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는 졸업생 취업률이 67%에 달한다. 서울 주요 대학 중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인구론'(인문계 90%는 논다)이란 말까지 나오는 인문계생의 처지는 달랐다. 고려대 인문대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종규씨(정치외교학과 4학년)는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준비하다 떨어진 뒤 올해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막상 원서를 쓰고 싶어도 인문계생은 쓸 곳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라며 힘들어 했다. 홍인욱(경제학과)씨도 "모 회사 경영지원 부문에 원서를 내려고 봤더니 산업공학 계열만 지원할 수 있었다"며 인문계생은 다른 인문계생뿐 아니라 이공계생과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이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이씨는 "국민은행 자소서를 쓸 땐 은행원이 됐다가 현대차 자소서를 쓸때는 제조업 영업맨이 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성영(행정학과)씨는 “E1 인·적성 시험을 보러 갈 때 아는 형이 ‘왜 거기를 가느냐’고 하더라. 어른들은모른다. 고려대 나오면 다 쉽게 취업하고 고시 보면 다 되는 줄 안다.정말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김모씨는 “어떤 대학은 재학생의취업을 위해 학교가 발벗고 나서지만 명문대는 학생들이 잘 할 거라 믿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취업에선 오히려 불리하다”고 했다. 정씨는 “일찌감치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고했다.
이들은자신이 밤 새워 작성한 자소서를 기업들이 정말 꼼꼼히 읽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나씨는 “한 홈쇼핑업체에 지원한 친구가 자소서에 다른 회사 이름을 써넣었는데도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어떤 회사는 지난달 22일 지원서를 마감한 뒤 1주일 만에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했다”며 “스펙으로만 재단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했다.
고려대생들도 피할 수 없는 현재의 취업난 속에 고려대 경제학과 이국헌 교수는 "학벌시대는 끝났다. 묻지마 지원보다 구직자들이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회사에 지원해야 개인도 행복하고 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