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산 백화점입니다."
"그래서요?" 귀찮은 듯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번 경품행사에서 1등 당첨되셨습니다. 아반테 승용차요. 축하합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야?' 어떨결에 겨우 "고맙습니다."하고 말았다.
"아니? 하나도 기쁘지 않으세요?" 담당 직원은 좋아서 오두방정을 떨고 소리를 지를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아니요 너무 뜻밖이라 실감이 나지 않아서요. 기쁩니다 기쁘고말고요.고맙습니다."
옆구리 찔러 절 받은 직원은 몇 가지 구비서류와 행사날짜를 알려줬다. 1990년의 일이다
나는 너무 얼떨떨해서 꿈인가 생신가 하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좋아서 야단인 걸 보니, 분명 꿈은 아니었다. 백화점 오픈 행사의 일환으로 내 걸었던 경품 승용차를 내가 타게 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반테 승용차가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때라 더 꿈만 같았다.
신문에 끼워온 요란한 전단지를 보고 백화점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8층 백화점은 구경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지하 1층 슈퍼마켓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고 경품 응모권을 받았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를 적고, 경품함을 찾으니, 8층에 있다고 했다.
시장바구니는 무겁고 지치기도 해 그냥 갈까 하다가 그래도 쓴 게 아까워서 8층까지 올라가 응모 함에다 넣었다.
그리고는 열흘쯤 시간이 흘렀고, 나는 경품에 대한 기억을 깨끗하게 잊고 있었다.
그 참에 전화를 받은 것이다.
경품을 받는 행사 당일 남편과 시간에 늦지 않게 일찍 집을 나서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커다랗게 만든 자동차 열쇠 모형을 받았으며, 회사측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그런 행운이 몇 년 후 또 왔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5만 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경품 응모권을 준다는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녁 찬거리 사는 데는 5만 원이 안되는데' 하다가 '아참, 쌀 살 때가 되었지'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20킬로그램 쌀 한 봉지를 추가하니 가볍게 5만 원을 넘어 경품 응모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고, 경품에 응모한 사실조차 기억에서 사라진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축하합니다. 경품에 1등 당첨되셨습니다, 3단 김치냉장고로 85만 원 상당입니다."
김치냉장고가 없던 나는 너무나 기뻤다. 세금으로 16만 원을 입금하고 김치냉장고를 싣고 왔다.
코스코 슈퍼마켓 서울 전 지점을 통틀어 1등은 한 명뿐이라는데 내가 당첨된 것이다.
갖고 싶었던 서랍식 냉장고라 한층 더 좋았다.
이보다 더 오래전, 아이들이 어릴 때, 슈퍼마켓에서 하는 경품행사에서 역시 1등 당첨되어 리베라호텔 뷔페식사 초대권을 두 장 받은 일도 있었다. 두 장을 더 사서 우리 가족 네 명이 호텔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우아하게 저녁식사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에도 당첨된 일이 여러 번 더 있었다. 자전거 두 대, 고급 와인 세트, 벽시계.......
며칠 전에는 아파트 지하 슈퍼마켓 이벤트에서 2등 상으로 배즙 한 박스를 받았다.
이런 경험담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로또를 한번 사보지그래."
"아니, 난 내가 받을 경품은 다 받았다고 생각해, 더 이상 뭘 바라." 마음을 싹 비운 듯 나는 초연한 척했다.
내가 이렇게 몇 년 사이 경품 1등에 여러 번 당첨되는 동안에, 더 훨씬 전부터 남편은 복권을 단 한 주도 빠짐없이 열심히 사고 있었다.
주택은행에서 발행하는 주택복권은 한 회도 빠짐없이 사서 스크랩한 걸 주택은행에 제시해 기념품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40여년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당첨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확률도 어려울 텐데 말이다.
한 번은 내 소지품을 넣어두는 문갑 서랍에 복권이 얌전히 놓여있는 걸 보았다. 정말 의아했다.
복권을 산 일이 없는데 무슨 복권이지?
아하! 남편이 복권을 사서 내 서랍에다 넣어두었구나.
내게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당첨행운을 빌려보겠다는 눈물겨운 발상에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또 한 번은 남편이 밖에 나가자고 했다.
"어디요?" 내 물음에 빙그레 웃으며 도착한 곳은 복권 판매소였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면서 내 손으로 복권을 사라고 했다.
"몇 조로 드릴까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뒤에 섰던 남편이 "6조요." 하고 대답했다.
아, 이 번에도 틀렸어, 내가 말해야 효과가 있거늘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방정을 떨다니. 나는 확신했다, 떨어질 것을.
경품이나 복권 당첨은 다 특별한 운이 있어야 되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꼭 될 거야, 꼭 되어야지 하는 욕심이 있으면 안 되고 그저 경품에 응모한 사실조차 잊고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행운이란 찾아와 주는 것이지 쫓아다닌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지금도 복권을 산다.
"40년 이상 사봤으면 이제 포기할 때도 되었잖아요?"
"너무 그러지 마, 이 복권 일등 당첨되면 반을 뚝 떼어 당신 줄게."
"필요 없어요. 당신 다 하세요."
혹시나 하고 산 지난주 복권도 역시 꽝이었다.
2006.3.21
첫댓글 어머나! 진짜입니까?
한번도 아니구요...선배님 옆에서 치마자락 붙들고 다녀야 되겠어요.
유독 행운이 잘 따르는 사람 있잖아요.
선배님께서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하여튼 계속 좋은 소식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진짜 맞아요.
이젠 당첨운이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과욕이죠.
욕심을 부리면 절대로 안되고요.
선배님 어디 단체여행 보내주는 경품 있나...알아봐야 겠어요..
우리 다 따라가게 말입니다...
여행은 힘에 부쳐 사양할래요.
당첨운은 이제 바닥났어요. ㅎ
나산백화점 행사때 승용차까지 받으셨다니 깜짝 놀랐읍니다..
제 주위에는 그렇게 큰 상품을 타신분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거든요...ㅎㅎㅎ
그런 행운을 맞이했을때..,얼마나 재미났을까요?.
저는 큰상품이 걸린거는 아예포기하고
쳐다보지도 않았었는데...
오래전에 미대사관주최하는 크리스마스파티에 가서 뉴욕행 왕복 비행기티켓 2장을
받은적이 있었읍니다..
우리로서는 큰선물이었읍니다...
뉴욕행 왕복 비행기 티켓 2장이면 대단히 큰 경품입니다.
집에 차가 있었고 나는 운전을 못 해 차를 처분했습니다.
아반테가 900만원 조금 넘는 가격인데, 경품 행사에 차를 갖다준 업자에게 400만원 받고 차를 넘겨주었어요.
남편은 마침 해외출장가고 없어 나혼자 어쩔줄 몰라 업자가 하자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지요.
정말 복도 많으시네요.
아마도 덕이 많은 까닭 같습니다. ㅎㅎ
이름 德을 본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