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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해랑길 58코스(선도리 갯벌체험장 – 춘장대 해변)
여 행 일 : ‘24. 8. 24(토)
소 재 지 : 충남 서천군 비인면·서면 일원
여행코스 : 선도리갯벌체험장→월하성마을→서울시연수원→띠목섬해변→공정마을→홍원항→춘장대 해변(거리/시간 : 11.7km, 실제는 14.46km를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58코스를 걷는다. 8개로 이루어진 서천·보령·홍성 구간(56-63코스)의 세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서천군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진하는 여정이다. 난이도는 별이 3개(전체 5개)로 분류된다.
▼ 들머리는 선도리 갯벌체험장(충남 서천군 비인면 선도리)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IC에서 내려와 21번 국도를 타고 서천방면으로 4km쯤 내려오다, ‘해본마린(보트 판매·수리업체)’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빠져나오면 잠시 후 비인해변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서천 58코스) 안내도는 선도리갯벌체험장 앞에 설치되어 있다.
▼ ‘선도리(갯벌체험장)’에서 서천군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진, ‘춘장대해변’까지 가는 11.7km짜리 여정이다. 코스 대부분이 바닷가를 따라 나있어 여름철에는 다소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곱디고운 모래사장을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데다, 생태계가 잘 발달된 갯벌에서는 재수라도 좋으면 조개 한두 개 정도는 너끈히 주워들 수 있다.
▼ 이곳 선도리해변은 전국 제일의 ‘갯벌체험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접수창구 앞에 줄지어 늘어서있는 저 인파가 그 증거다.
▼ 10 : 00. 해안산책로를 따라 북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이때 ‘쌍도(雙島)’가 눈에 들어온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과 천석지기 부잣집 외동딸의 애틋한 사랑얘기가 전해지는 전설의 섬이기도 하다.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 남녀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극단적 선택을 했고, 선도리 앞바다의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우뚝 솟아났다나?(갯벌체험장의 분위기 연출을 위해 지난 57코스 때 사진을 게시했다)
▼ 진행방향에는 옥녀봉을 병풍삼은 ‘월호리(월하성 어촌체험마을)’ 포구가 놓여있다.
▼ 10 : 10. 해안에서 빠져나간다. 해안산책로도 이쯤에서 끝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 10 : 12. ’갯벌체험로‘로 올라섰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갯벌체험로’는 ‘배롱나무길(서천군 군도 5호선 종천면 장구리에서 시작해, 비인면을 거처 서면으로 이어지는 약 20km 구간)’로도 불린다. 서천은 배롱나무 꽃길로 유명하다. 해안도로를 배롱나무 꽃길로 조성해 갯벌과 어우러지는 꽃무리의 운치를 보여준다.
▼ 아재개그 하나. 왜 ‘배롱나무인지 아시나요?’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한번 성한 것은 오래가지 않아 반드시 쇠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부귀라는 꽃말의 배롱나무 꽃은 7-9월까지 계속 꽃을 피워 백일홍 나무라고도 불린다. 그걸 자랑하며 십일홍일 뿐인 다른 나무들에게 ‘메롱’하며 놀린 것이 시간이 자나면서 ‘배롱’으로 변했다나?
▼ 10 : 23. 인생은 좋은 일로만 계속될 수는 없는가 보다. 비인천(庇仁川)을 가로지르는 ‘쌍도교’를 건넜다싶으면 이정표(종점 10.2km/ 시점 1.5km)가 이제 그만 배롱나무 꽃길과 헤어지란다.
▼ 이정표가 서해랑길 본연의 임무를 되찾았다. 시점과 종점까지의 거리를 기본으로 인근의 주요 포인트를 추가했다. 하단의 지도에는 현재위치의 주소까지 적어 넣었다.
▼ 이후부터는 방조제의 둑길을 따라간다. 길은 ‘월하성 어촌체험마을’로 이어진다.
▼ 이즈음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한 ‘쌍도’를 눈에 담을 수 있다. 그저 뭉툭한 모양새일 따름이었던 섬이 언제부턴가 고래와 거북 모양을 닮은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다.
▼ 10 : 27. 바닷가 습지에는 조류관찰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니 무늬만 ‘탐조대’였다. 바다생물 관찰 사이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찰 구멍을 아래가 아닌 위에다 뚫어 놓은 이유는 대체 뭘까?
▼ 안내판은 철새가 아닌 흰발농게, 갯게, 대추귀고둥 등 해양생물에 대한 설명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다. 반 폐쇄형 갯벌인 월호리 갯벌에 3종의 해양보호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특히 갯게는 서해안에서 유일한 서식지라고 한다.
▼ 10 : 29. ‘해뜨는비치하우스 펜션’. 서해랑길(kakaomap)은 펜션 앞에서 직진이다. 하지만 ‘두루누비(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사이트)’에서 배포한 트랙은 오른쪽으로 가란다. 우리 부부는 kakaomap을 따르기로 했다. ‘월하성 포구’를 둘러본 다음 바닷가를 따라 ‘띠섬목’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 10 : 32. 월하성 마을. 법정 동리인 ‘월호리(月湖里)’를 구성하는 3개 자연부락(화동·월하성·큰장굴) 중 하나로 ‘달빛 아래 신선이 노는 것 같은 마을’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신성지로 꼽히던 마을이다.
▼ 마을 담벼락은 벽화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보수를 안해서인지 없던 것만도 못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 10 : 35. 월하성마을 앞 풍경. 58가구 196명이 살아간다는 마을은 규모가 제법 컸다. 민박이나 펜션은 기본. 편의점에 식당(그것도 셋이나)까지 들어서 있었다.
▼ 바닷가에는 ‘철새나그네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충남 서천은 서해안을 끼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보령 땅과 경계를 이룬 ‘부사호’에서 전북 군산을 마주보고 있는 장항까지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 ‘서천 철새나그네길’이다. 총 5개 코스 37.8km에 이르며, 1코스(붉은낭만길) 8.8km, 2코스(해지게길) 5km, 3코스(나그네길) 14km, 4코스(윤슬길) 5km, 5코스(해찬솔길) 5km로 조성되어 있다.
▼ 앞바다는 만 형태의 지형으로 수심이 얕아 갯벌이 잘 발달해있다. 썰물 때면 갯벌이 1km 가까이 드러난다. 또한 질퍽한 갯벌이 아니라 고운 모랫벌이라 움직이기도 편하다. 덕분에 봄부터 가을까지 갯벌에 직접 들어가 바지락, 모시조개, 맛조개 같은 조개류를 채집하고 갯벌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
▼ 월하성 포구의 어선들도 하나같이 물양장으로 올라와 있었다. 서천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나오다 보니 이젠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 배는 경운기나 트랙터에 의해 바다로 옮겨진다. 저 배는 언제라도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다. 아니 다른 배들도 출발선상에 선 달리기 주자들처럼 신호가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 길가에는 ‘쭈꾸미 잡이’용 소라껍데기가 줄에 묶인 채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쭈꾸미는 낚시로 잡는 것보다 ‘소라방 잡이’ 방식으로 잡는 것이 힘은 더 든다고 했다. 하지만 쭈꾸미에게 스트레스를 적게 주는 만큼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다고 한다.
▼ 저 길은 어선 전용이다. 어민들은 바다가 멀리 물러나는 썰물 때는 경운기 뒤에 배를 싣고 이 길 끝까지 가서 바다에 배를 띄운다. 이게 또 이색적인 풍경으로 비쳐지면서 탐방객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나? 맞다. 끝 간 데 없는 갯벌 위로 배를 싣고 바다로 가거나,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배를 싣고 나오는 경운기들의 행렬이 어디 그리 흔한 풍경이겠는가.
▼ 10 : 43. 포구의 끝. 방파제 앞에는 어촌체험 안내소 겸 매표소가 있었다. 8월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이용한 ‘월하성 횃불문화축제’까지 열어가며 체험객들을 유치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때 배올리기 문화체험, 어부체험, 맨손으로 고기잡기 체험, 돌게잡이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단다.
▼ 방파제에서 바라본 ‘월하성 마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모양이 달을 닮았다하여 ‘달 아래 성’ 즉, ‘월하성(月下城)’이라고 부른다나? 해안가의 지형이 기러기 날개처럼 굽어졌다고 해서 ‘월아성’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1864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 마을 서쪽에 ‘월아산’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게 지금의 옥녀봉으로 추측되며 마을 이름도 이 월아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 마을의 끝에는 봉긋하니 솟아오른 동산이 하나 있었다. 내가 ‘띠섬’으로 오해했던 섬이다. 주민들 말로는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육지로 변한 섬이라고 했다.
▼ 방파제에서 바라본 북쪽 해안. 저 해안선을 따라 ‘띠섬목’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 말로는 무릎까지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단다. 갯고랑이 제법 깊다는 것이다. 고민해볼 필요도 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이유이다.
▼ 10 : 52. 마을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월하성길’을 따라 ‘서울시 서천연수원’쪽으로 간다.
▼ 10 : 58. 고갯마루에서 서해랑길 이정표(종점 8.7km/ 시점 3km)를 만났다. 그런데 옥녀봉(75.9m)으로 올라가라는 게 아닌가.
▼ 하지만 우린 ‘서울시 서천연수원’으로 간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띠섬’을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아니 해안선을 따라가는 ‘철새나그네길(3코스)’이 옥녀봉을 넘는 ‘서해랑길’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 11 : 09. 연수원 경내를 횡단해 바닷가로 내려선다. 건물들이 밀집해있어 길 찾기가 수월치는 않으나 연수원 이정표의 보존습지·모래톱마당·해변가 등을 참조하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더. 해안선을 따르는 이 구간은 밀물 때는 이용할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해변은 광활하지는 않지만 연수원 식구들을 소화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널찍했다. 거기다 규사 성분의 모래사장은 한없이 보드랍다. 이런 고품격의 ‘프라이빗 비치’를 갖고 있는 서울시청은 대체 무슨 복일까? 서울 시내의 지하철역을 시작으로 ‘독도 지우기’를 나서고 있는 매국 행위는 ‘토착 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데...
▼ 가는 입자의 모래가 물에 다져진 탓에 발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바닥이 단단했다. 아니 발바닥으로는 폭신폭신한 촉감이 느껴져 온다. 보드라우면서도 단단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로드 컨디션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 ‘띠섬’은 육지와 30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저 섬은 하루 두 번 썰물 때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 육지와 연결된다고 했다. 그래선지 바다에서 조개를 캐고 있는 사람들이 몇 보인다.
▼ 길은 갯바위지대로 연결된다. 위험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을만한 검붉은 바위들이 해안선을 따라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갯바위는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흡사 조각전시장을 보는 것 같다. 언젠가 TV 화면에서 살짝 스쳐지나가던 달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 그렇다고 모두가 다 오밀조밀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험상궂으면서도 거대한 갯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살짝 비켜 지나가면 그만이었지만... 아무튼 모래해변은 모래해변대로, 갯바위는 갯바위대로 바다와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었다.
▼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갯바위들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동안 바다와 사랑에 빠져 지금과 같은 아기자기한 모양이 됐다. 그러다보니 해식지형의 변화과정도 살짝 엿볼 수 있다. 해안절벽이 침식을 거쳐 해식동굴로 변한... 저런 동굴들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로 변하고, ‘씨 아치’가 세월이 흐르면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 되기 때문이다.
▼ 이때 마량포구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串), 즉 반도가 눈에 들어온다. 서천화력의 거대한 마천루도 시야에 잡힌다.
▼ 11 : 14. 갯바위로 이루어진 모퉁이를 돌아서면 ‘띠섬목’이다. 이정표(종점 8.3km/ 시점 3.4km)는 월하성마을에서 이곳까지를 1km로 적고 있다. 하지만 내 트랙은 1.4km를 찍는다. 해안선을 따르는 철새나그네길(3코스)이 서해랑길보다 더 길다는 얘기일 것이다.
▼ 들일 나온, 아니 갯일 나온 어느 가족. 꽤 오래 버틸 요량인지 바닷가에 돗자리까지 펼쳐놓았다. 바리바리 싸온 간식도 펼쳐놓았음은 물론이다.
▼ ‘띠섬목’이란 지명을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 ‘띠섬’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곧 ‘띠섬목’이 아니겠는가.
▼ 이후부터는 ‘띠섬목 해변’을 따른다. 규사성분의 고운입자로 이루어진 백사장이 자랑인 해변이다. 배후에 울창한 송림까지 끼고 있으니 해수욕장 부지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하지만 사유지인지 해안선을 따라 길게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 앞으로 나아갈수록 마량포구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串), 즉 반도가 점점 더 선명해진다.
▼ 해변은 가고 또 가도 끝이 없었다. 맞다. ‘띠섬목 해변’은 그 길이가 4km나 된다고 했다. 물먹은 규사성분의 모래사장이 단단하게 굳어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딱딱하다는 것은 아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폭신폭신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의 연한 움직임이 있었다.
▼ 뒤돌아 본 ‘띠섬’. ‘띠 모(茅)’자를 써 ‘모도’라고도 하는데, 월호리에서 갯벌로 이어진 덕분에 갯벌체험장으로 이용된다.
▼ 11 : 35 – 11 : 55. 바닥이 곱다고 뜨거운 태양열까지 없애주지는 못했나보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스스럼없이 ‘해송펜션’으로 올라가버린다. 더 이상은 무리라면서 잠시 쉬어가자는 것이다. 덕분에 우린 다른 일행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나누며 20분 정도 푹 쉬어 갈 수 있었다.
▼ 이 일대의 갯벌은 장벌어촌계 및 개인 소유의 양식장이라고 한다. 그러니 펜션손님이나 관광객들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조개를 채취해야 한단다.
▼ 11 : 55. 다시 길을 나선다. 모래사장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못 견딜 정도로 지루하지는 않았다. 조개를 캐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고, 바지락·동죽·굴·고동 등 그들이 거둔 수확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차고도 넘쳤기 때문이다.
▼ 이곳에서는 국물이 시원한 바지락, 구우면 더욱 맛있는 모시조개, 뽀얀 속살이 쫄깃한 돌조개 등 각양각색의 조개가 잘 잡힌다고 했다. 하지만 서천 갯벌체험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맛조개 잡기. 호미로 흙을 파낸 뒤 조개를 줍는 것과 달리 송송 뚫린 갯벌 구멍 안에 소금을 뿌리면 맛이 쏙 튀어나온다.
▼ 맛조개 잡이는 삽과 소금만 있으면 충분하다. 펜션에서 장비를 빌려주고, 잡는 방법도 간단해서 아이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먼저 삽으로 개흙을 살짝 걷어내고 구멍에 소금을 한 움큼씩 뿌려놓으면 소금의 짠 기운을 견디지 못한 맛이 마치 안테나를 올려 갯벌 위를 탐색하듯 고개를 살짝 내민다. 이때 맛을 억지로 잡아 빼는 것은 금물. 잘못하면 끊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반 이상 올라왔을 때 재빨리 낚아채야 한다.
▼ 어! 모래사장이 거칠어졌다. 엊그제 지나간 태풍 ‘종다리’가 남긴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 12 : 10. 해변은 배후 숲이 계속해서 따라온다. 울창한 송림이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이룬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또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만큼 그늘이 절실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폭염경보까지 내려진 날, 그것도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모래사장을 걷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 숲에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캠핑 사이트도 눈에 띈다. ‘해오름관광농원’에서 만들어놓은 부대시설이다. 철새나그네길(3코스 : 해오름관광농원→다사항) 걷기 여행자들이 기점으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 12 : 16. 그 끝에는 ‘해오름 모텔’이 있었다. 서해의 푸른 경관을 두 눈에 담으며 잠들 수 있으니 하룻밤 머물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 12 : 19. 길이 끊겨있어 다시 해변으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더 모래사장을 걸어야만 했다.
▼ 12 : 24. 드디어 도로(공암남촌길)로 올라섰다. 이후부터는 방파제의 축대 위를 걷는다. 축대의 높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음주 보행을 삼가야 하는 구간이다. 하나 더. 이 일대는 긴 벌판이란 뜻의 ‘장벌’로 불리기도 한다. 벌판이 하도 길어 가다가 쉬어갔다고 해서 ‘쉬엄장벌’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 12 : 29. 해양재난구조대 앞에서는 도로 오른편으로 들어붙는다. 널찍하니 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 12 : 30. 서도초등학교. 서해바다를 뜨락 삼았으니 입지조건으로는 이만한 곳도 없을 듯 싶다. 하지만 이번 종다리 태풍 때만 해도 학교 앞 도로가 통제되는 등, 기상이변 때마다 비상이 걸린다니 세상 일이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나보다.
▼ 12 : 35. ‘신바람 난 찐빵·만두집’ 앞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남촌마을’이다. 법정 동리인 ‘도둔리(都屯里, ’군사가 주둔하던 곶‘에서 유래된 지명)’에 속한 행정부락 중 하나로 ‘도둔리’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남촌마을 골목. 장방형의 마을을 남북으로 짧게 관통한다.
▼ 요즘은 민박도 월 단위로 내주는 모양이다. 하긴 작년 코카서스 3국을 여행하면서 들른 조지아에서는 주민들이 한 달이 아니라 일 년 살기를 권하기도 했었다. 내가 수령하는 연금이면 호화롭지는 않아도 여유롭게 주변 나라들까지 모두 둘러볼 수 있다면서 말이다.
▼ 12 : 37. 골목을 빠져나와 ‘서면로’를 횡단한다. 이어서 도둔리의 또 다른 행정부락인 ‘공정마을(7리)’로 들어선다. 마을에는 노인정(마을회관) 말고도 ‘커뮤니티센터’가 따로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춘장대역’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맞다. 저곳에는 서천화력선(간치~동백정)의 ‘춘장대역(春長臺驛)’이 있었다.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관광열차(통통통 뮤직카페트레인)가 이곳까지 운행하기도 했으나, 2018년 서천화력선이 폐지되면서 2020년 춘장대역 커뮤니티센터로 변신했다.
▼ 공정마을 뒤 언덕을 넘으면 ‘요포마을(10리)’이다. 참고로 도둔리는 1리 장벌, 2리 남촌, 3리 동리, 4리 아파트촌, 5리 중리, 6리 요치, 7리 정동, 8리 공암, 9리 홍원, 10리 요포 등 10개의 행정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 길가 화단에 ‘설악초(雪嶽草)’가 화사하다. 회녹색의 잎이 나는데 가장자리가 흰색 테두리를 친 듯 하얗다. 그런데 난생 처음 본 꽃마저 온통 하얀 게 아닌가. ‘설악초(snow-on-the-mountain)’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란다.
▼ 길은 이제 ‘홍원항’으로 이어진다. 서면에서도 제일 서단에 위치한 어촌마을로, 옛날에는 ‘탄포’라 불리었는데, 70년대 공정마을에서 분구하여 행정구역상 ‘홍원리(도둔9리)’가 되었다. 이쯤에서 팁 하나. ‘요포 마을회관’을 지나면 두 곳에서 길이 오른쪽으로 나뉜다. 중간 기점인 홍원항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곧장 오른쪽으로 가면 될 일이다. 이 경우 2km 정도를 단축하게 된다.
▼ 12 : 59. ‘홍원마을(이정표 : 종점 2.4km/ 시점 9.3km)’에 이른다. 바닷가 마을이라서 90%가 어업에 종사하고 어선만도 60척에 이른단다. 그래선지 마을에서 열리는 ‘풍어제’가 주요 볼거리로 꼽히고 있었다. 음력 1월 7일에는 마을주민 2백여 명이 참여하여 마을의 안녕과 어민들의 안전사고 및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단다.
▼ ‘서천 지명 탄생 600주년’ 기념 조형물. 1413년(태종 13)에 서천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모양이다. 참고로 서천은 마한시대의 비미국(卑彌國), 백제의 설림군(舌林郡:서천)·마산현(馬山縣:한산)·비중현(比衆縣:비인), 통일신라(西林郡·嘉林郡), 고려(知西州使·知韓州使) 등을 거쳐 조선 태종 때 ‘서천군’이 되었다. 그러다 1913년 서천군·한산군·비인군이 합쳐져 현재의 서천군이 된다.
▼ 13 : 02. ‘홍원항’은 서해랑길에서 살짝 비켜나 있었다. 1940년경 중국·일본 어선 4-5척이 갈치·조기 등을 싣고 입항하면서 어항이 형성되었는데, 그 후 꾸준히 늘면서 어항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고 한다. 성어기에는 하루 150여척이 입·출항한다니 어업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고 보면 되겠다.
▼ 물양장에서는 ‘홍원항 자연산 전어·꽃게 축제(8.24-9.8)’가 한창이었다. 참고로 홍원항 근해에서는 전어·농어·꽃게 등이 많이 잡힌다고 했다. 특산물로는 앞바다에서 잡힌 멸치로 담근 ’액젓‘이 꼽힌단다. ’잡어 젓갈‘도 하나쯤 챙겨갈 만하다고 했다.
▼ 언론에서는 맨손 전어잡기 체험과 홍원항 보물찾기, 수산물 깜짝경매, 홍원항 수산물장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몽골텐트도 엄청나게 많이 쳐져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썰렁한 풍경이었다. 비어있는 텐트가 보이는가 하면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 전어회와 전어무침 등을 파는 저 음식코너가 그 썰렁함을 대변한다고 보면 되겠다. 50평도 더 되어 보이는 널찍한 매장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들어간 편의점 주인장은 음식을 식당에서 먹지 왜 광장에서 먹겠느냐며 에둘러 얘기했지만 말이다.
▼ 뜨거운 여름날, 사람들은 에어컨도 없는 노점보다는 초대가수의 열창에 더 이끌렸던 모양이다. 무대 앞 50석쯤 되는 객석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있었다.
▼ 포구는 꽤 번화했다. 펜션이나 민박 등의 숙박업소와 횟집·식당들이 웬만한 도시의 번화가 못지않게 늘어서 있다. 맞다. 주말이면 외지에서 수많은 차량들이 포구로 들어오며, 성수기에는 그 숫자가 5백여 대도 더 넘는다고 했다.
▼ 13 : 16. 축제 구경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잔디광장(주차장이 들어있다)을 왼쪽에 끼고 나있는 ‘요포길’을 따라 북·동진한다.
▼ 13 : 23. 마리나방파제 못미처 삼거리(이정표 : 종점 1.9km/ 시점 9.8km)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 13 : 27. 고개 위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왼쪽으로 간다. 길은 아직도 ‘요포길’이다. ‘파도소리 카페’와 ‘바다내음 캠핑장’ 등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오롯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조망의 명소들이 들어서 있는 구간이다.
▼ ‘꽃범의 꼬리’가 길가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꽃잎이 호랑이가 크게 입을 벌린 것 같은데다, 꽃대가 기다란 범의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호랑이처럼 무섭지는 않고 오히려 화사한 분홍빛이 달콤한 입맞춤을 하고 싶게 만든다. 꽃말은 ‘청춘’, ‘젊은 날의 회상’이다.
▼ 고개를 넘는 도중 서해바다 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그런데 언덕 아래로 길이 나있는가 하면, 바다에는 산책용 다리까지 놓여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아까 서해랑길이 방향을 꺾던 삼거리(마리나방파제 입구)에서 탐방로를 연결시키는 방법은 없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쯤에서라도 바닷가로 내려가도록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고개를 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춘장대 해변’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동리(‘도둔고지’의 동쪽)와 중리(‘도둔고지’의 중앙), 요치 등이 밀집해 제법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참고로 ‘도둔리’는 신라시대 서림군의 비비현에 속하면서 마을이 시작됐다. 하지만 오랑캐들이 잦은 침범으로 고생깨나 했단다. 조선 세종 때는 만호(萬戶) 김성길이 아들 윤(倫)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왜적의 배 50여척과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 이곳에 바다로 쳐들어오는 오랑캐를 무찌르는 관방(官房)을 두었던 이유이다.
▼ 13 : 41. 막바지에 이른 서해랑길은 춘장대 해변을 따라 북진한다. 이 구간을 걷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바닷가로 내려서서 모래사장을 걸을 수도 있고, 우리처럼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도 된다.
▼ 안전지킴이용 전망대가 막혀있는 걸 보면 해수욕 시즌은 이미 마감되었나 보다.
▼ 1.5km나 되는 긴 백사장을 자랑하는 ‘춘장대해수욕장’은 1.5도의 완만한 경사와 얕은 수심, 잔잔한 파도 등 해수욕을 즐기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알려진다.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자연학습장 8선에 꼽히기도 했다. 1978년 서천화력발전소 건설로 동백정해수욕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서면 도둔리 북서쪽 토지를 개발해 새로운 해수욕장을 조성했는데, 그곳이 오늘날 춘장대해수욕장이다. 춘장대란 이름은 이때 토지 문제를 너그럽게 해결해준 땅 주인의 호 ‘춘장(春長)’에서 따왔다고 한다.
▼ 춘장대 해수욕장의 자랑거리는 ‘낙조’라고 했다. 해무가 잦지 않은 여름이면 횃불처럼 타오르는 해넘이를 볼 수 있단다. 거기다 먼 바다에서 야간 조업을 하는 고깃배라도 지나갈라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진다고 한다.
▼ 즐거운 어울림은 오뉴월 삼복더위까지도 날려버리나 보다. 폭염경보까지 내려진 날씨인데도 2인3각 경기 삼매경에 푹 빠져있다.
▼ 13 : 50. 캠핑사이트와 평상(대여를 하는 듯)이 늘어선 해안길을 따르다보면 ‘중앙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네덜란드에서나 볼 법한 초대형 풍차가 두 대나 세워져 있다. 그것도 날개까지 돌린다.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해변에 기념촬영용 ‘문자 조형물’을 설치해 인생샷 한 장쯤 건질 수 있도록 했다.
▼ 13 : 56. 중앙광장에서 마을 쪽으로 한 브럭 더 걷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춘장대길8번길’을 따른다. 이어서 150m쯤 더 걸으면 ‘중앙솔밭·백일 캠핑장’의 주차장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는 서해랑길(보령 59코스) 안내도를 만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은 14.46km를 찍고 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정규코스보다 3km나 더 걸었나 보다.
▼ 하버드대학교에서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인생 궤적을 추적하며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행복하고 건강한 삶의 원천은 바로 좋은 인간관계다. 외로움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로 요약했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행복하다 할 수 있겠다. 하루 24시간도 부족하다며 항시 붙어 다니니 말이다.
▼ 오늘은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사양하고 맛집을 찾았다. 춘장대 해변은 갯벌에서 잡은 조개를 이용한 조개구이와 해물칼국수가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너 한쌈 나 한쌈’에 들어가 메인 메뉴인 쌈밥을 먹었다. 맛집 검색에서 유일하게 5점 만점을 받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은 틀림이 없었다. 맛도 맛이지만 주인장의 친절한 서비스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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