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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한복음21:1-17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해변에서 파티를 하시며 사명을 확고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통해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어린 영혼들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은 당장 먹고 살길이 망막하게 되었습니다. 2절을 보면 그들은 서로 의지하기 위해 모였던 같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전도하러가야야 할지 아니면 모여서 함께 교회를 개척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먹고 살아야 하는 냉엄한 현실로 인해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시몬 베드로가 안되겠다 싶어서 3절을 보면 “나는 물고기 잡으러 일단 가겠노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눈치만 살피던 요한과 야고보도 함께 가겠다고 했고 또 다른 제자들도 함께 나섰습니다. 그들은 실로 오랜만에 배에 올라 고기를 잡으러 나갔으나 그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3년전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 때도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었지만 고기를 못잡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피곤하고 배도 고팠지만 자기 생각을 버리고 단순하게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단순하게 믿고 순종함으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아무런 꿈도 없이 세상에서 하루하루 그저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에게는 참된 삶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식 잘키우고 시집장가 보내고 노년을 편안히 보내는 것이 그의 꿈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깊은 데로 가라시는 주님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체험한 뒤부터는 예수님 안에서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꿈 때문에 즉시 결단을 하고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그의 꿈은 송두리째 없어지게 되겠습니다. 3년을 예수님 믿고 따른 것이 헛 것에 홀렸던 것 같게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사실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나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먹고는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제자들은 거룩한 사명은 제쳐놓고 예전생활로 돌아가 고기를 잡고자 배에 올랐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그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무엇하나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모든 꿈을 접고 별 것 아닌 존재로 스스로 체념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는 결코 그런 그들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그들의 이 밤의 실패부터 만회시켜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부활한 뒤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6:32)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5절을 보시면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들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피곤하였지만 이에 순종하여 던졌습니다. 그들은 잘하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순종만큼은 늘 잘하였습니다. 그러자 6b보면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나 어부로서나 다 실패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이 실패를 계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우리도 흔히 하는 일마다 이상하게 실패하고 되는 일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도 그렇고, 그렇다고 가정과 자녀들도 잘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하여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가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조금치 개의치 않으시고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실패를 실패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영광이요 반드시 실패를 만회시켜 주십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을 목격한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해변가에 서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이다” 라고 소리쳤을 때 베드로는 곧바로 물속으로 다이빙하여 헤엄쳐서 예수님께 갔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 어떤 장면을 보게 되었을까요? 9절을 보면 숯불이 빨갛게 타고 있었습니다. 그 숯불 위에는 생선이 놓였고 또한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프고 지친 제자들을 위하여 친히 아침 식사를 요리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먼 길에서 돌아온 지친 자녀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차린 음식상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얼마나 춥고 배고플 것인가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이였지만 한마디도 책망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모든 실패와 연약함을 다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가셔서 고기와 떡을 가져와서 제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해변 파티는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잘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이 베드로의 모든 실패와 허물을 다 덮어버렸습니다. 이 뜨거운 섬김이 제자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죄책감, 슬픔을 다 녹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인생들의 구주로서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하셨으므로 영광의 주가 되셔서 마땅히 인생들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전히 배고프고 지친 제자들을 위하여 친히 아침식사를 요리하시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 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신 영광의 주님이 제자들을 위하여 친히 아침식사를 요리하시고 섬기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사랑인지요? 예수님은 친히 떡을 가져다가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마음에는 사랑의 숯불이 활활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오늘날 동일하게 허물과 연약함으로 힘들어하는 우리들을 변함없이 용서와 사랑으로 섬겨주십니다.
15절을 보면 이제 조반을 다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지목하여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질문 중에 왜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사랑하느냐고 물었을까요?
첫째, 베드로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연인간의 사랑도 그 어떠한 다른 것보다 자신만을 가장 사랑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이런 사랑을 원하신 것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사랑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해야 행복해집니다. 사랑을 해야 힘이 나고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사랑을 회복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사랑이 깨어지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로 죄를 제거하여 주셔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우리를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꾸어주셔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음을 다해 성품을 다해 목숨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사랑을 해야 우리는 영광스런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진실하고 순수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사랑할 만 것이 못됩니다.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아닌 다른 것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질투심을 가지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질문을 거듭 3번이나 그 진정성을 물으신데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베드로의 절대적인 사랑 고백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나를 아가페 즉 진짜 최고로 목숨걸고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사람들은 원어상 정확한 의미는 사람, 사물 다 지칭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보다는 이것들이라고 하면 맞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도 많이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다른 것은 꼭 하나님과의 사랑을 훼방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마음 속 깊이 이것들 즉 다른 무엇인가를 사랑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랐을 때 직장과 가정과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행1장을 보면 자신의 꿈만큼은 버릴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꿈은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우편자리를 얻는 것이였습니다. 그는 이런 세상적인 꿈 때문에 모든 것을 쉽게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 꿈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아가페의 사랑고백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런 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와 같이 마음속 깊이 숨겨진 이기적인 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다른 것도 많이 사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과의 사랑을 훼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주셨습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드리는 것이요 마음을 드리는 것이요 목숨을 드리는 것이요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들을 위해 물질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이 아깝지 않고 기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어디에 드리는가를 보면 우리의 사랑이 어디에 가 있는가 알 수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이러한 것들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형식적인 사랑입니다.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로미오의 집안과 줄리엣의 집안은 서로 앙숙지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랑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들은 결국 사랑하기에 목숨까지 드립니다. 이들은 사랑을 훼방하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합니다. 그 어떠한 것도 사랑앞에는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국경이 없이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며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을 이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어린 양떼들, 교회학교 아이들, 어린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마음을 다해, 시간을 다해, 물질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사랑의 교회성도님들은 이번 해가 가기전에 어린 양떼들에게 사랑을 먹이고 말씀을 먹여서 주께로 이끄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이 질문을 3번씩이나 하신 것은 바로 양들의 목자로 세우고자 하기 위함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할 때마다 어김없이 내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질문하신 것은 바로 양을 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많고 많은 일이 있지만 양을 치고 양육하는 일처럼 가치있고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의사도 좋은 직업이고 학교선생님도 좋은 직업이지만 생명을 낳고 변화시키는 일처럼 의미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종합예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양하는 분들은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 멋있는 분들이요 훌륭한 분들입니다. 이들이 하는 일들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들이 양육하는 분들이 코흘리개이지만 이들의 희생과 양육으로 자라나면 20년,30년후에는 큰 인물들이 되어 세계를 움직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진실한 사랑고백을 하기를 원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반드시 어린양을 먹이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김집사 네가 진짜로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그렇다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아무렇거나 대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대충 하면 어린 양이 삐뚤게 자라고 영양실조에 걸려 엉뚱한 곳에가 방황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온 성도가 이번 교회리점프에 온힘을 다하여 동역하시고 배가부흥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양을 먹이고 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또 육적인 양식인 맛있는 음식과 사랑을 먹여야 합니다. 양떼는 먹어야 자라납니다. 많이 먹어야 놀라운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 교회리점프를 즈음하여 우리성도님들은 예수님을 아가페적으로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맡겨진 어린 양떼들을 마음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하고 먹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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