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스테파노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말하였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복음 요한 6,30-35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저는 미사를 마친 뒤, 돌아가시는 신자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사진을 함께 찍자는 분들을 뵙습니다. 제 묵상 글을 계속해서 보고 있는 팬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쓴 책을 들고 오셔서 사인을 해달라고도 하십니다. 솔직히 이렇게 사진도 찍고 사인을 해드리는 것이 보통 쑥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사진에 찍힐 만큼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제가 쓴 글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을 뿐인데, 주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 같아서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썼다는 글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즉, 제 글을 인용을 해도 상관없고, 다른 사이트에 제 글을 올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작권은 제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형제님과의 만남 뒤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정말로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앞에 나설 일이 있으면 자신이 모든 것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을 그 자리에 세우십니다. 이렇게 남몰래 봉사활동을 하시는 형제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저는 저만의 힘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느님께서 저를 쓰고 계신 것이지요. 저는 그분의 도구일 뿐인데, 도구가 자기 스스로 잘 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남에게 인정받기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또한 자기 자랑을 하는 맛에 살아가는 것 역시 우리들 모습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분 말씀처럼 내가 잘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쓰고 계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이 점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면서 생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하늘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말을 합니다. 즉, 모세의 기적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다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빵을 내리시어 먹게 했던 ‘만나’는 모세가 내려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려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아닌 모세만을 생각했기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의 빵인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릴 수가 없으며, 이로써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받아들일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행복은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김상중).
어린왕자. 꿈을 갖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슬픔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말이지요. 차례대로 주님 곁으로 간다면 좋겠지만, 죽음에는 그 순서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슬픔을 종종 보기도 합니다.
자식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요? 이상한 부모님이 아니라면 자녀보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뵌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주 오래는 아니고 딱 하루만 더 살기를 바라시더군요. 지적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셨습니다. 이 어머니는 암으로 인해 오래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없으면 더 이상 돌봐줄 사람이 없어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끝까지 돌봐주고 싶은 마음에 딱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은 이 부모의 사랑을 뛰어넘지요. 그래서 앞선 어머니가 자기 자녀보다 먼저 주님의 곁으로 간다 해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녀를 더 잘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역시 인간적인 욕심인 것이지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더 이상 힘들어하지 말고 당신께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하십니다.
첫댓글“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저는 저만의 힘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느님께서 저를 쓰고 계신 것이지요.
저는 그분의 도구일 뿐인데, 도구가
자기 스스로 잘 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며 살았던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저 남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강의한다고 떠벌일 일이 아니라
얼마나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는데
힘을 썼는지 돌아보며
궁극적인 천국에의 길을 향했는지
헤아렸어야 했습니다.
힘이 드는 일일지라도.
내 뜻이 아니고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