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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늪
다연의 본가
택시에서 내려서는 다연의 눈앞에 서있는 지훈의 모습에 다연의 발걸음이 멈춘다. 몇일사이 야윈얼굴... 늘 단정했던
그의 모습이 조금은 헝클어져 보이는건 그 역시 다연과의 마지막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다신 보고싶지 않다고 해도 지난 시간 그의 아내로 살아온 날들을 정리함에 있어 이런 만남은 수도 없이
반복될거란걸 다연은 이미 알고 있다. 그저...부디...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랄뿐이다.
"다연아"
"그만 돌아가요. 지금은..당신하고.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를 스쳐 대문으로 향하려는 다연의 팔을 붙드는 지훈, 그의 손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움찔하는 다연의 모습에
지훈은 천천히 다연의 팔을 놓아준다.
"정말... 나하고 끝내고 싶은거야? 그래?"
"우린...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당신과 나... 이미 오래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서로 인정하지 않았던것
뿐이예요. 서로를 놔버리기엔 잃게될게 많다는걸 누구보다 잘아니까"
"내가 지금 가장 두려운건....널 잃는거야... 모르겠어?"
"난, 맘정리 이미 끝났어요. 그러니까....당신도 이쯤에서 그만해요. 내가 당신한테 다시 되돌아갈일은
없을거예요"
"너... 뭐가 이렇게 쉬워?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였어? 지난시간 너한테 훌륭한 남편은
아니였어도 난...최선을 다해 노력했어. 너한테 씻을수 없는 상처줬던거... 그래서...우리 아이 잃었던 거....."
찰싹....
다연의 손이 지훈의 뺨을 세차게 내리치고, 지훈의 뺨이 빨갛게 손자욱이 세겨진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에 온몸에 경련이라도 일어나는듯 사시나무처럼 떨려온다. 점점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뒷걸음질 치는 다연
지훈의 가슴을 세차게 밀어낸다.
"그만...그만해....그때일을 어떻게 당신입으로 꺼내? 그 일이 나한테 고작 상처정도로 끝났다고 누가 그래?
내눈앞에서 어린 간호사를 안던 당신모습....아직도 생생해... 당신도 나도....죽을때까지 죄인이야...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내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체 떠난 내 아이한테... 평생...씻을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일수 밖에 없는거라구요...우린.
...흐흑...... "
"다연아..."
"...하아....앞으로 할말있으면 ... 변호사랑 해요. 다시는... 당신얼굴 보고싶지 않아...돌아가줘요..."
대문안으로 들어가 세차게 문을 닫아버리는 다연,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혹시 울음이 세어나갈까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잘못했어. 잘못했단 말로 용서받을수 없다는거 알아...하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 우리 서로 시간을 갖자.
어떤 결정도 하지말고, 좀더... 노력해보자. 그래보자 다연아..."
지훈의 간절한목소리가 더이상 다연에겐 와 닿지 않는다.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는 지훈을 남겨둔체 집안으로 들어가는
다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창문 커튼까지 꽁꽁 닫고서야, 바닥에 주저 앉는다.
지난 시간들속....몇번이고 그의 품에 안겼던 순간들이 떠오르자 구역질이 올라오는 다연, 화장실로 들어가
위액까지 뱉어내고서야 천천히 고갤 든다.
"싫어....두번다신 안돌아가... 절대... 그런일 없을거야...절대....그러지 않을거야...."
한국병원 흉부외과 진료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는 김변호사의 모습에 지훈이 표정이 굳어진다. 작성된 서류를 지훈에게 내밀어 보이자, 이내
지훈의 손에의해 갈기갈기 찟겨져 내동댕이 쳐진다. 협의이혼서류....
"동의한적 없습니다. 이런식으로 찾아오는거... 앞으로 삼가해주세요"
"합의가 안되면 이혼소송으로 까지 가시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어떤식으로든 강선생님께 유리한건 없을겁니다. 저희는
추후 발생할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
"이혼따위 하지 않겠다는겁니다. 본인도 동의하지 않는 이혼이 어떻게 성립이 됩니까?"
"회장님과 아가씨... 두분다 결정하신 사안입니다. 전 그뜻을 대행하고 있는거구요."
"그럼, 아버님께 전하세요. 다연이, 집으로 돌려 보내달라구요. 전 이결혼 깰생각 추호도 없다고 말입니다"
"금주내로 이혼소장 접수할겁니다. 강선생님뜻은 꼭 회장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지훈에게 고갤 숙여 보이고는 진료실을 나가는 김변호사.... 문이 닫힘과 동시에 책상위에 놓여있던 차트들이 일제히
바닥에 쏟아지듯 흩어진다.
진료실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간호사들이 주위로 모여들고, 지훈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저마다 쉬쉬하며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들었어? 강지훈 선생님 이혼한다며?"
"그렇게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헐.... 이혼사유는 뭐래? 혹시....강샘...바람피우신거야?"
"강샘 와이프 미모를 몰라서 그래? 그런 부인을 곁에 두고 바람난거면, 강선생님 여성편력 끝판왕인거지"
"그럼, 강쌤 와이프가 바람난건가?"
병원안은 금새 지훈과 다연의 소문들로 들썩이고, 병원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자, 지훈은 병원장실에
불려간다.
지훈에게 차를 권하고는 마주앉은 원장의 표정이 조심스럽기만하다. 개인의 일이고 어디까지나 사적인
사안인걸 굳이 들추고 싶진 않지만, 이미 병원안에 파다하게 퍼진 지훈에 대한 소문이 부디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천천히 입을 연다.
"병원안에 자네에 대한 소문... 알고 있나?"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럼...사실인건가? 아니...어쩌다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이가 조금 나빠진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문처럼 이혼은 아닙니다. 그럴 생각...추호도 없습니다. "
"요즘 젊은 사람들 결혼도 이혼도 쉽게 생각한다는거 알아. 어차피 부부의 일이고 부부의 문제니 내가 왈가 왈부
할 문제는 아니지만, 모든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혀지고, 그 기억도 퇴색되어가기 마련이야. 어떤 문제인지
는 모르지만, 강선생 잘못이라면 무조건 숙이고 들어가. 조강치처는 말그대로 조강지처야. 무조건 나죽었소 하고
두손두발들어. 어디가서 이다연씨 같은 안사람을 다시 만나겠어? 안그래?"
원장실을 걸어나오는 지훈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열리는 엘레베이터 문 사이로 보이는 건욱의 모습에
지훈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쉰다.
"강선생님"
엘레베이터에 오르려는 지훈의 발걸음을 멈춰세우는 건욱, 묘한 냉기류가 두사람사이에 흐른다.
"괜찮으시면 ...저하고 얘기좀 하시죠"
"............"
병원 옥상위
해질녁 텅빈 옥상위에 마주선 두사람, 한동안 말은 없었지만, 두사람 사이엔 위험하고도 차가운
기류가 흐르는듯 누구하나 범접할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뭡니까 할얘기란거"
"사실입니까? 강선생님에 관한 소문들....진짜 냐구요?"
"무례하고, 건방지군. 차건욱"
"진짜 냐구 묻잖아"
"어디까지나 우리 부부문제야. 너 따위가 끼어들어 서도 궁금해해서도 안된다는거 모르나?"
모든걸 다 간파한듯한 지훈의 표정엔 건욱을 얼마나 적대시 하고 있는지 적나라 하게 드러났다. 돌아서는 지훈의
어깰 붙잡아 세우는 건욱, 지훈이 건욱의 손을 세차게 뿌리친다.
"너, 뭐야 대체..."
"그럼, 애초에 끼어들 엄두조차 못내게 했어야지. 강선생한테 부부란 그런겁니까? 온실속 화초처럼, 작은 새장속
새처럼 사육되고 길들여지고, 함부로 상처내고 짓밟아도 되는... 그런존재....그이상 그이하도 아닌겁니까?"
건욱의 말에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멱살을 움켜쥐는 지훈, 건욱의 몸이 벽에 밀어붙여지고, 점점 건욱의
목덜미를 죄어온다.
"함부로 말하지마. 니가 뭘알아? 똑똑히 들어둬.... 이다연 내여자야. 내가 내여자 맘대로 하겠다는게 뭐가 어때서? 주제넘게
까불고 설치지마. 다신 우리 부부문제에 관심갖지도 끼어들생각도 마. 그땐... 이정도로 끝내지 않을테니까 제대로
각오하는게 좋을거다. 차건욱선생"
크흡.... 콜록 콜록....
지훈이 건욱을 놓아주고는 옥상에서 나가버린다. 살기마저 느껴지던 썸뜩한 지훈의 눈동자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못한
자신의 무능함에 고갤 떨구는 건욱, 답답하게 옥줴어오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향해 내달린다.
지훈이 탄 엘레베이터가 간발의 차이로 문이 닫히고, 건욱의 주먹이 둔탁한 소릴 내며 에레베이터 문을 향해
정확히 내리꽂힌다. 비웃는듯한 지훈의 표정을 마주하는 건욱... 엘레베이터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간다.
에두아르 마네작품전시장
오랫만에 엄머와의 미술전시장나들이에 다연은 잠시나마 여유롭게 머리속을 비워내듯 작품감상에 열중이다.
다연의 발길이 멈추고, 봄이란 작품속 여인의 모습에 다연은 쉽사리 자릴 떠나지 못한다.
작품속 귀부인의 모습을 한 여인의 표정은 한없이 무표정하고, 삶의 희노애락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모습이다.
한껏 치장을 한체 꽃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여인에게선 봄에 대한 설렘도 어떤 봄의 생기도 느낄수 없다.
마치 보여주기식인 듯한 그녀의 옷차람과 소품들은 도리어 그녀를 더더욱 외로워 보이게 까지 했다.
이토록 그림속 여인의 모습에서 눈을 뗄수 없는건 아마도 여태껏 자신이 살아온 삶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어떤 동질감인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RRR....
건욱의 전화에 건물 외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다연, 핸드폰속 그의 목소리에 작은 안도감이 찾아든다.
"보고싶어요. 어디예요. 이다연씨?"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다연은 서둘러 미술관을 빠져나간다.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한체....
다연은 달리고 또 달린다.
"거기 어디냐구? 내가 간다구요"
"아뇨...내가 가요... 건욱씨한테... 내가 갈게요"
다행히 병원과 멀지않은 곳이라 얼마지나지 않아 병원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건욱의 모습도.....
서로를 향해 달리는 두사람....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다연은 발걸음을 더욱 빨리 재촉한다. 그리고는
얼마지나지 않아, 넘어지는 다연, 그런 다연을 보며 건욱이 재빨리 달려와 그녀를 향해 몸을 숙인다.
"괜찮아요? 내가 간다고 했잖아요. 어디봐요. 다친덴 없어요?"
"하아...이번엔 내가 오고 싶었어요....늘....건욱씨가 먼저 날 찾아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건욱씨를 찾고 싶었어요... 나....이렇게 뛰어본거...초등학교 이후 첨이예요....하아...진짜.... 숨이 멎는줄
알았어요.... 그래도 용케 당신 찾았으니까... 나..."
숨이 턱까지 차올라하는 다연의 모습에 더는 참지 못하고, 품에 당겨 안는 건욱, 다연이 놀라 그를 밀어내 보려 하지만
건욱은 다연을 안은 팔을 놓아주지 않는다.
"건욱씨...."
"우리... 어디로든 떠날래요? 난 당신만 괜찮다면, 어디든 상관없는데... 그래줄래요?"
그의 말에 서둘러 건욱을 밀어내는 다연, 자신도 모르게 건욱에게서 서서히 뒷걸음질 친다.
16부가 좀 늦었습니다. 꾸준히 읽어주시고 댓글주시는 모든분께 감사드리구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THEJUN... 이였습니다.
첫댓글 지금시기에 만나는건 위험해보이는데ㅠㅠ
시기도 안좋지만, 세사람다 상황이 다 안좋네요. 그래도 어차피 치뤄야할 문제라면 치루고 가야하는게 삶이라는과제이니 어쩔수 없나봅니다. 그저...이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끝나길 바랄뿐입니다. 댓글 감사드리구요.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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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요.
지훈이가 무서워ㅜ
저도 지훈이가 무슨생각을 하고있는지 몰라서 무섭습니다. 집착도 강하고 소유욕에 불을 지폈으니 쉽사리 놓진 않겠지요. 그래도...건욱이를 믿어보려구요.
지훈의 마지막 발악? ㅜㅜ같네요 놓아줄수 없는 그애처로운 마음 어찌모르겠냐만은 지은죄가있으니 이제라도 다연의 행복을 빌어주는게 지훈의 도리같으네요ㅜㅜ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가뭐래도 지훈이의 처음은 사랑이였으니까요. 그사랑에 상채기를 내고, 무너지게한 자신에 대한 벌로 다연이에대한 집착이 더 강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훈이도 다연이도 건욱이도....모두 불쌍하고 아련하고 맘이 쓰이네요. 글을 쓰면서도 종잡을수 없는 제맘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네요. 아무래도 선택장애가 있나 봅니다. ㅠㅠ 그래도 전 남주편애주의라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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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잘읽고있습니다~ 재밌어요..~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