인이 되지 못한다.
가슴 아픈 한 사람의 인생이 타인에게 위로가 된다. 훌륭한 인성과 배려심 솔직함과 상냥함에 관능미까지 가진 그녀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언어로도 다 쏟아낼 수 없다.
결혼은 해도 안 해도 후회이다. 가장 아름다울 때, 영원으로 가서 늙지 않는 여신으로 남은 여자가 마를린 먼로이다. 먼로는 자신의 처량한 삶을 눈물의 진주로 삼아 대중의 눈을 속였다. 그녀는 7년 만의 외출(1957)에서 지하철 환풍구위, 흰 치맛자락을 날리는 명장면을 찍고 난 뒤 남편에게 맞았다. 결혼 9개월 만에 이혼했다.
이혼한 후 2년 뒤,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아서 밀러(Arther Miller, 1915년~2005년)와 결혼했다. 그와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까지 했다. 아이를 가지고자 했으나 두 번이나 유산했다. 현실은 언제나 그녀를 배신했고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분명 존재한다. 간절해도 안된다. 된다고 우기는 인간들은 삶이 평온하고 그냥 운이 좋은 자들이다. 5년 만에 이혼했다. 결혼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결혼에서 만큼은 신은 죽었다. 행복할 수 있었을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적어도 그녀에겐 그랬다.
최악의 순간에 함께한 자가 최고의 사람이다. 죽기 전 디마지오와 재결합을 약속했다. 너무나 가여운 그녀! 그 소박한 바람마저 사랑이 소일거리나 취미인 남자들로 인해 가혹한 희생물로 사라졌다.
주치의의 권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마를린에게 의사와 의료진들이 성추행을 했다. 병원이 퇴원을 거부한 상태에서 전남편인 조 디마지오가 그녀의 보호자로 나섰다. 병원의 벽돌 하나하나 다 부숴버리겠다고 협박하고 그녀를 데리고 휴가를 갔다. 케네디 대통령의 45세 생일 축하곡을 불렀던 그날이 그녀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조 디마지오는 그녀의 장례식을 주관했다.
디마지오의 마지막 유언은 "드디어 마를린을 만날 수 있겠네."였다. 그 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수십 년 동안 1만 8천 송이의 꽃을 마를린 먼로의 무덤에 갖다 놓았다. 남자의 잃어버린 사랑은 사는 동안 가혹한 고문이었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에는 마중 나온 반가운 친구였다.
마를린 먼로는 1954년 주한미군 방문차 한국에 왔을 때,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얇은 원피스만 입고 춤추고 노래할 때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남자를 사랑했지만 이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사랑한 남자의 유산도 받지 않았다. 오로지 사랑 자체만을 위해 사랑을 했던 여자이다. 순수한 비너스의 죽음이었다. 언론의 잔악함과 무식함에도 그녀는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말한다. 수많은 정치인들의 가식적인 말들은 쓰레기봉투에 담기도 아깝다. 그녀는 솔직했다. 정직하면 한 번만 말하면 된다. 먼로처럼! 돈과 명예가 나보다 앞서는 순간 인간은 불나방처럼 타들어간다.
남자들은 어리숙하고 말 잘 듣는 여자를 좋아한다. 육체를 이용한 남자들에게 희생당한 인형의 삶이었다.
원흉을 제거하지 못하면 전쟁은 되풀이된다는 칭기즈칸은 옳았다. 언론은 언제나 자극적인걸 원했고 그녀는 늘 놀잇감이었다.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순간 아이를 유산하고도 화장을 진하게 하고 웃어야 했다. 백치 아다다처럼 멍청하고 착하고 순종적인 모습을 연출해야 했다. 꾸역꾸역 자신을 속이며 살아갔다. 하루종일 멍한 상태였다. 정신과약은 그녀를 점점 망가뜨렸다.
세상을 너무 쉽게 평가하고 믿지 않기로 난 나와 약속했다. 최악의 나를 견뎌야 최고의 나를 누릴 수 있다. 사람은 항상 착하거나 상냥할 수는 없다. 순간적으로 화나거나 짜증이 나는 순간도 있다. 그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무례한 기자의 말에도 그녀는 항상 친절했다. 내적으로 단단한 여인이었다. 불행도 파도타기처럼 넘어서고 자신만의 탑을 세웠던 여자! 우울함을 과감함으로 바꾸려고 언제나 노력했다. 그녀의 사인은 영원한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멍청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가 얼마나 치밀하고 영리했는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미디어는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주기도 하지만 편협되거나 왜곡된 사실도 서슴지 않고 전한다. 그녀는 미디어가 갖고 놀아온 금발의 백치미의 여인이 아니었다.
수없이 절망하고 좌절해도 변신하는 여자, 홀로 거울 앞에선 펑펑 울어도 카메라 앞에선 웃어야 했던 여자. 예쁜 외모와 뛰어난 연기 그리고 집념의 여자, 본인의 매력을 극대화할 줄 아는 여자, 불운한 유년기를 이겨냈음에도 결국은 극복하지 못한 비운의 여신이었다. 난 언제나 쉽게 울고 감정을 제어 못하지. 떨어지는 잎새에 왜 마음을 두나! 한쪽 구두굽을 잘라 골반이 도드라지게 흔들리도록 오염해 보이도록 시도했던 여자, 난 그냥 뚜벅뚜벅 내 길을 절뚝이는 그녀의 걸음처럼 걷는다.
차가운 바람이 들개처럼 살을 물어뜯는 밤, 처참하게 삶은 늘 나를 배신하지. 나무가시로 고동 빼먹듯이 어느 날 누군가가 내 심장을 뽑아갔다. 사랑만을 사랑하고 떠난 여자, 타다만 시체를 뜯어먹는 갠지스의 개떼처럼 기자들이 달려왔다. 그래 어차피 죽은 몸 양보할게! 기자들의 잔칫날, 누군가는 죽어가지! 난 나보다 불행한 이들을 찾아 노래하는 악의 사냥꾼, 그녀는 나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지느러미를 달고 바닷속을 헤엄치다 힘들게 걸어가는 인어공주처럼 걷고 또 걷는다. 어떤 날은 머리, 꼬리, 몸통 잘린 토막 난 생선이 되기도 한다. 매독처럼 잠복해 있다가 다시 발작하는 내 우울증과 난 아직 타협하지 못했다.
초승달이 무지개 미끄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