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Gobi)에서 길어 올린 삶
서정길
한반도 면적의 6배에 달한다는 광활한 고비 사막,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모래언덕과 정적만이 감도는 ‘침묵의 땅’을 상상했다. 문명과 단절이라는 두려움이 없진 않았으나 전문 여행가 동행에 용기를 냈다.
일행을 태운 차량은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광폭 타이어에다 바퀴의 크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고비가 ‘거친 땅’이라는 몽골어가 말해주듯 네 시간을 달려 마주한 사막은 나의 빈약한 상상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압도했다. 그 이름처럼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것은 TV에서 보았던 부드러운 모래가 아니라 모난 암석과 뜨거운 열기에 말라 박제된 초화류였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은 멀리서는 경이로움을, 가까이에서는 죽음이 널브러진 땅이었다. 지평선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끝없이 뻗어 있고, 그 광활한 초원 위로 양 떼와 말, 낙타들은 점점이 흩어져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차량은 정해진 길도 없는 초원을 가로질러 달린다. 뿌연 흙먼지를 뒤로하며 거침없이 질주하는 차 안에서 몸은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기묘한 쾌감이 전신을 파고든다. 그것은 마치 목적지만을 향해 무작정 돌진해 온 나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속도감, 그 뒤에 남겨진 구름 같은 먼지의 행렬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 역시 그렇게 질주하는 삶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믿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느덧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몸을 숨기자, 낮의 쾌감은 이내 막연한 불안으로 바뀌었다. 사막의 밤은 문명의 혜택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전조등이 비추는 길 외에는 온통 암흑뿐이었고, 하늘의 별만이 유일한 이정표였다. 길을 잃으면 그대로 고립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몇 번이나 캐물었지만, 성의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조금만’이라는 대답뿐이었다.
암흑 속에 갇히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밤길 위로 떠올랐다. 이십 대 초반,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짊어져야 했던 시간들, 앞이 캄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나날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 한 순간도 옆을 돌아보지 못한 채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 내몰렸다. 가문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은 나를 늘 채찍질했고, 휴식은 곧 뒤처짐이라는 공포와 동의어였다. 사막의 밤길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그저 ‘열심히’라는 전조등 하나에 의지해 달려왔다.
다음 날, 일행이 휴식을 위해 사막 한가운데 섰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자갈과 모래뿐인 이 척박한 땅 곳곳에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한낮의 열기와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를 이 작은 생명들은 어떻게 견디어 내고 있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풀꽃들은 남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몸집을 줄이고, 잎을 작고 두툼하게 만들어 수분 증발을 최소화했다. 손가락 길이의 도마뱀도 최대한 몸집을 줄여 체온을 조절한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곳 생명체는 주어진 조건을 거부하기보다, ‘순응’을 택했다. 걸핏하면 주변 여건과 타인을 탓하며 날을 세우던 나의 삶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순응의 자세는 대자연의 거대한 리듬에 자신을 맞추는 가장 적극적인 생존 방식임을 그 작은 풀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사막은 문명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휴대폰은 먹통이다. 전기라고는 숙소에서 공급받는 3시간이 전부지만, 불편은 오히려 축복의 시간이 되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자 오롯이 고비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노을이 진 자리에는 어느새 은하수가 강물이 되어 흐르고, 북두칠성과 오리온자리가 손에 잡힐 듯 내려앉았다. 습기가 없는 신선한 바람 덕에 고비의 별은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보인다고 한다. 유년 시절 밤하늘에서 보았던 그 꿈결 같은 별빛이었다.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말을 건다. “험하고 외로운 사막,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는다. 이번엔 사막이 속삭인다. 지금껏 무소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부터 낙타처럼, 양처럼 초원의 리듬에 몸을 맡기라고 한다. 지금까지 혼자서 달려오느라 놓쳤던 소중한 것들과 함께하는 평온한 삶을 엮으라 한다. 출발 전, 사막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련의 땅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고비는 낙타와 양들을 살아가게 하고 별들이 머무는 무한의 공간을 내어주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이었다. 수천만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이 공룡의 화석을 품은 채 다시 바다로 회귀할 날을 기다리듯, 사막은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차창 밖 풍경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단조로워 보였던 초원 위에는 수만 가지 삶의 방식이 역동하고 있음이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들의 느릿한 걸음에서 생의 여유가 느껴졌다. 자신의 리듬대로 살아가는 것,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 목적지에 닿는다는 믿음까지. 고비가 내게 준 큰 선물이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지지 않는 고비의 은하수가 흐를 것이다.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이 무의미 하지 않았듯, 앞으로의 날도 고비의 생명체들처럼 순응하며 유연하게 살아가고 싶다. (원고지 13.0장)
첫댓글 그 작은 꽃들을 보고 서 회장님 삶과의 결부 기가막힙니다. 전 차마고도와
백두산에 핀 키낮은 꽃들을 보고 저런 관찰 못했거든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습관이라는 게 무섭더군요. 제가 아무리 천천히 가고 싶어도 오래동안 몸에 배인 습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천천히. 천천히. 요즘 이말이 이슈기까지 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