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 놓는다. 소매를 걷는다. 뭐지? 울고 싶은 이 마음이 뭐냐고? 당차게 질문을 하련다.
한 해 집중한 두 가지를 마무리했다. 한눈팔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저녁 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혼자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잘했어. 어제는 종일 겨울비가 내렸다. 갇혀 있다는 기분이었다.
오늘 출근길에 출발 후 마을을 벗어날 즈음 느닷없이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많아 호르몬 작용을 의심했다. 이유 없이 갑자기 어떤 호르몬이 나를 우울로 몰고 가느냐고. 한 해 보내며 근력은 떨어졌을 테고, 마음의 근력을 살핀다. 나에게 기본 감정이 우울이었을까. 긴장을 놓으니 기본이 슬쩍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인가. 내 앞에서 늦장 부리는 검은 승용차도 꼴 보기 싫어졌다. 추월하려다 말았다. 곧 도착지점이다.
유치원 병아리 떼들이 종알종알 들어온다. 내 안에 졸고 있는 병아리가 일어난다. 떼 속으로 들어갔다.
“저 『돼지책』 박두진이 그린 거예요?”
이야기가 쏟아진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스탬프 여행’이란 프로그램으로 표정은 첫눈이다. 눈이 내릴 것 같이 하늘만 내려앉은 날 아이들 미소가 하얀 눈이다. 잘 놀다 아이들이 나갔다.
책상에 놓인 전화기에서 광고성 벨이나 문자 알림이 뜬다. 저 전화기 버려버릴까. 버리면 고요할 것 같다. 끝내 버리지 못할 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 전 왔다 간 아이들만 할 때 나는 너무 많이 고요했다. 혼자 자랐으니까. 나는 고요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래 이거다. 나의 우울의 근원은 고요다. 고요해지고 싶은데 상황은 따라주지 않고 그러나 고요할까 두렵고.
얼마 전, 눈 같지 않은 눈이 온 것을 기억한다. 여기는 그랬다. 첫눈이라 할 수 없고 오늘 온 아이들 표정을 기억하련다. 첫눈은 그런 것이다. 호기심이 서릴 것, 설렘을 품을 것, 그리움을 끌고 올 것, 타박타박 그 안으로 들어갈 것. 오늘 내 안에 첫눈이 왔었다.
2023. 12. 12. 문학관에서
첫댓글 뜻대로 안풀리는 일이 있었나요~?
눈속에 녹여내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