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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14 장 : 마지막 날(8)
회 복(14: 16-21)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4: 16. 남은 자 -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
주님께서 재림하신 뒤에 만국은 주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1]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열국) 중에 남은 자가
열국 중에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그를 경배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구원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드릴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 전 12: 13 -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2]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또 남은 자들, 곧 구원받은 자들은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표현된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서 40년 간 했던 광야의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그것은 추수의 절기 즉 가을에 곡식과 열매와 기름과 포도주를 창고에 저장한 후 감사와 기쁨으로 지키는 절기인 동시에,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또 그것은 인생이 광야 같은 세상의 삶을 끝마치고 천국에 들어감을 상징한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 받은 것을 감사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만국의 민족들이 이와 같은 것을 지키는 목적은 저들도 세상에 살던 동안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신(특별히 영혼이 망하지 않게 해 주신) 은혜를 회고하며 감사하려는 것이다.
여기 초막절이라는 것은 반드시 옛날 유대인이 지킨 절기와 같은 시기라고 할 것은 없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행위를 중점으로 말하는 것이다. 칼뱅(Calvin)은 만국이 개종된 사회는 재림 이후의 영광 세계를 이름이 아니고 신약 시대의 교회를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
장막절(초막절, 수장절)은 유월절, 칠칠절(오순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역사적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이며
* 출 34: 22 -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이스라엘이 큰 기쁨을 갖고 지키던 세 절기 가운데 하나로, 농사력이 끝나는 가을에 지켰으며, 40년간의 광야에서의 유랑생활을 상기하면서 계약을 갱신하는 절기는 초막절이다. 보통 장막절로 알려져 있다(참조 대하 8: 13).
초막절의 다른 이름으로 성서에서 나오는 것들로는 「수장절」(출 23: 16), 「여호와의 절기」(레 23: 39, 삿 21: 19), 「절기」(왕상 8: 2, 65, 대하 7: 8, 느 8: 14, 사 30: 29, 겔 45: 23,25) 등이 있다.
신 16: 16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스스로를 「여호와께 보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초막절이 본래의 순례절기였던 것 같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매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실로로 여행을 하였다(삼상 1: 3, 21). 그가 순례를 한 때는 아마도 「매년」실로에서 벌어진 「여호와의 절기」때였을 것이다(삿 21: 19).
이 절기는 포도원 무도회가 특색으로(삿 21: 16 이하), 본 절기가 가나안 인들의 농경의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절기는 초막절의 초기 형태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이스라엘의 절기였다.
초막은 후에 이스라엘이 그 유랑생활을 기억하기 위해 사용하였으나, 본래는 농경생활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올리브 과수원 주인들은 수확의 달(9월)이 되면, 밤마다 가지와 덩굴로 만든 오두막에 서서 올리브 밭을 감시했다.
초막절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교에서 지극히 인기 있는 절기가 되었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기회로 이용되었다. 순례자들은 바빌로니아나 그 밖의 먼 지역에서,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위해 모은 봉헌물들을 가지고 왔다. 노상강도들이 순례자들을 약탈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는 문제가 때때로 언급되기도 한다.
초막절은 일곱 번째 달(티쉬리)의 열다섯 번째 날에 시작되었다. 이달의 첫 번째 날은 특별히 거룩한 날(레 23: 23-25)이었으며 열 번째 날은 속죄일이었다. 이 세 가지 행사들은 본래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 세분화된 듯하다. 일곱 번째 달의 첫째 날이 거룩한 날이었다는 점은 아마도 예전에 이스라엘의 새해가 가을에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일 것이다. 그러나 본래 초막절은 1년의 마지막에 지켜졌다(출 23:16, 34:22).
초막절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몇 가지 의무가 주어졌다. 그들은 7일 동안 먹고 자는 초막을 스스로 준비해야 하였다. 더욱이 모든 순례자는 예루살렘의 주위에서 도금 양, 버드나무, 종려나무 등의 잔가지들을 모아야만 하였다.
본래 가지들은 천막을 세우기 위해 사용하였다(느 8: 13-18). 후에 그 가지들 중의 일부는 함께 묶어, 룰라브(lulab)라고 불리는 일종의 축제 장식물로도 사용하였다. 헌수 의식은 절기 동안에 매일 아침마다 가장 먼저 드리는 공통의식이었다. 초막절의 첫날 아침, 제사장의 행렬은 실로암 못에 가서 일주일 동안 사용하기에 충분할 물을 그릇에 채웠다.
둘째로 중요한 공통의식은 밤에 거행되었다. 이 의식은 축제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제사장들의 낡은 의복으로 만든 심지가 끼워진 4개의 커다란 「일곱 가지의 촛대」가 성전의 전 지역을 밝게 비추었다.
그 촛불 밑에서, 의식에 참석한 자들은 피리에 맞추어서 횃불 춤을 추었고, 레위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시 120-134편)을 불렀는데 「이스라엘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걸어 내려가면서 열다섯 계단의 한 계단에서 마다 노래 하나씩을 불렀다.
사 30: 29에서 언급된 밤의 「거룩한 절기」는 바로 이 의식일 것이다. 이 의식은 7일 동안 매일 밤마다 거의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매일 새벽에는 제사장들이 장엄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닭이 울 때 그들은 성전의 동쪽 문으로 가서, 해가 뜨는 순간 서쪽을 향해 서서 성전을 마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암송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곳에 있을 때 얼굴을 동쪽으로 돌려 동쪽 태양에 경배하였으나 우리의 눈은 주께로 향했다. "(겔 8: 16)
이러한 세 가지 공통 의식을 7일간의 축제기간 동안에 매일 행했다. 할렐 시편은 여덟째 날에 개최되었던 장엄한 의식에서도 불려졌다. 아홉째 날은 심하트 토라라고 불리는데, 절기의 초첨이 자연에서 율법으로 옮겨짐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율법 낭독기간이 이때 시작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며, 아마도 초막절과 신년축제와의 관계와도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초막절은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밭에서부터 거두어 드릴 때", 즉 추수기와 연관 지어져 있다. 출애굽기에는 초막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으며, 초막의 기념적 역할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초막절의 기간이나 규례도 밝혀져 있지 않다.
순례시의 요건을 언급한 구절로 간주되는 출 23: 17은 14-16절에 나중에 첨가된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이다. 삼상 1: 21을 고려해 볼 때 계약법전에서 수장절은 초기 이스라엘의 유일한 순례절기이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렸던 실로에서의 의식은 삿 21: 19 이하에 언급되어 있는 실로에서의 「여호와의 절기」와 동일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수장절은 어느 정도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환회의 의식이었던 것 같다.
수장절은 제사를 드리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였고(민 29 장에서 초막절에 드린 제물의 양은 어떤 다른 절기보다도 많다), 이러한 사실은 이 절기에는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삼상 1: 3-9).
또한 한나가 술에 취했을 것이라고 엘리가 짐작을 하는 것(삼상 1: 14)은 이 축제의 성격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으며, 명백히 유혹을 목적으로 한 포도원에서의 처녀들의 춤은 포도 수확기에 먹고 마시고 놀던 가나안 사람들의 전통적 경향을 강하게 암시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는 「여호와의 절기」였으며 출 23: 16에서의 규정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가던 과정의 초기단계에서 생겨난 것이다.
신 16: 13-15에서 수장절은(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거행되어야 함) 초막절로 되어 있다. 하지만 초막의 의미나 기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초막절은 7일 동안 계속되었고,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이 신명기에서는 「너의 절기」를 즐기는 데 있어서의 특별한 훈계(14절)가 "하나님이 농사를 축복하사 온전히 즐거워하게 되리라 "는 말과 함께 나온다.
영적의미로는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 곧 오는 세상인 천년왕국을 의미한다.
14: 17. 예루살렘 -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 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
1] 땅에 있는 족속들(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하나님께서는 천하만국을 다스리신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 시 24: 1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천하 만민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올 것이다.
2] 경배(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자에게는)
"예루살렘에 올라감"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참된 신앙 행위를 구약적 표현으로 말함이다.
3]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예배하러 올라오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비를 내리지 아니함"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된 자연계의 재앙이다. 이런 재앙 아래서는 생명이 근절될 것이다.
비는 하나님의 복주심의 표이다. 비가 내려야 사람들이 살고 풍성한 복을 누린다. 열방의 허무한 우상들 중에 하늘에서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천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만 비를 내려주실 수 있다.
14: 18. 열국 사람 -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
1]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창일함이"라고 쓴 소자의 어귀는 히브리 원문에 없고, 그저 "(그들에게) 있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
이는 곧 "비가 있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번역자들이 "창일함이" 라는 말을 가지고 번역한 것은 애굽에서는 농사를 비에 의지하지 않고 나일 강의 창일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굽에도 비가 전연 내리지 않으면 못산다.
이 절들이 여호와의 세계적 왕권을 말하는 것은, 그 때 선지자 시대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여호와 경외를 강화하게 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으므로, 여호와 종교의 절대성을 아직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선지자가 장차 만국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말할 때에, 그들(유대인들)은 더욱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힘 있게 가지게 될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스가라 선지자의 이 예언은 장차 도래할 메시야 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14: 19. 받을 벌 -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
1]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열국) 사람이나
애굽 사람은 구약적 개념이라면, 이방나라 사람은 신약적 개념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전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제시하신 하나님의 섭리대로 마지막 심판에서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2]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자의) 받을 벌이 그러(이러)하니라.
동물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리고 각종 절기를 지키는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예배가 아니라, 온 땅의 믿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 요 4; 21-24 -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러한 예배를 드리러 오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에게 내려지는 최후 심판의 벌을 의미한다.
초막절은 단지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데 대한 신앙 고백의 절기였다.
따라서 이 같은 새로운 메시야의 복음 시대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재앙만이 기다릴 뿐이다.
14: 20. 여호와 전의 솥 -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
1]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코데쉬 라호와)은 여호와 앞에서 거룩해졌고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되고 바쳐졌다는 뜻이라고 본다.
‘말방울에까지’라는 말은 짐승들까지도 하나님께 구별되고 바쳐질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 후에는 만물이 모두 다 거룩하게 되어, 성별 제도가 전연 없을 것을 가리킨다.
* 계 21: 22 -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속된 것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말방울"과 "하나님 전에 모든 솥"도 다 거룩할 것이다. 하나님 전에 모든 솥은 제단 앞 주발만큼 거룩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 이후에는 그 구분이 폐지된다.
"말방울"이나 "솥"이나 "제단 앞 주발"은 구약적 표현이니, 선지자는 구약 시대에 살았으니 만큼 말할 때에 이런 표현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표현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 이후 세계는 만물이 거룩할 터이니 성별 제도가 전연 없으리라는 뜻이다.
14: 21. 모든 솥 -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또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들이 제단 앞 주발들과 다름이 없을 것이며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이므로 제사 드리는 자는 와서 이 솥들을 취해 그 가운데 고기를 삶을 것이다.
이 말씀은 일상생활의 모든 도구들까지도 하나님께 구별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그들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사용할 것이다.
* 롬 12: 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취하여) 그것으로(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고기를 삶"는다 함은 제사의 소용으로 고기를 삶음이다.
이것은 전에는 속되다고 하던 것이 이때에 와서는 거룩하게 되리라는 뜻이다.
이것도 구약식 표현이니 우리는 그 표현의 형식에 착안하지 말고 그 내용을 취하여야 한다. 그 내용은 주님의 재림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다 거룩하다는 것이다.
3]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여기 이른바 "가나안 사람"이라는 말은 죄와 저주 아래 있는 자를 가리킨다.
* 창 9: 25 -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 레 18: 24 -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 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 신 7: 2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 신 9: 4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이는 혈통적으로 가나안 사람을 이름이 아니고, 마음으로 가나안 사람을 의미한다. 즉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그런 자들은 장차 세워질 의롭고 성결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엄격하게 배제될 것이다.
* 눅 13: 28 -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주님의 재림으로 세워지는 세계에는 그런 사람은 전연 없다는 것이다.
* 계 21: 27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위의 모든 말씀은 천국이 영광으로 완성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믿음이 있는 모든 주석가들은 일치하게 이렇게 주장한다(Keil and Delitzsch, Thus dces our prophecy close with a prospect of the completion of the kingdom of God in glory. All believing Clmmentators are agreed that the final fulfilment of vers. 20 and 21 lies before us in Rev. 21:27 and 22:15).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와 선을 행하는 자들만 살 것이다.
이스라엘 회복의 예언들은 신약교회 시대와 장차 주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국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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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