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군은 전투준비태세로 데프콘을, 정보감시태세로 위치콘을, 정보작전 방호태세로 인포콘을, 국군 방어준비태세로 진돗개로 대북 경계태세 및 준비태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위 4가지가 실제로 발령 되었던, 지속되었다면 다시 남북전쟁이 발발했던 사건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군 대비태세
사진출처 - 대한민국 국방부
우리 군은 크게 4가지 정보작전 대비태세의 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현재 4단계에 맞춰져 있는 `데프콘`은 북한의 전면전 도발에 대비하는 전투준비태세를 가리키며 데프콘 발령권한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지만 실제 한 단계 올리기 위해서는 한ㆍ미 양국 정상이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데프콘은 크게 5단계로 구분되지만 우리나라는 정전상태에 있기 때문에 평화 시 발령하는 5단계는 적용될 수 없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평시에는 4단계가 적용되고 있으며 북한군의 도발 징후가 감지되면 3단계로 격상됩니다. 데프콘 3`은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처음 발령됐으며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 때 마지막으로 발령됐습니다.
데프콘이 전면전 대비태세라면 `진돗개`는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방어준비태세입니다. 평소 `진돗개 셋` 상태를 유지하지만 적 부대 및 요원 침투 징후가 농후하면 `둘`, 침투상황이 발생해 대간첩작전이 펼쳐질 때는 `하나`로 격상됩니다. 진돗개는 육군 기준으로 연대장급 이상 지휘관이 발령할 수 있습니다. `진돗개 하나`는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 때, 그리고 2010년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때 발령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1.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일어난, 남북한 무력충돌에 이어 전쟁이 일어날 뻔한, 전쟁 일촉즉발의 사건입니다.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조선인민군 군인 30여명이 도끼를 휘둘러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주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주한 미군 및 대한민국 국군 병력 다수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입니다.
2. 아웅산 폭탄테러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은 1983년 10월 9일에 버마(현 미얀마)의 수도 랑군(현 양곤)에 위치한 아웅 산 묘역에서 미리 설치된 폭탄이 터져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 정찰국의 폭탄 테러 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기타 수행원들이 부상당하였고 사건 직후 대한민국의 대통령 전두환은 공식 순방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습니다. 만약 전두환 대통령이 사망했다면 바로 남북전쟁으로 돌입하는 사건이였습니다.
3.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은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북한의 무장 공비 120명이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하여 12월 28일 대한민국의 토벌대에 소탕되기까지 약 2개월간 게릴라전을 벌인 사건입니다. 이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대 규모의 도발로, 침투한 무장공비 중 7명이 생포되고 113명이 사살되었으며, 남한측도 민간인을 포함하여 40명이 넘게 사망하고 30명이 넘게 부상하는 등 피해를 입었습니다.
▲침투한 북한 상어급 잠수함을 수색하는 우리국군
4.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1996년 9월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후 잠수함에 탑승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26명이 강릉 일대로 침투한 사건입니다. 이에 대한민국 육군은 49일간 소탕 작전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다수의 잠수함 승조원들과 대한민국 군인,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승조원 1명이 생포되었습니다. 육군 28개 부대, 해군 1개 함대, 공군 1개 전투비행단, 수십만의 예비군,경찰병력이 참여한 이 작전은 평균 일일 전투병력 4만 2천, 연일 전투인원은 150만에 이르는 거대한 작전이였습니다. 하지만 군인 12명, 예비군 1명, 경찰 1명, 민간인 4명 등이 사망하였고 부상자는 27명에 달하고 민간 손실액은 2천억원에 달했습니다.
5. 제2연평해전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입니다.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대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어 30분 가량 진행된 이 전투에서 양측 모두 손상을 입었습니다. 북한군의 선제 공격을 당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도중 침몰하였고, 정장(참수리급은 150톤급으로 "함"이 아닌"정" 지휘관도 "함장"이 아닌 "정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를 겪었습니다. 조선인민군 해군소속 등산곶 684호도 대한민국 해군의 반격으로 전투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예인당했습니다. 제2연평해전으로 조선인민군 해군 13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했습니다.
6, 천안함 피격사건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 대한민국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훈련 도중 북한 해군의 어뢰에 의한폭발로 인해 선체가 두동강나며 침몰했습니다. 인근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포항급 초계함인 PCC-778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해경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하엿습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010년 5월 4일 "경계근무 중이던 우리 함정이 기습받았다는 데 대해 안보 태세의 허점을 드러냈고 소중한 전우가 희생됐다는 점에서 통렬히 반성하는 의미로 천안함 피격사건이 있었던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7. 연평도 포격사태
휴전 이래 최초의 민간거주구역 공격이자, 한반도를 천안함 · 대청해전에 이어 전운으로 몰아넣은 사건입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한반도의 서해 5도 중 하나인 대한민국령 연평도를 북한군이 선전포고 없이 포격한 사건입니다. 또한 휴전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 거주구역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 전의 도발과는 달리 민간인 거주지역이 포격을 당했고, 군인은 물론 민간인 사망자까지 나온 상황이었기에 조금만 수습이 늦었어도 정말로 전쟁이 날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8. 북한 소총도발에 대포로 갚아준 박정인 장군
1973년 3월 7일 오후 1시20분, 긴급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철원 비무장지대 내에서 표지판 정기 보수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던 백골부대원을 향해 북한이 기습총격을 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격으로 황정복 대위, 김윤복 중사, 서휘수 병장 등이 총상을 입었습니다. 박 장군은 즉시 북한군에 대한 응징책을 준비시키고 현장에 가서 마이크로 적군의 사격중지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사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박장군은 사단 포병대대를 총동원해 포를 발사했습니다.
백골 포병부대의 105mm와 155mm 곡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고 그날 박 장군은 6·25 전쟁 휴전 이후 북한 지역에 처음으로 포격을 가한 지휘관이 됐습니다.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 백린 연막탄도 동시에 발사했고 적은 사격을 멈추고 부랴부랴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마음을 먹은 박장군은사단 내 모든 군차량을 동원해 헤드라이트를 켜고 DMZ 남방한계선 바로 앞까지 돌진하게 했습니다. 우리 군의 야간기습으로 오해한 김일성은 즉각 전군 비상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귀순한 인민군 유대윤 소위의 증언을 통해 그날의 공격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밝혀졌는데 “그날 백골 포병부대의 포탄 1발이 정확히 막사에 명중해 인민군 36명이 사망했다”며 “지금도 백골부대는 북한군이 가장 겁내는 부대”라고 증언했습니다.
첫댓글 94년도가 정말 전쟁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CNN 종군기자들이 우라나라에 취재하러 몰려왔었는데 카터를 만난 김일성이 한 발 물러서는 바람에 다행이 북폭이 취소되었죠.
90년 입대하여 94년9월 전역했는데 그러고보니 제대 못할뻔 했었군요.
@Last Survivor 그때 군인들은 집으로 보낼 유서도 쓰고 대기중이었다는데 정말인가요 뜬 소문인지 ㅎ
음 ..ㄹㅎ 탄핵은 구린네가 나는거시 어쩌면
쥐세끼가 기획했을겨..운동회 사진 보면,.쥐세키 속으로 생각하는것이 다 보여 ..아 저년 내가 먹어야 잘나가는데...그러나 이미 최태민에게 맛탱이 갔음
포기하고 절치부심 현대 사장,서울시장. 대통.
그다음 시발년 너 대통하고 엿 먹어라! !!.나 못생겻거든? 니가 나를 차삐리?
니는 내 거시기사 빨아라! 하고 지금 엿먹이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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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 침투사건과연평도포격 전쟁이나려나 했을법한 두려웠던생각이났었네요
특히연평도땐전투기 즉시출격했지만...
미사일이 탑제되지도않았다고하던데
전쟁터지려나 했던 거억이 ...
헐 순간 댓글 5개 날리가는거 눈으로 확인..뭐냣!
이미 셀폰 모바일폰 헨폰 모두다
내손안에 있고 부처님 손바닥이로구나?
무섭다 ..탄핵 이 인용 하면 분명코 쓰레기통이
앞서겠구나! 그러나...이승만이가, 어땠어?미국이?
트럼프가 헬퍼? ㅎㅎ
역사를 외곡하지 말자.
닭대갈년이 개성공단 폐쇄하고 한일군사정보 협정에 사드 배치에 열올린 그때가 가장 위험했다 봅니다. 이것은 한반도 전쟁을 준비한 것이라 보여지며 트럼프가 대통이 된것과 맞물려 아주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다행이 닭년이 탄핵되고 섹누리가 분당되는등의 사태가 벌어져 위험요소가 어느정도 줄어들었지만 아직은 안심할수 없읍니다. 닭년이 감옥에 가고 남북화해가 되어야 안심할수 있읍니다.
북한이 먼저 때렸는데 무슨 김일성은 야간 기습으로 생각하냐.. 진짜 지가 한 건 생각안하고 남이 때린 건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또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