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요한 위생교육을 받는 날
세시간 이수하러 잠결에 끼니도 거른 채 아모르로 달렸다.
평일이니 차를 끌고 오지 마시오라고 써 있던 글귀가 자꾸 떠오르지만
늦은 출발은 그런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아마도 차가 있으니 빨리 출발할 생각을 안 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자가용에 익숙해져 버린 나
언젠가는 버스를 탈 때 버스비가 얼만지 물어보며 타게 될 것이다.
옛날엔 그런 사람 보면 괜히 심사가 뒤틀렸었는데...ㅋㅋㅋ
어쨌든 위생교육이 좀 일찍 끝나 괜시리 기분이 좋은 참에
아모르 바로 뒤가 친정 집이라 삐딱 구두를 신고 밭을 가로 질러 들러 보기로 했다.
워낙 입구는 동네 한바퀴를 뺑 돌아 몇분은 걸려서 가야하지만
뒷길이나 샛길이나 개구멍이 왜 있겠는가??ㅋㅋㅋ
이럴 때 다니라고 있는 것이지. 훗~~~
울 엄마 힘들게 육남매 키워내신 곳
하지만 지금은 폐가다.
나의 순수함들이 힘들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그 때를 떠올려 본다.
다락방에서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쓴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를 끄적 거려 일기를 완성했고 난 다음날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었다.
일기에 시라는 걸 처음 시도한 내가 대견스러우셨었나보다.
그 칭찬이 감수성 예민하던 나를 문학 소녀로 만들었었다.
그리고 우린 짜짱면을 시켜 먹을 때면 대영창고 뒷집이요하고 시켜먹었었다.
아니면 배달하시는 분이 우리집은 찾을 수가 없기에...
그렇게 큰 창고가 앞에 떡 버티고 있는게 싫었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우리 집이 있었던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추억이 많이 깃든 집
엄마는 30년을 살았던 그 집에서 작년에 이사를 하셨다.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고 일 다니시면서 틈틈히 밭을 일구시고 계신다.
부지런한 울 엄마
몇년 전 그 텃밭에 앉아 엄마와 단둘이 네집 김장을 담근적이 있었다.
어찌하다 옛날 얘기가 시작 되었고 서러움이 많았던 나는 풀어놓지 못했던 그 얘기들을 김장 양념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당황하신 엄마도 울고 서러운 나도 울고 ...
양념 잔뜩 뭍은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우리 둘은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배추에 속을 채워 넣었었다.
아마도 그 해 김장김치는 쫌 짜지 않았을까???ㅋㅋㅋ
엄마는 맘이 아프셨겠지만 난 속이 후련했었다.
감자도 고추도 오이도 호박도 다 잘자라고 있는데
가뭄이 싫은 파들은 아무래도 살기 싫은 듯 하다.
수도가 끊겼으니 물을 줄 수도 없고...
지금은 텃밭이 되어 우리에게 맛있는 것들을 제공해 주는 이곳에 옛날에는 외양간이 있었다.
엄마는 힘들게 고등어 행상도 하시고 일명 노가다도 하시면서 소까지 키우셨었다.
나이상으로 만만한게 나였다.
언니는 돈벌러 서울 가 있었고 오빠는 장남이라 공부를 해야 했고 동생들은 어렸으니
난 자연스레 집안일을 하는 애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려운 형편에 힘든 엄마 돕는 건 당연한 건데 한참 사춘기 들던 그 나이에는 왜 그렇게도 싫었는지??
그래도 육학년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효행상도 주셨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였는데 남들 눈엔 내가 잘 하는 걸로 보였었나보다.ㅎㅎㅎ
괜히 샘이 났던 오빠가 찢어버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장이지만 내게는 어릴 적 값진 추억의 한 페이지다.
한번은 엄청난 벼락으로 마당에 있던 대추나무가 지붕위로 쓰러졌고 놀란 소는 집안으로 뛰어들어 기겁을 한적도 있었다.
한날은 서울서 일다니던 언니가 커피라고 처음 가져와 우리에게 먹이고 퉤퉤 뱉은 일도 있었고
난 빨래가 너무 많아 화김에 학교를 결석한 적도 있었다.
그 날 한참 손빨래를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날 데리러 왔었다.
하필이면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이놈의 황소 고집이 그때라고 없었겠나
결국은 친구들이 포기하고 돌아가서 난 졸업앨범 단체사진에 얼굴이 없다.ㅋㅋ
못이기는 척 따라갔어야 하는건데...
마당이 온통 잡초 투성이다.
너른 마당에서 깨진 항아리 뒤집어 놓고 삼겹살에 오리고기도 구워 먹었었는데...
이젠 그럴수가 없다.
아쉽다.~~~~~~~~~~~~~~~~
하지만 난 엄마의 부지런함 덕분에 오이와 호박과 고추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렸다.
지난 번 개울 갈 때도 따갔던 오이는 아무래도 뒷간 옆에서 자라서 더 맛있나 보다. 풉~~~
혼자 다 낼름 먹을 순 없어서 오이 몇개와 전날 강릉 갔다 가져온 싱싱한 문어 반마리 들고 엄마집에 들렀다.
아직도 밭일을 다니시는 엄마는 당근 안 계셨다.
하지만 하루종일 굶은 나는 엄마보다 밥솥에 밥이~~~ㅎㅎㅎ
저녁 다섯시가 다 되어 울 엄마의 맛있는 된장국에 밥말아 첫술을 떴다.
꿀맛이당~~뜨거 뜨거 호호 불며 후딱 먹어 치웠다.
혼자 훔쳐먹는 밥에 수박도 크게 한덩이 뚝 썰어 숟가락으로 푹푹 퍼 먹었다.
요건 서비스 샸
친구가 찍었다며 보내줬다.
요 제비들도 자기 집에서 추억 많이 만들고 있겠지??ㅎㅎㅎ
내 어릴적 깐돌이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기도 힘들었던 그때
추억이니 그리운게다.ㅎㅎㅎ
끝.
첫댓글 지나면 모두가 그리운걸~~
그때는 왜 그게 그렇게 싫고 서러웠는지....
아침부터 에이~~ ㅎㅎ
특히 중간이라 더 치였던 것 같아요
그리 서러울 것 아닌데도...ㅎ
오늘도 행복하세요^^
대영창고 뒷집...몇개만 가져다 먹을께요.
그시절 모두가 어려웠던 생각들이 아련하게 생각납니다.
그래도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 잘 계시는겁니다.
질문: 깐돌이 아이스크림이 뭐예요?
우리 어릴적에 50원에 사먹던 맛있는 깐돌이를 아시나요니은 모르시네?? 얼마나 맛있었는데..ㅋ
에이 뻥치시네.. 5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어디 있어요??
이크님 연배가??ㅎㅎ
저 국민학교 다닐때는 깐돌이 50원이었는데..ㅋㅋ
아이스크림이라기 보다 색소물 얼린것?
제 기억엔 세상에서 젤루 맛있는 아이스바예요
한때 50원으로 느끼던 행복
그 행복의 맛을 빼앗지 말아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