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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사가해석한성경 원문보기 글쓴이: 성모세
우병우(禹柄宇)
최순실 게이트 관계자 명단 | |
박정희 일가 | |
최태민 일가 | |
우병우 · 안종범 · 김종 · 이재만 · 정호성 · 안봉근 · 윤전추 · 박관천 · 조응천 · 김기춘 · 김종덕 · 김상률 · 최경락 · 김재원 | |
황교안 · 정홍원 · 김희정 · 이영선 · 조윤선 · 강은희 · 김수남 · 유진룡 · 이석수 · 이원종 · 김병준 · 김한수 · 한광옥 | |
재계 | |
연예계 | |
기타 인물 |
2015년 7월 3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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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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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비자금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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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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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보도되는 인과관계의 직·간접적인 연결고리만 기록하였습니다.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박근혜정부 법조비리 나비효과를 참고할 것. |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인품에 대한 평판은 나쁘지만 일처리는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 #[2] 2015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가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은 논란에 휘말린 끝에 결국 최순실 게이트를 기화로 2016년 10월 말 사임하였다(실질적으로는 경질). 박근혜 정권의 실권자들 중 1인으로 '리틀 김기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간략한 인생사와 성향은 이 기사를 참조.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이 수많은 논란에 휘말려 있으나, <신동아> 기자의 논평을 빌리면, "우 수석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공직자이자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강남 땅 매매와 관련해 몇 마디 한 것 말고는 언론 앞에서 입을 연 적이 거의 없다."[특종] “우병우 사단? 검사 20년 했는데 없다면…” 위 보도는 민정수석 취임 몇 달 후인 2015년 4월 6일 몇몇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폭로(?)한 것인데, 이를 보면 언론에 대해 '나에 대해 좋은 기사를 거의 안 쓴다'라며 매우 부정적인 속내를 서슴없이 토로하고 있다.[3]
비록 당사자는 아니라지만, 간접적으로 넥슨 게이트, 최순실 게이트 등에 모두 연루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인 줄 알았는데,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점점 더 드러나면서 그 장본인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스캔들의 내용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민정수석실의 협조가 없이는 일어날 수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
2016년 10월 20일 돌연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내용이 그 당시 바로 보도되기는커녕 사흘 후에야 “어떤 신문은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변론했다는) 기사를 써놨다, 그러니까 이게 억울하면 우리 신문에다가 선임계 제출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모욕감을 느꼈다”라는 말을 했다는 세계일보 보도만 덜렁 나왔다.#
1967년 1월 28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교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주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영주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1984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 전국석차 53위의 탁월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서울대학교 법학과 3학년 재학 중인 1987년에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0세때였다.
1990년 사법연수원을 제19기로 수료한 후 검찰에 들어가서[4] 주로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했다. 그때쯤 결혼을 했는데, 장인은 이상달 정강중기·건설 회장이었다.[5]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재벌집 사위로 장가가서 그랬는지, 그의 거만함을 빗대어 목에 깁스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젊은 시절 별명이 '깁스' 였다고 한다. 사실 그도 그런 것이, 대한민국 검사라면 수사권 기소권 모두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인사다. 친구들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기업인들에게 대우받고, 정부 인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 인물이었다.
1990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평검사 시절 서방파[6] 행동대장과 대전진술파 두목,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수련의 임용과정에서 돈을 받은 피부과장 등을 구속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에 이어 세균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앙대학교부속병원을 적발했다.
1992년 8월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로 부임, 1993년 경주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이사장 김일윤 전 의원을 학교공금 53억 원 횡령혐의로 기소하고, 아파트 감리와 관련해 청탁한 경주시 건축과장 등을 구속하는 등 신나게 칼을 휘두르던 중, 정권 핵심에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를 수사하다가 졸지에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으로 내쳐졌다고 한다. [7]
이 무렵 장인 이상달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장인 이상달은 기흥컨트리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래 기흥컨트리클럽은 전두환 정부 시절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재향경우회가 사업권을 받아 만든 골프장 사업체였다. 그런데 이 사업 지분의 과반수 이상이 이상달과 그 지인에게 넘어간 것이 드러나자, 1993년 5월 경찰은 이상달이 전직 치안본부장 등 경우회 간부에 뇌물을 공여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던 것.
결국 1993년 6월에는 전 치안감이자 경우회 이사인 옥기진이 이상달에게서 다방운영권을 넘겨받아 이익을 챙긴 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전직 치안감인 옥기진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때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도 함께 구속되었다.[8] 1993년 7월에는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역시 이상달에게 1천만 원을 받았다며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후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1부는 이상달에게 배임 및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는데, 사건 자체가 전직 치안총수가 구속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범인 이상달이 달랑 징역 3년형에 그친 것은 검사 사위 우병우가 무마해준 덕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후 1994년 2월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97년 2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1999년 2월부터는 법무부 국제법무과에서 근무하고,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6부에 부임했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3월까지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 특별 수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당시 송해운·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불렸다.[9]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 8월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으로 올라왔다. 그 시절 이정일 민주당 의원,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도 소환조사했고, 배기선 열린우리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와 권오정 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 심기섭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 등도 그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련해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했을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삼성그룹은 특수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으나, 유독 부부장이던 우병우만 삼성그룹 사람들을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결국 신상규(서울중앙지검 3차장)-채동욱(특수2부장)-우병우·박용주로 이어지는 수사진은 2003년 12월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당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우병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 회장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어쨌든 이러한 분리기소는 2007년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4년 6월에는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을 달았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이때 대구 유니버시아드 휘장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강신성일 의원, 박주천 전 의원, 김명규 가스공사 사장, 박명환 전 의원 등을 구속시켰다. 그리고 2005년 4월에는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과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7년 2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서 예금보험공사 부실채무기업특별조사단장으로 파견되었다. 2008년 3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로 활약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의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이 공식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친인척 사건이었다. 결국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같은 해 8월 김씨를 구속했다. 그리고 김평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구속했는데, 그 과정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였다. 구속영장이 2번이나 기각된 김평수에 대해 반 년 이상 추가 수사를 벌여 결국 배임수재 혐의로 3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켰다.
2008년 6월 장인 이상달이 사망하고 2개월 뒤 아내 김장자와 딸 넷 등 5명은 SD&J홀딩스[10]를 설립해 자신들의 지분을 회사소유로 돌렸고 현재 지분을 각각 20%씩 나눠 가졌다. 우병우 검사의 아내와 세 처제들은 강남역 인근의 부동산 1020평을 상속 받았고, 우병우 검사 부부도 부동산 임대 업체 3곳의 주식을 상속 받았다.
2008년 골프장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 수사했다.[11]
상속세를 납부하지 못하자 소유한 부동산들에 근저당이 설정되었고 결국 강남역 부동산을 매물로 내놨다.
2009년 1월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과장이 되었다. 대검 중수부 중앙수사1과장 시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박연차 로비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이 당시 이인규 중앙수사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취조하였다. 우병우는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으며,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2009년 5월 23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고 그 여파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진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2009년 8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2010년 7월 수사기획관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당시 신임 검찰총장인 김준규와 한때 법무부에서 함께 일하는 등 인연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말이 있었다.
2011년 3월 넥슨에 강남 부동산을 매각했다.[12]
2011년 8월에는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이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있다가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아무래도 2009년 박연차 게이트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너무 무리하게 수사했던 것이 약점이 되어 2013년 검사장 인사에서 탈락했다는 소문이 당시 파다했다.[13] 검찰 안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너무 심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는 얘기이다. 한편 그의 검사장 승진 탈락에 대해 ‘너무 많은 재산’이 더 큰 악재였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어쨌든 그렇게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탈락하자 검찰을 박차고 나왔다.
2013년 5월 우연히 '홍만표 법률사무소'가 10층에 위치한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후 홍만표와의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14]과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 등 몰래변론 의혹이 생긴 시점도 이 때다. 검찰은 홍 변호사와 우 수석이 공동 변론한 사건이 2013년 한 해 8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변호사가 된 후 모교가 있는 영주시의 재경 향우회에 얼굴을 내미는 등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도 보였다.
그에 대한 검찰 내부의 평가도 썩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특히 변호사로 개업한 후, 후배 변호사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사유로 후일 인사권에 문제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었다.
우병우가 사전에 박근혜 정부와의 안면이 있었으면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2014년 4월 15일 청와대 7시간 의혹 사건 우연히 하루 전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조응천을 세계일보에 청와대 내외부 인사에 관한 감찰자료가 보도된데 대한 책임을 물어 해임시킨다.
2014년 5월 우병우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에 민정비서관으로 들어왔다. 우병우가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 인사 검증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데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이 임명을 압박하자,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평가 점수를 높여 준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뒤이어 6월에 임명된 민정수석은 김영한으로 변호사시절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을 수임한 인연이 있다.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는데, 총재산액이 423억 3,230만 원이나 되어 화제가 되었다.[15] 재산 대부분은 골프장을 운영하던 장인 이상달 회장[16]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한테 높은 신임을 얻었다. 청와대 문건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히 마무리한 덕분이었다. 이때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잦았다.이 때문에 김영한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한 뒤 사퇴하는 등 '항명사태'를 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여러 사람들에게서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었다.
2015년 1월에는 청와대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승진했다.[17] 청와대 입성 8개월 만이었다. 이로써 노무현 정부 시절 전해철 민정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처럼 '40대 민정수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18]
그리고 이 당시 대구 출신인 김수남이 대검 차장에 임명되고, 경북 청도 출신인 박성재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청와대 민정수석-대검 차장-서울중앙지검장'이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말이 나왔다.[19]
2015년 2월 검사 관련 인사들은 '우병우 라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또 청와대 파견 경력이 있는 검사들도 당시 인사에서 요직에 앉혔다. 이에 대해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편법으로 우병우의 측근들을 청와대에 근무 시킨후 검찰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5년 3월부터 김기춘 실장이 기획한 박근혜 정부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사정을 주도했다. 다만 두 사람이 직접 앞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이완구 총리에게 총대를 메게한다. 이완구는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2015년 3월 12일 포스코 사정을 시작으로 1주일 뒤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서 경남기업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다. 그러자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은 백방으로 탄원하다가 끝내 자살하고 만다. 결국 성완종 회장이 자살하면서 뇌물 리스트를 남겨 김 전 실장과 이 총리의 경우 도리어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관련기사 자원외교비리 관련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친박계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몇몇 친이계 인사들에 수사만 집중적으로 벌리고 흐지부지 마무리 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완종에 대한 사정이 본격화하기 직전 사표를 제출한 김기춘 실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실장이 2015년 3월부로 임명되었으나, 온건파인 이병기 실장을 제치고 강경파인 우병우 민정수석이 득세한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결국 2016년 20대 총선을 마치고 2016년 5월부로 이병기 실장은 사임한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의 결과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결과로 끝났는데, 애초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이 최소 180석[20]을 차지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여소야대의 형국을 받아들게 되었다. 이런 뜻밖의 상황에 가장 당황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바로 청와대였는데, 그 전에 미리 짜두었던 계획, 즉 180석 이상 차지해서 무소불위로 밀고 나가려던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후 아직도 현실 적응이 되지 못한 반응들을 계속 보인다.
2016년 10월 30일 안종범 정책수석 등과 함께 경질되었다.
그 다음날 텔레그램 가입했다는 것이 발견되어서 카카오톡 시찰 당시 텔레그램 싫어했던 높으신 분들이 정작 자기들도 텔레그램 쓴다는 것에 조롱과 비웃음이 난무했다.
2015년 7월 3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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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보도되는 인과관계의 직·간접적인 연결고리만 기록하였습니다.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박근혜정부 법조비리 나비효과를 참고할 것. |
2016년 7월 18일 조선일보에서, 2011년 경 넥슨에 부탁하여 처가 부동산을 매입시켰는지 모른다는 의혹 기사가 게재되었다. 청와대 측은 이에 대해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를 상대로 고소를 시전했다. 그리고 <TV조선>은 윤상현 의원의 공천개입의혹 녹취록을 폭로한다
22일 대통령 직속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특별감찰관제 도입 이후 감찰 첫번째 대상자가 됬다. 이에 우병우 수석은 "주말만 지나면 여론이 잠잠해질 텐데 왜 특별감찰로 사건을 키우느냐"며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특별감찰은 재임 시절 벌어진 일들로만 국한되기 때문에 논란의 핵심인 처가 부동산 문제 등이 감찰 대상에서 벗어나자 검찰 조사 전 시간 끌기 아니냐는 논란이 빚어졌다.
2016년 8월 17일 MBC에서 이석수 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사 누설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바로 다음 날 정작 우 수석의 구설수에 관해서는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은 채 "특별감찰관이 감찰결과를 유출했으며 이는 국기문란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주요 언론사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사설들을 내었다. "검찰, ‘우병우 비리’ 수사 더 미적댈 이유 없다"(한겨레), "범죄 혐의 포착된 우병우 수석 즉각 경질해야"(한국일보), "피의자 된 우병우, 자기 수사 지휘하는 저질 코미디 할 건가"(경향신문), "검찰, 수사 의뢰된 '우병우 의혹' 철저하게 밝혀야"(중앙일보), "이석수 특감이 검찰 수사 의뢰한 우병우 수석 사퇴가 도리"(세계일보), "우병우 민정수석, 즉각 사퇴하고 검찰 수사 받아야"(동아일보), "대통령 최측근 우병우 수사 의뢰, '政權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조선일보), "우병우 수석, 검찰 가기 전 거취 밝히는 게 옳다"(서울신문), "靑 ‘李특감 공격’은 本末 뒤집는 ‘우병우 감싸기’다"(문화일보).[21]
청와대의 반응에 압박을 느낀 이석수 특별감찰관 측은 아래 논란 중 민정수석 시절의 일인 아들의 '꿀보직' 전보 논란, 가족회사 논란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민정수석의 비재임시 의혹에 관해서는 투기자본감시센터에 의해 고발되었다. 자세한 고발 내용은 여기 또한 MBC가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제3자 유출이나 해킹 등 불법이 저질러졌을 가능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라는 보수단체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관계자에게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여당인 새누리측에서 마저 수사를 지휘해야하는 민정수석이 수사를 받을 수는 없지 않는가 하는 지적을 하면서 우병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야권에서는 검찰 곳곳에 '우병우 라인'이 깔려 있어서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였다.
결국 우병우와 이석수 양측을 수사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검찰은 사건 배당도 하지 못한채 특검요청까지 고려하다가 8월 23일에야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한다. 더불어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이에 대해 "예를 들어 검찰이 어떤 사건 수사를 하다가, 피의자 편에 있는 시민단체가 검사를 직권남용 등으로 고발한 사건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피의자와 검사를 같은 수사팀이 수사하나? 이건 말이 안 된다. 전형적 물타기다." 라는 지적을 했다.
8월 24일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했다. 윤갑근 검사에 대해서는 '국정원 증거조작사건'과 '정윤회 문건수사' 등의 사건에서 정권에 면죄부를 던져줬다는 평을 받은 바가 있어, 이 사건의 적임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와 별도로 24일 오후 참여연대가 우 수석을 공무집행방해죄와 뇌물죄, 업무상 횡령, 조세포탈 혐의로, 부인과 처가 식구들을 업무상 횡령 및 조세포탈,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위반 등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그리고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으며, 이틀 후인 30일에 결국 사표가 수리되었다.
현재 계좌추적 중이며, 11월 4일. 소환통보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불응하고 있다. 체포영장 청구될 듯하다.
11월 6일 횡령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출석했다. 청사로 들어가기 전 기자들이 몰려 질문을 했는데, "검찰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문제는... 화면 좌측에 있던 기자가 가족회사 관련 의혹 질문을 꺼내자 빡친 표정으로 눈한번 감아주고 마치 아랫것 쳐다보듯이 노려보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고(위 영상 20초부터 보면 된다), "들어갑시다"라고 하는 등 뻔뻔한 태도를 보여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박연차 게이트’의 주임 검사로 2009년 4월 30일 대검 11층 특별조사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대면 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과잉수사를 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일단 수사의 중요한 실마리가 박연차 비서실 여직원의 ‘일정표’였지만, 그 일정표와 박연차의 자백 외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부족했다는 것. 그리고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이 검찰의 집중 포화를 받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23] 태광실업보다 훨씬 더 심한 비리기업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오로지 “전직 대통령을 잡아 넣기 위해서” 피라미 같은 회사 하나에 표적수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박연차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박연차 자식들의 뒤를 먼지 털듯 털었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박연차의 아들이 자기 명의로 비자금을 조성한 게 있었다거나 해외 법인을 통해 돈을 받은 게 있었다는 걸 포착해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던 점, 그리고 회사 경영권을 맡고 있던 첫째 딸을 소환해 조사했던 점 등, 박연차 가족에 대한 압박을 너무 심하게 했다는 것. 결국 박연차가 ‘잘못하면 자식이 다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검찰이 요구하는대로 진술을 한 셈인데, 이 정도면 노무현 전 대통령 하나 잡기 위해 측근의 자식까지 볼모로 잡고 인질협박을 했다는, 과장된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24]
그 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동안 신문방송을 과도하게 활용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사기간 내내 계속해서 신문방송에 수사정보를 흘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심리적으로 압박한 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했을 당시 방송 3사가 헬기까지 동원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가는 길을 내내 생중계하도록 방조한 점 등등...[25]
이에 대해 당시 검찰을 오래 출입한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우 수석은 실무자라고 보면 되는데, 수사라인을 면면히 살펴보면 김경한 법무장관, 임채진 검찰총장, 문성우 대검차장, 이인규 중수부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민의식’이 강한 기획통이다. 특히 이인규 부장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하게 수사를 몰아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우 수석도 수사를 독하게 하는 편이고, 같은 유형의 검사들로 팀을 꾸리면 외눈박이가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수사가 그렇게 된 것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강성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수사라인에 수사통도 있고 기획통 참여해서 상호 보완이 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렸던 자원외교 관련 비리를 조사하던 중 성완종에 대한 수사가 심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 방법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방법을 빼다박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관련기사 참고
성완종은 자살하면서 자신이 로비했던 사람들의 리스트로 김기춘 (10만달러), 허태열(7억), 유정복(3억), 홍문종(2억). 홍준표(1억). 부산시장(2억) 이완구 (3천) , 이병기 비서실장과 서병수 시장의 이름을 남겼다.
우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이 ‘공직기강 확립’을 빌미로, 외교부의 재외동포영사국 관계자들의 ‘좌천 인사’를 압박해 관철시켰다는 것.
2016년 7월 19일 경향신문에 의해 2013년 변호사로 일할 때 홍 변호사와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 과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 등 사건을 몰래 수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조선일보도 등을 돌려버리고, 진정한 사면초가에 들어왔다
2016년 7월 18일 조선일보에서, 2011년 경 넥슨[26]에 부탁하여 처가 부동산을 매입시켰는지 모른다는 의혹 기사가 게재되었다.
장인이 물려준 강남 부동산을 상속세때문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매입자가 안 나와 세금 부담이 가중되던 상황에서 갑자기 넥슨이 대출까지 받아가며 이를 사준 덕분에 연 5%의, 수십억 원에 상당하는 가산세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 넥슨이 이 땅을 사가는 데 들인 돈은 토지 가격만으로 1326억 원으로, 1평당 약 1억 3,000만원씩 주고 산 셈이며, 은행 이자 등의 제반 비용을 포함하면 1,535억 원이다. 문제는 밑에 후술된 내용중에 있지만 이 땅이 넥슨에 전혀 필요없는 땅이었다는게 문제다.[27]
진경준이 이 거래를 주선한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었다. 관련 기사
실제로 장인인 이상달이 2008년 7월 사망하면서 자신의 네 딸에게 상속한 서울 강남역 부근 1,300억 원대 부동산[28]은 2011년 3월 18일에 넥슨코리아가 매입해줬다고 한다. 당시 우병우의 아내 등 이상달의 네 딸은 상속세 납부 등을 위해 이 부동산을 팔려고 내놓았지만 2년 넘게 팔리지 않으면서 거액의 상속세 문제로 고민하던 중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렇게 큰 덩치의 부동산을 선뜻 매입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고, 우병우는 당시 "상속세를 현금으로 내야 하는데 부동산이 팔리지 않아 가산세(加算稅) 부담이 크다. 업계에 '상속세 때문에 부동산을 내놨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지면서 제값을 주지 않고 후려치려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팔리지 않은 이유는 소유부동산 내에 끼어있는 타인의 부동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게다가 취효시득 관련해서 많은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2011년 3월 넥슨은 관련 부동산들을 차례로 사들인다.
넥슨은 이 부동산들을 사들이면서 일본 넥슨을 통해 대규모의 부채를 떠안는다.
그리고 취득한지 1년 4개월 만에 18-30억 가량을 손해를 보고 절매한다.
우병우측에는 따로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았고 직접 다루었을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2016년 7월 20일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우병우는 이 거래에 관련이 없다고 했다가 이 날에는 장모님 위로하러 계약 현장에 갔었다고 말을 바꾼다. 막상 강남구청에는 중계업자가 없이 당사자끼리 거래했다고 신고했다. 따라서 다운 계약서 작성 가능성도 지적된다.
넥슨 측은 리얼프로젝트의 중계로 이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리얼프로젝트는 거래가 이루어질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2016년 7월 20일 동아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우병우의 처제 이모 씨는 2013년 조세회피처로 알려진 세인트키츠네비스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물론 우병우의 아내나 자녀, 형제자매도 아니고 한 다리 건너 처제의 일이라, 우병우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우병우와 넥슨, 그리고 우병우 처가와 넥슨 사이의 일이 점입가경인 상태에서 이런 일까지 터지고 보니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세인트키츠네비스는 중남미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섬으로 33년 전 독립 후 백인은 사라지고 사탕수수 농장에 끌려 온 흑인 노예의 후손이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다. 이문이 남지 않아 이제 사탕수수 농업은 파산 지경이고, 갱들이 설쳐 치안은 불안하다고 한다. 유일한 돈벌이는 국적 장사인데, 25만 달러를 예금하거나 40만 달러를 투자하면 국적을 준다고 한다. 방문도, 의무 체류도 필요 없기에 인터넷 공간에 브로커가 판을 친다고 한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부터 조세회피처로 떠올랐다고 한다.
우병우의 처제 이모 씨는 몇 년 전 남미 온두라스 위조 여권으로 자녀를 국내 외국인 학교에 넣었다가 집행유예를 받은 바 있다. 이번엔 이 세인트키츠네비스 국적을 얻어 자식을 다시 다른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 이에 관해 조선일보 선우정 논설위원[31]은 2016년 7월 22일 거의 약빨고 쓴 듯한 촌철살인의 논평 하나를 올렸는데, 정권의 핵심 실세에 대해 조선일보가 이 정도로 극딜하는 논평을 올린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논평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새 조국' 세인트키츠네비스가 어디쯤 붙어 있는지 알기나 할까. 우 수석 처제 덕분에 세상 별별 나라 공부를 다 해본다."
1989년 장인 이상달이 재향경우회와 50% ( 각각 15만주)씩 투자해 삼남개발이라는 골프장 투자회사를 세웠다.
2008년 6월 장인 이상달이 사망하고 2개월 뒤 아내 김장자와 딸 넷 이민선, 이민정, 이민주, 이민경 등 5명은 SD&J홀딩스를 설립해 자신들의 지분을 회사소유로 돌렸고 현재 지분을 각각 20%(1인당 2,200주)씩 나눠 갖고 있다. 관련기사
사실 이런 편법적 상속, 증여를 하는 것은 우병우뿐만은 아닌데, 재벌들에게 널리 통용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절세'라고 주장한다. 우병우 측은 가족 소유의 법인을 통해 세금 납부액을 최소화 하기도 한 것으로 분석 됐다. 누진세인 종합소득세(최고 38%) 보다 단일세율이 적용되는 법인세 (22%)의 세금 부담이 더 작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병우와 가족들이 100%(5,000주) 지분을 소유한 주식회사 정강이 있다.
우병우 민정 수석이 어버이연합 어용시위 논란에 연관되어 있다는 논란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불법 자금을 제공한 재향경우회와 우병우 민정 수석의 처가가 지분을 100% 소유한 SD&J홀딩스가 연계되어 있다. SD&J홀딩스와 재향경우회가 각각 50% 지분을 가지는 삼남개발의 배당내역 보면 재향경우회와 SD&J홀딩스에 2013년에 각각 23억원씩, 2014년에 각각 21억원씩 배당 됐다.
재향경우회는 어버이연합에 2014년 4월부터 11월까지 어버이연합에 총 39차례 2,500만원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며, 이 시기는 우병우 수석이 민정수석실에 들어간 시기와 비슷하다. 우병우 수석은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청와대 입성 8개월 만인 2015년 1월 민정수석 자리에 올랐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2016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더민주 어버이연합 의혹 규명 진상조사 TF 회의에서 “전경련뿐만 아니라 재향경우회에서도 어버이연합에 자금지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우병우 수석과 재향경우회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삼남개발’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러한 동업자 관계에 있는 경우회에 대해 제대로 수사가 될 수 있을지 의심이 될 뿐만 아니라, 정황상 우병우 수석의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병우는 2008년 골프장 관련 비리들을 수사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골프장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다.
우병우의 아내 등 자매 4명이 화성시 농지를 불법으로 매입한 정황이 있다. 관련기사
검찰에서 소환을 응했으나 불응한 상태이다.#하지만 현재는 민간인 신분이므로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11월 4일에 조사받았으며, 진술 중에 모든 것은 어머니가 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의혹기사를 보도한 얼마 후인 2016년 7월 20일, 이데일리가 "우 수석이 '주식회사 정강' 부동산투자회사를 통해 80억 원 대 미신고 자산을 갖고 있다."라는 기사를 냈다. [단독]우병우 신고 안한 재산 82억 더 있다
다른 보도‘천신일 가족회사 탈세’ 기소했던 우병우, 같은 방식 경영 등을 종합해 보면, 위 회사는 우 수석이 20%, 배우자가 50% 및 세 자녀 각각 10%씩 지분을 모두 갖고 있는 회사로서, 주요자산은 50억 원 상당의 부동산투자신탁, 7억 원대 토지, 20억 원대 건물, 4억 원대 서화이며, 부채는 77억 원대이나 그 중 75억 원은 우 수석의 부인이 무이자로 대여한 돈이고, 당기순이익은 1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회사의 본점 소재지에는 간판도 달려 있지 않고, 직원이 1명도 없어 급여는 지출된 바 없으나, 차량 리스료, 접대비, 통신비, 교통비, 차량유지비, 복지후생비 등으로 2억 원대의 돈이 지출되었다고 한다.
공직자재산신고에서는 소유한 회사 주식의 액면가만 신고하면 되므로 위 회사에 관해서는 5천만 원(자본금)만 본인 및 가족이 갖고 있는 것으로 신고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개인의 소득세율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받아 수천만 원의 세금을 아낀 것으로 보여 위법하지는 않지만 공직자로서는 부적절한 절세였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으나, 점차 탈세는 물론이고 점차 회사 돈을 가족이 사용하여 회사에 대한 횡령 또는 배임을 범한 것이 아닌 의혹이 일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 수석은 2009년 대검 중수부 과장으로 재직 당시 천신일 세중 회장이 가족회사를 통해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포착하여 엄단한 일이 있다는 것.[32] 한국일보 기자의 평을 빌리면 "현직 검사로 가족회사를 통한 범죄를 엄단했던 그가 검찰을 나와선 도리어 같은 방식의 가족기업을 만들어 개인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병우 수석의 비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르 재단 논란을 덮기 위한 방패막이인 것으로 보인다. 시사팟캐스트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에 따르면 "[이슈통] 최순실과 두 개의 시점" 에피소드에서 한겨레 보도의 검찰 관계자의 진단을 인용하면서 우병우 수석의 문제가 불거질 때 “청와대로서는 우병우 수석의 비리 보도가 고마웠을 수 있다."며 미르 재단에 대한 관심을 우병우 수석 사건으로 덮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병우 비리는 미르 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유도탄이었다는 것이다. 근데 둘 다 터져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최순실 문서와 기사 참조.
타고난 성정이 오만방자하다고 한다. 동료 검사들로부터 "실력은 좋은데 X가지가 없다" "너무 뻣뻣하다" 등의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대학시절부터 워낙에 자존심 강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별명이 '기브스'였다고 한다.
서울법대 선배라 하더라도 자기보다 사시에 늦게 합격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검찰후배지만 나이도 더 많고 학교 선배인데 자기가 검찰선배라고 반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불쾌해 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2002년 8월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을 때에는,[36] 영월지청에 대학동기가 그의 밑에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학동기인 평검사를 아주 험악하게 조졌다"고 한다.
2004년 대구지검 특수부장 시절에는 동향 출신 고위 공무원 모임에 나가 술에 취해 군수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요새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까지 하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군수에게 호통을 쳤다고... 그런데 이에 대해 머리가 하얗게 센 경북 XX 군수는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
2009년 대검 중수부 시절 노무현을 소환하여 특별조사실에서 노무현과 독대로 심문할 때 건넨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노무현씨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 사법고시 선배도 아닌, 그저 뇌물수수 혐의자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다."
2016년 11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을 때에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거만한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나타났다. 그리고 자기에게 거북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는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는 장면까지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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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사가해석한성경 원문보기 글쓴이: 성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