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대승기신론소기회본 3권
마약은 의식을 파괴한다. 삼독은 마음을 파괴한다. 마약은 일평생을 망치게 하지만 삼독은 무량세를 망치게 한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마약을 집중 단속하고 불교에서는 삼독을 강력 단속 한다.
우리는 삼독에 집단적으로 중독되어 미쳐있다. 우리가 정상이라면 어떻게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죽음의 세계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겠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처님이 45년간이나 우리가 비정상이라고 자각시키셨다. 그래도 눈 하나 까딱 않는다. 삼계는 정신병동이고 중생은 정신병자라 해도 범부들의 마음은 시멘트처럼 굳어져 쇠귀에 진짜 경 읽기다.
성공이고 패배고 간에 누가 뭐래도 우리는 이미 실패한 인생이다. 사랑이고 출세고 인생 뭐 다 살아봐야 아는가. 이미 인생의 결과는 비참한 죽음 앞에 고독히 허허하게 서 있다.
잘난 척 하지마라. 닭장에 닭싸움처럼 이기고 지는 것은 의미 없다.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안 좋다면 그 과정은 가치 없다. 죽음에 쳐맞기 전의 달콤한 꿈은 개돼지들도 다 꾼다.
돈보다 건강을 잃으면 큰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내생이 있으니까 괜찮다. 그러나 본심을 잃으면 세세생생 절단난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마음을 잃은 미친게이 들이다.
불교는 우리들에게 본래의 그 마음을 찾도록 한다. 그러려면 현재의 상태를 부정해야 한다. 우리는 절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친 자는 절대로 자기가 미쳤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범부보고 미쳤다 하면 길길이 날뛰고 강력히 저항한다. 복 없는 자일수록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억겁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것이 그것이다. 그것 잘못 건드리면 완전 원수가 된다.
정신을 잃으면 미쳤다 하고 마음을 잃으면 미친게이라 한다. 거기다 본마음을 잃으면 뭐라 해야 하나. 미치광이지 뭔가. 범부는 이 세 가지를 다 잃은 상태다. 그런데도 다들 똑똑하다고 한다.
미쳤다 해서 6식의 정신만 미친 것이 아니다. 그 위쪽 7식도 병들었다. 그 위 8식의 마음에 그 원인이 있었다. 어떤 종교처럼 중간에 타락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미치도록 거기에 원인이 있었다.
정신의학원에서 아무리 정신을 치료해도 그 근원을 치료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이 땅에 반드시 절이 필요하다. 절이 없으면 중생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절에서 하는 모든 불사들과 간경과 참선 진언 등의 신행들은 다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복을 짓게끔 하고 있다. 그것은 내면에 복이 있어야 스스로 인정되는 것이다.
독약 속에 영약이 있듯이 범부의 마음속에 부처가 들어있다. 복은 그것을 발현시킨다. 그것은 불이고 지혜다. 그것을 진여라고 하고 편의상 본래마음 또는 본심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그 본심을 허공으로 표현하셨고 그 속성을 바다로 비유하셨으며 그 기능을 거울로 예를 드셨다. 그에 의해 마명보살은 기신론에서 그 본심을 네 가지 거울로 예시하였다.
첫째는 여실공경이다. 거울은 있는 사실을 완벽하게 비춘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굴곡지고 위차하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세상의 진면목이 명확하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연기에 의해 움직인다. 연기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내 본심에 있다. 그것이 상실되었다. 그래서 평생을 같이 살아도 나는 물론 내 가족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헤어져 죽는 다.
둘째는 인훈습경이다. 거울의 본성은 깨끗하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비치는 사물이 뒤틀린다. 그래서 거울은 항상 명징 그 자체로 있으려 한다. 우리의 본심도 그렇다.
그런데 자꾸 오염물질이 묻는다. 몸이 더러워지면 어떻게든 씻으려는 것처럼 본성은 맑고 깨끗해지려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혼탁할 대로 혼탁해져 이미 그 자정기능이 상실되었다.
셋째는 법출리경이다. 거울은 그 어떤 것도 잡아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새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 우리의 마음도 원래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다. 그래야 전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뭐든지 저장하고자 한다. 모든 정보와 경험, 그리고 느낌까지 접착제처럼 본성에 붙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덧칠하고 탐착한다. 그래서 본성이 깊게 파묻혀 버렸다.
넷째는 연훈습경이다. 거울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의 근본마음도 언제나 세상을 아름 답게 만들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그런데 범부는 온갖 술수를 써 세상부터 가지려 한다.
그들은 세상이 오염된 마음의 투영된 모습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다보니 더러운 손으로 금덩이를 만지듯 죄업에 절은 마음이 계속해서 물심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게 범부의 일평생 삶이다.
우리는 이 네 가지 본심을 잃고 있다. 이래도 안 미쳤는가. 이것을 잃고서 왕후장상이 되면 뭐하고 금은보화를 가지면 뭐 하겠는가. 이미 내 자신에 똥오줌을 못 가리는 치매환자가 아닌가.
寺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관청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다 절 寺자인 줄만 아는데 관청이라는 뜻도 있다. 인간의 후생을 관리하는 곳이 세속의 관청이라면 인간의 마음을 책임지는 곳이 절이다.
절이 그런 관청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덩치 큰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라 해서 자랑 할 것 없다. 문화재는 역사의 유물이고 절은 산 생명이다. 스님들이 문화재지킴이로 살아서는 안 된다.
절에는 monk 가 산다. 수행하지 않으면 수행자흉내를 내고 있는 monkey가 된다. monkey 에서 monk가 나왔다. 그러면 그 수도원은 monastery 가 아니라 몬스트들이 사는 monstery가 된다.
몬스터는 괴물이다. 모나스터리는 수도원이고 몬스트리는 괴물들의 집합소다. 이 둘의 어원은 같다. 하나 더 말해줄까. 아구탕의 아귀는 monkfish다. 뭘 조롱하는지 스님들은 알아야 한다.
절은 伺察이다. 사찰은 자신을 살펴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원이 되면 곤란하다. 사원은 절 건물과 후원의 결합어다. 사찰은 수행자가 사는 곳이고 사원은 종사자가 사는 곳이다.
말은 마구간에서 건초를 씹고 소는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는다. 사원에 사는 종사자는 공양간에서 식사를 하고 사찰에 사는 스님은 정재소에서 공양을 한다.
공양이라는 말은 오로지 깨달음을 위해 육신을 살린다는 뜻이다. 즉 똥 만들려고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일을 해내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관청이 위엄을 잃고 가무장소가 되면 그 관청은 맛이 간 관청이다. 사찰이 중생들의 문화공간이 되고 그들의 병든 마음을 충전시키는 힐링장소가 되면 그 사찰은 벌써 맛이 간 사찰이다.
마약하는 자를 도우면 안 된다. 삼독에 빠져있는 중생을 도우면 공범이다. 그래서 절에서는 중생의 삶을 돕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축원하고 있다면 중생의 삶을 부추기는 조력자가 된다.
신도들의 급감 때문에 그들의 구미를 쫓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절은 절이 아니다. 그런 마케팅 식의 불교는 순수 불교를 죽인다. 그와 동시에 불쌍한 그들을 미혹 속으로 더 깊이 밀어 넣는다.
그래서 스님은 딱 하나를 외친다. 우리들은 미쳤다. 인정하라. 그래야 근본마음을 찾는다. 그게 불교다. 그러니 그 본심을 찾는 상가에 합류하라.
이게 절의 기능이고 스님이 할 일이다. 이 슬로건 하나로 중생계에 승부를 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불교가 살고 중생이 사는 길은 이 외침의 소리 딱 하나밖에 없다. 명심하라. 이것을!
출처 : 대승기신론해동소 전문도량 원효센터 5부 공파스님 법문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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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쳤나? 대승기신론 전문가는 우리보고 미쳤다 한다. 그것을 인정해야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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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길거리 미친사람.
더럽게 보임. 분별식인 6식을 잃음. 골목길 방황.
정신병원 미친사람.
깨끗하게 보임. 잠재의식인 7식을 잃음. 병원 내 방황.
일반사회 미친사람.
멀쩡하게 보임. 8식인 마음을 잃음. 삼계육도 방황.
형색이 다르고 머무는 장소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움직임이 다르고 입은 옷이 다르지만
모두다 미친 상태!
미친 농도가 조금 다를 뿐. 본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는 공통분모는 똑 같음.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마굿간 외양간 칙간 잿간 대장간 공양간 보다
파출소 등기소 안내소 종무소 정재소가 한 급수 높은 장소네요.
절의 종사자는 공양간에서 식사를 하고
절의 수행자는 정재소에서 공양을 한다.
완전 대박!
무더운 여름 서릿발같은 자비가 사무치는 법문에 소름이 돋습니다.
솔직히 이미 일상적 욕구와 충동은 심각하게 오염되어 너는 미쳤다는 진단에 기꺼이 신성하게 예스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내맘 속에 수많은 공덕이 들어있다한들 그 성공덕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없는 범부.
텅비어 충만해야 할 곳에 가득한 죄업들로 삼독에 취해 헉헉거리다가 결국은 모진 고통 속에 죽어야 하는 시한부의 삶.
성정본각을 지닌 자가 죄업에 의해 사육되다가 허망하게 고통 속에 죽어야한다니 미쳐도 불가사의 하게 미쳐버렸군요.
중생을 부처로 만드는 monk의 사무치는 외침.
잊지않겠습니다!
만강의 감사를 올립니다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즉~똥만들려고~밥을 먹는다는 것이다~ㅎ
기막힌 표현 임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