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至誠) 성이면 감천(感天)
우리 동네는 아파트 촌도 아니요, 그렇다고 말만 하면 누구나 잘 아는 그런 부자 동네도 아닙니다.
그저 산으로 이어지는 단독 주택과 연립 주택이 공존하는 그런 흔한 동네입니다.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고향이 같아 형님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 아들, 며느리,
손자가 사는 이웃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병간호를 위하여 10년 전에 모 협회의 국장으로 근무하다가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할머니가 처음 쓰러진 것은 뇌출혈입니다.
그 후 연속적으로 낙상(落傷) 하여 고관절 손상에 하 복막 근종(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한 후
거동도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한 군데 아프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여러 병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하나 봅니다.
상태가 나빠지면 산소 호흡기를 착용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족이 원하더라도 임의로 퇴원이 안 된 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회의 끝에 퇴원하여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비하여 묘 자리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듯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 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할머니 세수며 수시로 목욕을 시켜줍니다.
80세 노인이 운동도 안 해 불어난 축 처진 병든 아내를 목욕을 시킨다는 것은 힘이 부치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깔끔하게 보살펴 드렸는지 방에서는 냄새 하나 없고 할머니의 얼굴은 새색시 마냥 맑고 화사합니다.
누가 할머니를 병자라 하리오.
조석(朝夕)으로 부처님 공양하듯 지극 정성으로 식사도 챙겨드리고 하루에 6-7번씩 기저귀도 갈아 주어야 하며,
점심에는 할머니가 그나마 도 좋아하는 팥죽을 새알이 듬뿍 들게 특별 주문하여 사다 드립니다.
할머니는 남편을 아버지라 부르며 이제는 팥죽도 맛이 없다며 아기와 같이 아무 데나 뱉어버립니다.
완전히 아기입니다.
팥죽 가게 주인이 요새 할아버지가 자주 들리지 않는다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오래 누워 있다 보면 혹시 욕창이라도 생기면 어떨까 싶어 에어 매트에, 대소변을 다닐 때 편히 갈 수 있도록
휠체어를 준비하고 하루 종일 할머니 간호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하도 딱해 요양 원에 모시어 놓고 자주 드나드는 것이 어떠냐고 권해도
그렇게는 할 수는 없다며 딱 한 마디로 거절합니다.
학생인 내게 어렵게 시집와서 고생만 시켜 오다 이제 아내가 병들고 치매에 걸렸다고 나 혼자 편하게 지내겠다고
고생만 시켜 온 불쌍한 아내를 나 몰라라 하고 요양 원에 보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병들어 누워 있어도 없는 것보다 낫고 그래도 아내와 같이 있을 때가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누가 할머니를 요양 원에 모시자고 하겠습니까?.
할아버지의 단 한 가지 소원은 아내가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차에 태워 넓고 푸른 동해 바다를 보여주며 그동안 방에만 있어 답답한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소박한 소원이라도 어느 이에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내를 위한 병간호도 벌써 10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어깨가 유난히 처져 보입니다.
비가 와서 그런 것인가.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인가 볼수록 안쓰러워집니다.
할아버지도 건강하셔야 할 텐데.
그래야만 할아버지 소원대로 할머니를 동해로 모시고 가 넓고 푸른 바다를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아! 그런 좋은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옮긴 글>
제가 이 글을 올리는 것은 제가 살아온 삶에서 느끼는 3가지 후회가 있습니다.
첫째, 젊어서 아이들과 가까이 보내지 못한 후회요.
젊어서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불행히 저는 한 회사에서 26년을 보냈으면서
사주(社主)가 5번이나 바뀌었고 사장(社長)을 16분이나 모시며 살았답니다.
그 속에서 살아나야 했습니다.
둘째, 부모님께 제대로 용돈을 드리지 못한 후회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어쩌다 용돈을 드리면 자식 키우는 네가 돈이 필요하지 농촌에서 사는 우리가
무슨 용돈이 그리 필요하냐며 거절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줄로만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셋째는 부모님 노후에 치매로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실 때
바깥 구경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후회입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그렇게 누워계셔야만 편하시리라 여겼습니다.
나는 직장에 매달려 사는 동안 어머님을 모시는 일은 모두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어머님 치매로 고생하신 7년 간 모든 수발을 아내가 다 하였습니다. 그 어려움 다 겪으면서
어머님 때문에 힘들다는 말 단 한번도 하지 않고 헌신한 아내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정신이 돌어오는 잠시 "네 아내 좋은 사람이다. 잘 해주거라" 하시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이지요. 풍수지탄(風樹之嘆)입니다.
이 노인 어른께서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큰 죄의식 자책에 젖어듭니다.
서봉 배상
가져온 곳 : 카페 >演好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