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라는 점부터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 등 감독의 전작처럼 <마스터>도 선악의 경계를 지우고 인간의 조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물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지녔으며 주제는 심오하나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단, 취향이 맞는다면 예측불허의 항로를 개척하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프레디 퀠(와킨 피닉스)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지만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백화점 사진사로 취업한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 것처럼 보이던 프레디는 얼마 가지 않아 공격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알코올 중독인 그는 만취해서 떠돌다 우연히 호화 유람선에 탑승하게 되고 거기서 운명적인 ‘마스터’를 만난다. 추종자들에게 마스터로 불리는 랭카스터 도드 박사(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는 최면, 인터뷰, 인지행동 치료 등을 이용한 ‘코즈 요법’을 창안한 심리학자다.
프레디와 마스터는 처음부터 서로 호감을 갖는다. 프레디는 박사가 지표 없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줄 인물이라는 걸 직감하고, 마스터는 길들여지지 않은 프레디가 누구보다 편한 친구이자 심복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한다. 마스터는 자신의 연구를 위한 중요한 실험 대상자로 프레디를 참여시키고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측근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나 마스터의 보호와 신뢰 덕에 프레디는 코즈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성장한다. 박식하고 유머러스한 겉모습 뒤에 독선적이고 나약한 이면을 지닌 마스터를 순수하게 감싸는 사람은 프레디뿐이다.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전도하고 다니지만 트라우마에 갇힌 마스터와 텅 빈 주체처럼 보이지만 주인 없는 삶을 사는 한 남자의 전도된 관계를 얽히고설킨 긴 여정을 통해 풀어낸다. 카리스마 넘치는 마스터의 설교를 듣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글 이현경(영화평론가) 2013-07-10
'마스터'는 불안과 혼란의 시대 속에서 ‘마스터’라는 절대적 존재에 대해 목마름을 느끼는 인간, 그리고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확신과 신념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제작 노트
ABOUT MOVIE 1
지치고 힘들 때 누구나 마스터를 필요로 한다!
인간, 그 불안과 확신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
영화 <마스터>는 나약한 심성을 가진 인간이 절대자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은 전쟁이 가져다 준 혼란과 그 틈새 속에서 다양한 변화의 움직임들이 역동적이었고,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대혼란을 겪은 사람들은 다양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필요로 했다. 영화 <마스터>는 이러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서 시작되고 있다.
주인공 프레디는 사랑하는 도리스를 끝까지 지키지 못할 것이 두려워 도망치듯 전쟁터로 떠난 후, 다시 그녀를 찾아가는 것이 두렵다. 사랑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에 전쟁이 끝나고 더욱 황량해진 마음의 공허를 채우지 못한 채, 무너져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그에게 신흥종교집단 같은 코즈의 마스터라 불리는 랭케스터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였다. 프레디는 스스로 “작가이자 의사이고 핵물리학자이자 이론 철학자라네. 그 이전에 자네와 같은 한 인간이네”라고 명확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랭케스터를,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에 차 있는 그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프레디는 마스터와 함께 있으면 뭔가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최소한 지금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마스터의 곁에 머물수록 확신의 세계는 점점 더 애매해지고, 프레디는 다른 형태의 혼란스러움과 마스터 역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또한 마스터가 내면의 상처까지는 꺼낼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프레디 자신의 것임을 깨닫는다.
프레디는 마스터의 곁을 떠나 자신의 오랜 불안이자 트라우마였던 사랑하는 여인 도리스를 만나러 가는 용기를 내고, 자신으로부터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 모두와 마주하는 프레디로 다시 선다. <마스터>는 불안과 혼란의 시대 속에서 ‘마스터’라는 절대적 존재에 대해 목마름을 느끼는 인간, 그리고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확신과 신념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랑이라는 원형에 대해 끝없이 결핍과 불안을 느끼는 도망치다가도 돌아오고 다시 도망치는 인간 심연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ABOUT MOVIE 2
마스터가 될 것인가, 마스터를 따를 것인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없는 선택!
독과 약의 경계에 선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시작된다!
종전을 알리는 라디오가 흘러나오던 좁은 하수관, 두 번째 인생을 살아보려던 어두운 암실, 또다시 도망쳐야 했던 농장, 그리고 인생을 뒤바꿀 만남의 직전에도 프레디는 항상 순수한 알코올이 아닌 위험한 액체들로 그만의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죽음의 위기를 겪게 할 정도로 치명적인 독이며 또 누군가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의 명주(名酒)가 된다. 독(纛)과 약(藥)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그 음료는 주인공 프레디 그 자체이다. 알코올 중독과 폭력적인 언행의 미친 남자와 어린 소녀와의 아름다운 노래에 안식을 찾던 사랑스러운 얼굴의 한 청년, 이 둘은 한 사람 프레디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족과의 균열과 전쟁의 트라우마로 내면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프레디는 위선적인 사람은 아니다. 황폐해진 프레디 만이 역시 다른 형태의 공허를 느끼고 있는 랭케스터의 본질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랭케스터는 프레디가 제조한 음료의 진가를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이기도 하다. 같은 독을 마실 수 있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랭케스터와 프레디는 결국 서로의 과거이며 현재, 미래와도 같다. 그래서 “널 아끼는 건 나 뿐이야!”라고 외치는 랭케스터에게 프레디는 다시 한번 마스터 곁에 머무른다. 관계의 시작은 필요에 의한 것이었을지언정,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그들은 서로의 약점을 메우고 소통한다.
랭케스터는 “그 어떤 마스터도 따르지 않고 사는 방법을 발견했다면 알려주겠나”라고 말한다. 혼란의 중심에 스스로 발을 디딜 용기를 낸 자만이 자기 인생의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프레디는 자기 삶의 마스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인가? 랭케스터를 떠난 프레디의 삶은 다시 시작된다. “마스터가 될 것인가, 마스터를 따를 것인가”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