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까리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는 딱 + 알 + 이 = 딱알이였습니다. 윗사람의 뜻이나 속내를 말하지 않아도 통박으로 때려 맞추는 "딱 알아듣는 이". 그래서 그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이란 뜻으로 17세기 경, 임진왜란 이후에 경상 동래지방의 상인조직이었던 내상을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8세기경 영-정조에 이르러 전국적인 경제활동의 활성화로 동래의 내상들과 거래를 하던 한양의 경상들이 받아들여 썼고 이들로부터 물품을 조달받았던 세도가들의 집사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뇌물을 바치고 세도가들로부터 지방관직을 얻어먹던 양반들이 이 말을 알게 되었고 지방에 파견되면서 향리들을 자신들의 딱알이로 만들면서 전국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한때 딱알이는 연철되면서 따가리로도 함께 혼용되어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 말엽, 봉건적 착취와 수탈이 극심해 지자 농민들을 직접적으로 착취했던 중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증폭되면서 경음화현상을 일으켜 딱알이는 사라지고 따가리가 따까리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딱 + 알이 -> 딱알이 -> 따가리 -> 따까리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지금의 따까리의 유래를 ‘닦을 이’에서 찾는 주장도 있습니다.
궁중에서 볼 일을 본 임금 대신 궁녀가 뒤를 대신 닦았다는 데서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심복’이라는 설명입니다.
특히 이들 궁녀들을 변모(便母)라고 불렀는데 다른 궁녀보다 높이어서 종 5품까지 품계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닦을 이’가 ‘다끄리’가 되었고 다의 양성모음 'ㅏ‘에 영향을 받아 끄의 ’ㅡ‘가 양성화되어 ’다까리’가 되었으며 이어 위에 말한 민란의 영향으로 경음화현상이 일어났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닦을 + 이 -> 다끄리 -> 다까리 -> 따까리
첫댓글 어느 쪽이 근거가 있느냐 하면 둘 다 전혀 없습니다. 그 어떤 문헌에도 이런 헛소리는 나와 있지 않을 겁니다. 혹시 나와 있으면 100% 우연의 일치입니다. 중간고사도 끝나고 채점도 다 하고 해서 그냥 해 본 소립니다.