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20]반갑다! 40일만의 귀향
# 가을을 통과하는 가운데, 긴 해외여행(35일)을 마치고 돌아온 40일만의 귀향, 그중에 가장 먼저 확인할 일은 친구가 베어 건조한 ‘우리집 나락’ 톤백. 800kg, 1000kg가 들어가는 톤백(ton bag)을 아시는가? 깨씨무늬병이 달라붙어 나락이 많이 죽었는데도, 작년과 비슷하게 1450kg가 나와 두 백에 담아 방앗간으로 옮겼다. 이제 찧을 일만 남았다. 얼마나 나올까? 3마지기 600평 한 다랭이에 80kg 10개도 나온다는데, 8개나 나오면 많이 나올 것같다. 육묘, 농약, 비료, 이앙-수확 삯 등을 제하면 “똔똔”(쎔쎔.same-same)일 것이다. ‘직불금’ 없으면 농사는 완전 적자. 그래도 소출(所出)은 농민의 유일한 기쁨이다. 아무런 기약없이 내년에도, 내명년에도 지을 수 밖에 없는 게 농민들의 숙명인 것을.
# 가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단풍도 좋지만, 나는 언제나 ‘대봉시’를 으뜸으로 친다. 늙어가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는 어린애 머리통만한 대봉시가, 나는 ‘청천의 유방’같다. 일제하 이장희시인의 시 구절이다. 언젠가 나무에 올라 한 알 한 알, 다치지 않게 따면서 ‘가을을 딴다/하늘을 딴다’는 칼럼을 써 유력신문에 실은 적도 있다. 툇마루에 딴 대봉시를 나란히 펼쳐놓으니, 어느새 가을이 내 마음에 푸욱 잠겼다. 이제 포장을 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작업을 해야 한다. 농약 한번 치지도 않았는데, 300여개라니? 1상자에 30개 넣으니 10상자나 된다. 선물하는 것은 좋은데, 가난한 백수는 택배비가 만만찮다. 그래도 또 하나의 기쁨인 것을.
# 300여평의 뒷밭에 심어놓은 들깨가 제 마음대로 자라 씨를 맺었을 것이나, 한번도 돌보지 않아, 벨 때조차 한참을 넘겨 들깨대가 빼빼 말라비틀어져 씨들도 다 빠져버렸을 것이다. 흉물이 된 깻밭을 그대로 둘 수 없는데, 혼자 작업하려니 심란하다. 농사의 고수(高手)가 한 알이라도 건지려면 이슬 내린 새벽에 낫을 날카롭게 갈아 살맹살맹(조심조심) 베란다. 그렇게 덕석에 베어놓은 깨를 털자고 전주와 임실에 사는 친구를 초대했다. 혼자 짓지 못하는게 농사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고랑에 비닐을 혼자 씌울 때 실감하게 된다. 역시 '울력'이 최고다. 다행히 작년과 비슷하게 10kg나 나왔다. 이제 까불러야 하는데, 이웃집 형수의 손을 빌려야한다. 들기름이 못해도 2홉짜리 소주병으로 12개는 나올 것이다. 이것도 주는 재미인 것을.
# 복숭아농원을 크게 하는 동네친구는 늘 일손이 부족해 쩔쩔맨다. 솔직히 외국인노동자 아니면 할 수가 없다. 천만다행, 이 친구집에 태국 여성노동자 부부가 찾아왔다. 남편은 통풍으로 1년만에 귀국, 상머슴 못지 않게 일을 잘 하는 그 아내는 7년이 넘게 붙박이로 일을 해, 친구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에게도 신망을 얻었다. 올해 49세라니 40대를 온통 한국의 농장에서 일하며 보냈다. 얼마나 좋은 나이인가. 사별한 친구에게는 천금같은 일꾼. 게다가 진짜 마누라같이 샛걸이도 챙겨주는 ‘한국사람’이 다 됐다.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건 문제가 안된다. 60대 홀아비 친구와 40대 젊은 유부녀 여성이 무슨 염문(艶聞)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그냥 가십(gossip)으로 흘리자. 엊그제 영구귀국을 했다. 불법체류를 한 탓에 다시는 관광비자로도 올 수 없다한다(벌금을 내면 되지만 1년 1200만원으로 7천만원이 넘는데 그것을 낼 수 있겠는가). 오마이갓!이다. 이웃조차 울며 헤어지는 것을 서러워했으니, 한 식구처럼 농사를 짓던 친구의 마음은 얼마나 헛헛할 것인가. 하다못해 나하고도 정(情)이 들어, 친구가 죽은 것마냥 가슴이 많이 아팠다. 한 달 200만원꼴로 벌어 고향집도 새로 짓고 땅도 사 망고농장을 하겠단다. 그 친구가 떠나면서 곶감을 깎아 처마밑에 걸어놓은 것을 보고 마음이 찡해 사진을 찍었다. 고향에 가서도 자기가 키우던 개에게 밥을 주라고 영상통화를 한다는 후문이다. 꾀복쟁이 우리는 내년 가실일 끝나고 태국에 가 그 친구(이름이 ‘샤’이다)도 만나 회포도 풀고 관광도 하자고 약속했다. 가을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