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바코 로드 (Tobacco Road)
1941년 미국영화
감독 : 존 포드
출연 : 찰리 그레이프윈, 마조리 램뷰, 윌리암 트레이시
진 티어니, 워드 본드, 다나 앤드류스
러셀 심슨
존 포드 감독은 1940년대 초에 마치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를 연상시키는, 가난한 사람들의 궁상맞은 이야기를 몇 편 만들었는데 그의 이력중 대표 걸작에 속하는 '분노의 포도'와 '나의 계곡을 푸르렀다'가 이시기에 등장했습니다. 1941년 또 한 편의 가난한 빈민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토바토 로드' 입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40-50년대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도 결국 존 포드 감독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을 것 같이 느껴집니다. 궁상맞은 빈민 이야기의 원조가 오히려 미국의 존 포드 감독이 되는 셈이네요.
'분노의 포도'가 무겁고 진지하게 주제를 다룬 영화라면 '토바코 로드'는 가볍고 코믹스러운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대책없이 막막한 상황의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지만 우울하거나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19세기 면화와 담배 농장으로 번성했던 조지아주 사바나 강가의 일명 토바코 로드라는 지역, 20세기 들어와서 농장이 침체되고 공업 국가가 되는 영향으로 사람들은 공장지대로 떠나고 토바코 로드 일대는 폐허같은 황폐한 지역이 됩니다. 끼니 조차 걱정해야 할 처지의 가난한 가족 레스터 일가. 명목상 가장인 지터는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게으른 농부입니다. 20세기에 때맞지 않게 나무를 베어 팔러 다니니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고, 농사는 제대로 지을줄도 모르고. 자녀들은 일부는 죽고, 일부는 결혼해서 떠나고, 남은 자녀는 망나니 같은 20살된 아들 듀드와 혼기를 놓친 딸 엘리 메이(진 티어니)만 남았습니다. 이 손가락 빨고 사는 가족에게 업친데 덥친 격으로 은행에서 1년치 임대료 100달러를 내지 못하면 땅을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원래의 땅 주인이 죽고 팀(다나 앤드류스)이라는 아들이 물려받았지만 황폐한 농지는 이미 은행의 담보로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망나니 같은 아들 듀드는 남편과 사별하고 종교에 미친 베시 라는 중년 여인 베시의 꼬임에 넘어가서 베시와 결혼하여 함께 선교활동을 벌이려고 합니다. 베시는 남편의 보험금으로 탄 돈 800달러를 털어 선교활동에 필요한 자동차를 사는데 듀드는 그 차를 미친듯이 몰아서 하루만에 낡은 차로 전락시킵니다. 과연 이 대책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20세기 산업화 사회로 변하는 과정에서의 빈민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걸작 '분노의 포도'와는 달리 이 작품은 그냥 가벼운 코미디 수준입니다. 존 포드 감독이 이런 쉬어가는 영화도 다 만들었구나 라고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지터라는 노인이 주인공인데 그는 목소리를 높이고 쉬지 않고 떠듭니다. 1941년 영화이긴 하지만 지독스럽게 연극적 과잉연기를 하고 있지요. 그의 자녀인 엘리 메이와 듀드는 정말 대책없는 젊은이들이죠. 게으르고 무능한 아버지를 닮았는지 엘리 메이는 제대로 씻지도 않고 마치 야성의 소녀처럼 빈둥거리며 지내고, 듀드는 그냥 대책없고 철없는 광기의 젊은이입니다. 이런 남편과 아들딸을 두었으니 지터의 아내인 에이다의 고생길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지요. 더구나 이웃인 베시는 더더욱 무대책입니다. 남편의 보험금을 홀랑 털어서 불쑥 자동차를 사버리고, 그나마도 그 차를 듀드가 마구 몰아서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외형은 가난한 서민들의 정겨운(?) 삶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그냥 정신 나간 미친 게으름뱅이들의 대책없는 삶을 무작위로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당장 끼니가 걱정이라서 사위가 갖고 있는 무우까지 강제로 빼앗아서 걸신들린 듯 먹어치우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와 아들, 딸들은 아무런 삶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남들은 일을 하러 공장으로 떠나는데 공장에서는 일을 못하겠다고 그냥 황폐한 그곳에 머물러 있고.
지금 현재 시대는 더욱 훌쩍 지나서 21세기가 되었지만 이런 모습을 요즘도 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지 육신이 멀쩡하면서 일자리 없다는 타령이나 하면서 경제파탄 핑계나 대고 일을 안하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 물론 일자리가 없기는 합니다. '좋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중소기업에서는 여전히 젊은 사람들이 지원을 하지 않아서 나이든 사람을 채용하거나 외국인 채용으로 연명하고 있고, 크고 좋은 회사는 수백대 일의 경쟁률이 벌어지고. 자신의 무능은 생각지 않고 오로지 편하고 좋은 일자리만 찾는 사람들.... 세상은 과거에 비해서 정말 비약적으로 좋아지지만 여전히 1941년 영화속의 지터나 듀드 같은 사람믈이 즐비하게 존재하지요. 즉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들은 아무리 세상이 좋아지고 복지가 좋아져도 늘 경제탓, 남탓, 세상탓만 하면서 불만스럽게 살아갑니다.
존 포드 감독은 과연 이 '타바코 로드'라는 영화를 통해서 뭘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요? 절망 가운데서 나름 한줄기 희망을 보여주며 끝을 맺기는 하지만 지터는 과연 정신차리고 아내를 돌보며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지만 어느 곳이든 휘황찬란한 모습 뒤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농업시대에서 석유산업 등 공업화가 되면서 벌어진 농촌 사회의 몰락과 어려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벌어진 수많은 도시 빈민과 실업,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벌어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국가가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입니다. 능력우선주의.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무능하거나 게으른 사람은 일자리를 잃고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화속 지터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에서 변화되는 시대를 대비하지 못하고 철지난 땔나무나 팔려고 다니고 공장일은 커녕 농사일도 제대로 못하고, 임대료를 내고 살아야 할 형편에 오히려 땅주인에게 농사지을 자본을 달라고 하는 상황이니....마치 20세기형 돈키호테를 보는 느낌입니다.
'분노의 포도'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가난하고 힘든 과정에서도 꿋꿋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겨움을 다룬 인간적 영화였다면 '토바코 로드'는 가난한 상황이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는 황당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행동이나 마음가짐은 상반되지만 상황은 비슷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40년대 초반에 몇 편의 영화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1936년작 '모던 타임즈'가 공업화 시대에 적응못하는 도시 서민을 다루고 있다면 '토바코 로드'는 공업화 시대에 쓸모없어진 황폐한 농장에서 빈둥거리는 대책없는 사람들을 다루며 극도의 궁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황당한 장면들이 많지요. 아버지를 막 대하는 망나니 아들, 20살이나 연하인 그런 망나니와 결혼하고 비싼 차를 덜컥 맡기는 중년여인, 찬송가를 부르면 감동하여 모여드는 사람들, 사위가 잧아와서 아내가 도망갔다고 하자 딸 걱정을 하기는 커녕 다른 딸을 데려가라는 황당한 장인...... 시대도 다르고 나라, 문화도 다른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존 포드 감독의 영화중에서 흥행이나 비평에서 평범한 평가를 받았던 작품인데 진 티어니나 다나 앤드류스 같은 나름 유명해지는 배우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두 배우 모두 단역에 가까운 조연인데 진 티어니는 대사도 몇마디 없고, 그냥 야성의 처녀 같은 모습만 몇 번 보여줄 뿐이고 다나 앤드류스는 농장을 물려받는 깔끔한 젊은 신사로 등장하면서 출연 분량은 적지만 나름 의미있는 역할을 합니다. 당시 21세였던 진 티어니는 훗날 '로라 살인사건'과 '애수의 호수'라는 범죄영화 수작을 남기며 40년대 인기 여배우로 활약하고 다나 앤드류스는 다부진 성격배우로 활약하면서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로라 살인사건' 등 여러 영화에서 오래 활약합니다. 두 배우는 '로라 살인사건'과 '골목이 끝나는 곳' 등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함께 활약하기도 합니다.
'흔들리는 대지' '자전거 도둑' '밀라노의 기적' '움베르토 D' '지붕' 등 궁상스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걸작들이 있지만 그보다 먼저 존 포드의 영화들과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을 통해서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다룬 미국 영화들이 먼저 등장했었습니다. '토바코 로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 포드의 영화이며 그런 궁상스런 소재를 다룬 영화로 작품의 완성도 유무를 떠나서 그 시대 존 포드 영화의 한 편이라는 의미로 찾아 본 작품입니다.
ps1 : 존 웨인, 헨리 폰다, 모린 오하라, 빅터 맥라글렌 등 존 포드 패밀리라 할 수 있는 간판 배우들은 등장하지 않지만 존 포드 영화의 단골 조연배우 워드 본드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위로 출연합니다.
ps2 :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사는 곳에서 쫓겨나는 것은 더욱 두려운 것, 확실히 인간의 삶에서 '집'이 가져다주는 비중은 정말 큽니다. 집없는 설움이 그래서 무척 큰 설움이지요. 집값이 너무 치솟다 보니 정말 우리나라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이 내집 문제가 되어 버렸네요.
ps3 : 실업문제, 일자리 문제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훨씬 깊어진 문제가 되었습니다. 60세에 퇴직한다고 해도 30년 이상은 더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ps4 : 이 영화 포스터들은 온통 관능적인 진 티어니의 모습을 대표 이미지로 다루고 있습니다. 거의 출연비중도 없는데... 그럼 차라리 제대로 역할을 주던지요.
[출처] 토바코 로드(Tobacco Road 41년) 게으른 가난뱅이 이야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